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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8. 2024

은수의 이야기 (1)

답답했다.


명치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 점심에 연이어 들이부은 커피 때문인지, 씹지도 못하고 급하게 먹어 치운 점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지난밤 밀려오는 두통을 잠재우기 위해 늦게 마신 맥주 때문인지도 몰랐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 꾹, 눌러봐도 소용없었다.


소화제를 먹을까, 보건실에서 잠을 청할까 고민하는 사이 통증은 점점 번져갔다. 명치끝에서 위로, 위에서 아랫배로. 잠시 주저한 사이에 통증은 은수의 몸을 서서히, 하지만 재빠르게 잠식해 갔다.


'다음 시간에 수업이 있는데...'


수업까지는 단 1분도 남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업 시간은 꼭 지키는 은수였다. 학생들이 깐깐하다고 말하는 점도 그 때문이었다. 사소한 약속도 잊지 않고 기억해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 때문에 누군가는 은수를 좋아했고, 누군가는 은수를 싫어했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좋고, 싫음이 갈렸다.


교과서, 학습지 따위가 담긴 노란 바구니에 분필을 주워 담고 몸을 일으켰다. 간절히 조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장 코앞의 수업도 수업이거니와 종례 시간에 은수를 기다릴 아이들에게 종례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전달 사항이 없더라도 꼭 종례를 해 왔다. 일찍 마친 다른 반 친구들이 은수네 반 아이들을 기다리더라도, 그래서 뭇 원망 섞인 소리를 듣더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담임의 관심과 손길이 얼마나 미치느냐에 따라, 학급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은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종례를 거른 적도, 다른 선생님에게 맡긴 적도 없었다.


-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수업 종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교무실을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다섯 걸음이면 갈 1학년 1반이 멀게만 느껴졌다. 화장실에서 막 나와 교실에 들어가는 녀석, 선생님이 오나 안 오나 망을 보는 녀석들이 어쩐지 흐릿해 보였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 겨우 교실 문 앞에 도착해 문을 들어가려는 찰나,


- 털썩


"헉"

"선생님!"

"쌤!"

" 야! 반장! 교무실 가서 쌤들 불러! 얼른!"


아이들의 목소리가 웅웅 거리며 귓가를 스쳤다.


뭐라고 하는 거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조용히 해, 이제 수업 시작했잖아,


라고 말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들,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옆반 선생님, 그리고...  


- 삐이이이이 이


낯익은 이명만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답답했다.

어쩐지 은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은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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