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퇴사보다 승진을 열망하고, 회사라는 안온한 테두리 안에 머물다 노년기로 연착륙하는 퇴직을 꿈꾸었다.
그런 삶을 위해 평일에는 영어회화 새벽반을 다녔고, 각종 자격증 준비로 주말을 채웠다. 그 결과 30대 후반의 나이에 팀장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며 인생의 방향을 굳이 틀 이유도, 오십에 퇴사를 고민해야 할 용기도 필요치 않았다.
“김 팀장! 당신은 다 좋은데 꼭 질문을 하더라. 그냥 하라고 하면 해.”
“네?”
“회사도 쇼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척이 필요하다니까! 당신은 일 없으면 꼭 일찍 퇴근하더라? 애도 없는데 집에 가면 뭐 해? 그리고 이 일도 당신 업무는 아니지만 내 말 듣고 같이 병행하면 당신 미래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사장님한테는 내가 잘 보고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는 즉시 그에게
“제가 맡고 있는 해외영업팀이 사내에서 실적 상위권을 달리고 있고, 국내영업팀도 원 팀장이 잘하고 있는데, 내수 쪽 경험도 부족한 제가 국내영업까지 하게 되면 비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원 팀장의 역할을 침범하게 되는데요? 영업 쪽 일을 전혀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신데, 지금 내린 지시대로 하면 두 팀 모두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나는 그저 입을 닥치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는 대부분의 직원이 경멸하지만 사장에게는 사랑받는, 권력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향의 일부 무리와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회사의 주요 정책과 인사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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