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열두 달 4월-1

by 김재완

날씨가 좋아 출근하다 어딘가로 새고 싶은 4월이다. 그래도 직장인은 숭고한 월급을 주는 회사를 향해 순례자처럼 길을 나서야 한다.

김팀장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처럼 매일 아침 강의 북쪽에서 출발하여 한강의 다리를 건너 강남으로 출근한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선 작년 가을 김팀장은 아내와 상의 후, 서울보다 북한이 가까운 경기도 북부의 신축빌라를 매매했다. 빌라매매에 대하여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계획에 낡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내 집값만 오르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은 누워있기만 해도 배가 불렀고 새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며 일어나 강북의 회사까지 1시간이면 도착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30분은 집 근처라고 여겨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는 웃픈 농담이 있다. 김팀장도 1시간이면 책을 보기도 음악을 듣기도 적당한 시간이라고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 후 회사가 갑작스럽게 강남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고, 김팀장은 마을버스와 두 차례의 지하철 환승을 거쳐 2시간이 지나야 사무실 책상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4시간은 책을 보면 안구 건조증을 유발하고, 음악을 들으면 귀의 통증을 유발 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고향집 까지 왕복 5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허탈감이 밀려온다.

처음 6개월간 한약을 먹으며 하루 4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집에 도착 후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면 잠자리에 들어야 내일이 견딜 만 했다. 6개월 후 김팀장은 ‘좀 멀긴 하지만 다닐 만해’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몸이 힘든 건 퇴근길이나 마음이 힘든 건 출근길이다.

출근길 정장에 백팩을 가슴에 안고 노약자석에서 졸고 있는 오십대를 보며 박제된 버린 자신의 미래가 아닐까 싶어 아침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한눈팔지 않고 걸어온 출근길의 미래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지나온 출근길이 떠오른다.

김과장의 첫 출근길은 신림역 반지하방에서 방배역까지였다. 햇볕이 들지 않아 여름이면 벽지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함을 보였지만, 회사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육체적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에 최단거리의 출근길을 다녔고, 나이가 들수록 집과 회사는 멀어져갔다. 이후 몇 번의 이직과 청춘의 유희를 반납한 대가로 서울시내 언덕에 위치한 첫 전셋집에 입주했다. 저축과 보험을 동시에 가입하고 마이너스 통장이 없던 마지막 축제의 시절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김팀장은 경기도민이 되었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서울에서 멀어짐과 동시에 대출금은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강남과 강북의 빌딩에서 근무하던 친구들은 종로 어딘가에서 만나 여자와 스포츠 이야기 대신 제2의 인생, 건강, 집값, 교육, 사라져버린 낭만 등 나라도 해결 못하는 일에 대해서 씨부렸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중교통이 끓기기 전 광역버스와 국철을 타고 경기도의 집으로 바퀴벌레처럼 사라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 했다. 김팀장은 지하철역을 빠져나가며 출퇴근길에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볼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해본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회사의 핵인싸 송과장은 점심 피크닉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난리다. 카톡과 사내메신저를 오가며 점심 도시락을 주문할 사람을 지정하고, 멤버를 추리고, 장소를 공지한다.

“팀장님! 팀장님도 같이 가시죠. 애들이 다른 꼰대들은 싫어도 팀장님은 괜찮다고 하내요. 제가 다 세팅 해났으니까 팀장님은 법카만 잘 챙겨 오시면 됩니다. 이상 보고 끝”

“나 오늘 파주로 외근 나가는 거 알고 일부러 오늘로 잡았지? 카드는 줄테니 나중에 인사팀 김 대리랑 잘 되면 한턱 쏴라.”

“우아! 팀장님 어떻게 아셨어요? 애들도 모르는데? 팀장님 역시 예전에 놀던 가락이 있어서! 역시 죽지 않았어!”

