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리가 사표를 던졌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오래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가정형편 때문에 그의 사표는 충격이었다.
“부장님! 친구들이랑 후레쉬한 사업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박대리를 아끼던 강부장은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격려했고, 박대리를 닦달만 하던 고전무는 지금 나가면 다시는 돌아 올수 없다고 겁박했다.
“자네가 하려는 게 먼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사업이란 말이지.......”
박대리는 놀랍게도 고전무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고 감사합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해 보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 보고 싶을 뿐입니다.”
고전무는 박대리를 노려보았지만, 입을 닫았고,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지만 회사 밖은 위험하며, 박대리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자존심 때문에 끓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박대리는 모두의 예상대로 6개월 후 회사 앞에서 전화를 했다. 강부장은 삼겹살을 씹으며 고전무에게는 자기가 잘 이야기 해보겠다며 박대리의 실패를 위로했다. 주량이 약한 박대리는 급하게 마신 술에 1차에서 이미 취해버렸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모두는 역시 욕을 처먹고, 무시를 당해 가면서도 회사에 남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박대리는 강부장에게 육개월만 더 버텨보겠노라고 변죽을 부렸다. 차분한 강부장마저 언성을 높이며 박대리의 철없음을 질타했다. 그날 이후 박대리는 누구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는 또 한명의 퇴사자로 모두의 기억에서 망각되어갔다.
애플의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하고, 스마트폰이 천지개벽을 이끌던 초장기의 한가로운 오후였다. 서주임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어머! 이 사람 박대리님 아니에요? 서울 시장이랑 찍은 사진이 경제뉴스에 나왔어요!”
벤처란 말이 사어가 되고 스타트업이란 말이 태동되기 이전 시기였다. 기사에 따르면 박대리와 친구들은 후레쉬한 어플을 개발했고, 서울시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박대리와 친구들은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의 엔젤들에게 투자를 받으며 그야말로 승승장구 해나갔다.
2년 후 박대리의 회사는 구글을 연상시키는 사내문화와 구내식당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후레시한 창업의 신화가 되었다.
고전무는 박대리 회사의 기사가 살린 경제신문을 책상에 던지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을 한다.
“박대리!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 밑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후레시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니 말이야. 김과장! 자네 아직도 박대리랑 연락하나? 언제 우리 박대리 회사 가보자고.”
몇몇은 역시 전무님은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시다고 살아가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고, 어떤 이들은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겠다며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6년 후, 세상은 박대리의 회사를 유니콘 기업이라고 부르고, 박대리를 이사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사이 김과장은 연봉 칠백만원 인상을 제안한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해, 팀장이 되었다. 김팀장은 박대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다 잡는다.
그의 성공신화를 통해 인생은 살만하다거나, 야구처럼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착각하면 자신만 힘들어진다. 저런 성공이나 행운은 특별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며, 자신 같은 사람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다음 날 출근이 그나마 용이하기 때문이다.
김팀장은 나이가 들면서 고전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려고 했다. 고전무는 더 이상 없지만, 고전무들은 어느 회사에나 존재하고, 주간회의는 늘 벅차다. 회의준비를 하느라 팀원들과 회의를 해야 하고, 후레시한 기획안은 묻히거나 강탈당하기 일쑤다. 고전무는 자신의 직분에서 최선을 다한 직장생활이라고 회고를 할 것이다.. 회의시간마다 자신의 앞에서 손을 떨며 발표를 하는 50대의 만년부장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도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자위했을 것이다. 회사의 성장은 직원들을 압박하고 급여를 동결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있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 외면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