90년대 이휘재가 열연한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인기의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두 가지 길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보여준 것이 주요한 요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드시 한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공포가 극에 달하는 때는 대상의 실체를 알지 못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이런 말을 합니다.
‘아 길이 안 보인다. (가야 할) 길이 안 보여.’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실존적인 문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이미 인생의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선 어른들도 여전히 풀지 못한 난제입니다. 왜 길이 안 보일까요? 모든 해답이 그렇듯 자신의 마음에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남들이 가는 길 위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MBTI보다 훨씬 다양한 취향과 성격, 감성,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별만큼 다양한 인간들이 선택하는 인생의 길은 너무나 한정적입니다. 그저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달려야 할 각자의 길이 있는데, 남들이 달리라고 하는 길 위에서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를 포함한 타인이 아닙니다. 나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인생의 초년에 이길 저 길을 기웃거려봐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전문직과 대기업 취업을 갈구합니다. 물론 좋은 직업입니다. 그런데 이 직업들이 나와 맞는지 생각하는 과정은 생략되었습니다.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 길인지 치열하게 사유해야 합니다.
부자만 되면 행복해질까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회사를 다니며 코인과 주식을 하는 이유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고, 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대출금으로 집을 사는 이유도,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막대한 비용의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행복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가요? 인생은 부자가 되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한 여정입니다.
EBS의 한국기행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편리한 도시를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황토집을 여러 채 지으며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보이는 삶. 불편함이 눈에 그려지는 생활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몸이 힘든 날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 즐겁다고 말합니다. 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의 몸은 지치고 마음은 금세 병들었을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지은 여러 채의 집을 돌보는 일을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그는 마당에 앉아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주름진 그의 얼굴은 아이처럼 밝았고,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의 메인뉴스는 수조 원의 돈을 가지고 있는데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구속된 기업인의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황토집을 짓는 남자의 얼굴보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행복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쟁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부자가 되기를 원할까요?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만약 인류가 오직 부자가 되기 위해 산다면 그때가 인류 종말의 순간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나의 취향과 성향, 하고 싶은 일들을 내일로 미룬 채, 타인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심지어 쟁취하려 하기 때문에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요?
압도적 숫자의 노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룬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한다면, 멀리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에 가장 적은 후회를 남기는 것이며,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덧붙이는 음악>
가수 정밀아는 혼자 알고 있기에는 세상에 대해 죄를 짓는듯한 기분이 드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어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예술가입니다. 대중의 언어로 소개하자면 2021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날치와 세계적인 그룹 BTS를 제치고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싱어 송 라이터입니다. 특히 그녀의 노래 방랑의 가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입니다. 인생의 길 위에서 방랑하는 나그네에게 BGM 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밤의 방랑자 작별을 고하네. 붉은 벽돌집 성당을 지나
저기 경계를 넘는 가파른 산길 위로 바람이 분다.
산 넘어 남쪽 그곳에 첫 마을 짧은 휴식과 붉은 포도주
황금빛 햇살과 함께 다가온 여인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네.
다리를 건너 폭포를 지나도 찬란한 세계가 있지는 않을 거야.
싸늘한 밤들이 불안하여도 나무는 내게 그저 견디라 하네.
노래를 하리 시를 말하리.
멈추지 않는 내 경건한 기도는 혐오와 허무를 삼키는 노래
그리움과 향수의 입김이 분다.
길은 끝없고 나는 멀어지지만 결국 이곳으로 길은 다시 이어지고
사랑스러운 동경의 별들이 빛나면 나 또다시 방랑자 되려 하겠나.
방랑/ 정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