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열두 달 4월-2

by 김재완

정우는 서울토박이로 김팀장과는 재테크 모임에서 만난 사이이다. 모임에서 몇 번 만나고 데면데면하게 몇 년을 지내다 정우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둘은 머리가 굵어진 후 사회에서 만났고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 보이지만 취향이 비슷했다. 부동산이나 스포츠 이야기 대신 세상의 부조리함에 함께 분노하고, 출세나 성공대신 개인의 삶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만남이 불편해지거나 뜸해지면서 둘은 서로 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김팀장은 ‘하나’에 들어서자마자 단골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하지 않은 인테리어의 식당에는 클래식 음악이 호흡처럼 묻어있었고, 음식은 정갈하지만 지나치게 심심하지 않았다. 살얼음과 거품이 어우러진 맥주를 마시며 근황을 묻던 김팀장은 정우가 퇴근 후 시작한 일에 놀라며 되묻는다.

“그림을 그린다고? 머.막 피카소처럼 그런 그림 말하는 거야?”

정우는 웃으며 아이패드로 그려 본인 인스타에 올린 그림을 김팀장에게 보여준다.

“머야? 너 미술 전공도 아니잖아? 재능이 있었나보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은 공간도 필요해서 나 같은 직장인한테는 이런 그림이 딱 이더라고. 그림 그리다 보니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다 야. 너도 그림 한 번 그려봐. 아니다 넌 책 좋아하니 글을 한 번 써 보는 건 어때? 너 예전에 카페 게시판에 글만 올리면 조회 수 엄청 높았잖아.”

“에이! 내가 무슨 작가 될 것도 아닌데 글은 무슨. 그리고 글은 아무나 쓰나.”

“그럼 글 아무나 쓰는 거 아니지. 글은 쓰고 싶은 사람이 써야지. 너나 나나 사실 하고 싶은 일 한 번 못해보고 이 나이 먹었잖아. 꿈이나 장래 희망이나 그게 돈이 되는지가 중요했지 내가 그걸 하면서 행복한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잖아. 심지어 내가 포기한 게 아니라 남이 하지 말라니까 시도도 안했잖아. 평생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았는데, 퇴근 하고서라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거 하니까 너무 좋더라. 너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나 요즘 행복하다.”


김팀장은 TV속 인물이 아닌 마흔을 넘긴 남자가 행복을 이야기하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굳이 뉴스에서 떠들어대지 않아도 주변의 전 세대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정우 외에 행복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EBS 한국기행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도시를 떠나 자연에 머물며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주거환경에서 머물지만 방송 내내 웃으며 엔딩에는 행복하다고 대본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눈앞에서 행복을 말하는 정우와 TV에서 행복을 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들은 머무는 곳은 다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정우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김팀장은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런 이야기는 내 옆에 훨씬 오래 머문 친구들과도 나누기 어렵다. 정우는 답장에 내가 꼭 글쓰기를 시작해서 자신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며 ‘브런치’ 라는 글쓰기 사이트의 링크를 보내왔다. 김팀장은 행복이란 단어를 ‘고도원의 아침편지’ 가 아닌 친구의 문자에서 본다는 게 여전히 낯설다.

신화가 된 박대리처럼 큰돈은 못 벌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쓴다면 정우처럼 –퇴근 후만이라도 -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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