11시20분부터 5분 동안 벽걸이 시계와 손목시계를 번갈아보던 송과장에게 김팀장이 카드를 건내며 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아우! 야 빨리 나가. 정신 사나워. 대신 1시 30분까지는 들어와라. 나도 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나 오늘 현지 퇴근이다.”

줄행랑을 치듯 사무실을 나서는 송과장을 보며 10년을 떠올린다. 핑크색이 잘 어울리던 전산실 박대리의 마음을 사기 위해 벚꽃이 피면 점심 피크닉을 준비하고, 여의도 불꽃축제날 명당자리를 잡기 위해 반차를 내던 활기 넘치던 자신의 모습을. 박 대리는 애가 둘이라 OB모이에도 나오질 못해서인지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깜짝이야! 무슨 일이야?”

“머냐? 꼭 회사에서 바람피다 걸린 사람처럼? 수상한데?.”

“먼 소리야! 회사로 생전 전화 안하던 사람이 전화를 하니 그런거지. 먼 일 있는거 아니지?”

“나 오늘 저녁 약속 있으니까 자기도 밥 먹고 들어오라고.”

전화를 끓은 김팀장은 엄마는 위대하고 여자는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한다.

봄날의 외근은 격주로 출근을 하던 토요일의 기쁨과 견줄만하다. 샴폐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며 주5일 근무는 한국 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던 자들은 주52시간 근무에도 일관된 목소리를 내며 지랄 염병을 하고 있다. 몸이 가뿐해짐을 지금이라도 영업을 해야 하는 생각을 하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오늘의 외근이 더욱 즐거운 이유는 현지퇴근을 하기 때문이다. 미팅 후 퇴근을 위해 방문시간을 4시로 조율했다. 미팅을 마치면 퇴근시간보다 일찍 업무를 마감할 수 있고, 2시간이 넘는 거리의 회사로 복귀는 비효율적이다. 조직의 규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니 병장이 된 것 같다. 생각이 군대계급으로 미치자 회사에서 일병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대리시절 수원으로 외근을 나간 적이 있었다. 미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시계는 5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이른 퇴근 후 강남역에 근무하는 찬동이와 치맥을 하는 기대를 품고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격양된 목소리로 업무보고를 마치고 팀장의 처분을(?) 기다렸다. 팀장은 매우 흡족한 목소리로 업무 처리를 칭찬하며, 차가 많이 막힐 것 같으니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상냥하게 지시했다. 7시를 훌쩍 넘긴 시간 회사에 도착하니 빌딩 전체에 냉방이 꺼져있었다. 팀장은 미니 선풍기에 얼굴을 밀착 시키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 왔냐? 야 미안한데 지금 급한 일 하느라 그러는데, 여기 대야에 물 좀 버리고 찬물 좀 받아다 주라.”

팀장은 양말까지 벗고 사무실에서 발을 담그며 지랄을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이건 아니다 스스로 자각을 한 건지 팀장은 각티슈에서 휴지를 잔뜩 뽑아 발을 닦으며 겸연쩍게 말했다.

“아니다. 나 화장실 가야겠다. 이건 내가 치울게. 김대리 어서 퇴근해. 더운데 고생했다 야. 다음부터는 이 시간에 마치면 현지에서 퇴근해.”

김대리는 연차가 쌓일수록 군대보다 좆 같은 건 회사라는 확신이 든다.

‘군대는 제대라도 있지.’

김팀장은 군복무시절 내부반의 부조리를 개선하진 못했지만 병장이 되어도 자신이 싸지른 일은 스스로 처리했다. 회사에서도 팀장이 된 후, 20년간 겪었던 수많은 개새끼들의 엿 같은 행동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쓰고 있으나 세상이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군대와 회사가 훈련이나 업무보다 직급이 조금 높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미팅 시작 전 일산에 근무하는 정우에게 저녁을 먹자고 문자를 남겼다. 미팅이 끝난 후 문자를 확인하니 정우가 카모메 식당 닮은 곳이 있다며 답장 남겼다. 김팀장은 아직 해가 떠 있는 거리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으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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