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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30. 2024

은수의 이야기 (2)

"좀, 괜찮으세요?"


피곤에 절어 보이는, 아마도 오늘 새벽까지도 한숨도 못 잔듯한, 의사는 차트를 넘기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은수의 입은 무겁게 내려앉아 한 마디로 내뱉을 수 없었다. 여기는 어디냐고 어떻게 된 것이냐는 물음이 떠올랐지만 달쌀달싹 입술이 움직이기만 할 뿐, 소리로 뻗어나가진 못했다.


"다른 것은 다 정상이신데요. 잘 챙겨 드셔야겠어요. 오늘 수액 다 맞고 가세요."


차르륵-


병상의 커튼이 닫혔다. 희미하게 보이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은수만이 홀로 남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조금은 걷혔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 놓여있자 묘한 평온함이 들었다. 어쩐지 행복함 마저 들었다. 분명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날 찾지 않을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아마도. 절대로.


똑.   똑.   똑.


수액은 규칙적으로 떨어지길 반복했다.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떨어지는 수액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며 은수는 속으로 소리를 내어 보았다. 똑.   똑.   똑.


긴장으로 가득 차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됨을 느꼈다. 꽉 막혀있던, 그래서 너무나 답답했던 속도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 연락할까?'


은수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엄마가 연락을 받는다면 결코 혼자 있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당장에라도 택시를 잡아 타고 두 시간도 더 걸리는 이곳을 한 걸음에 달려올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혼자 수액을 맞고 있는 은수를 보며 아마도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은수야, 괜찮니, 도대체 무슨 일이니, 그놈의 학교는 애한테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시킨다니, 로 시작한 말은 끝을 모르고 이어질 것이었다.


은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너무 지고지순해서 가끔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므로, 오늘 같은 날에는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때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으니까. 은수에게 엄마가 그러했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이 고요를 즐기고 싶었다. 자취방에 들어가 느끼는 허전함 말고, 늦은 밤까지 혼자 야근하다 나올 때의 씁쓸함 말고, 1시간은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래서 당연히 자유로워야 하는 이 시간이 은수는 너무 좋았다.


근래 들어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일은 해일이 밀려오듯 은수에게 덤벼들었다. 일과 중엔 수많은 일을 해결할 수 없어 야근을 밥 먹듯 했다. 학교란 곳은 그런 곳이었다. 낮에는 아이들의 소리로, 밤에는 키보드 소리로 가득 찬 곳.


- 쌤, 쌤쌤!

- 은수쌤!

- 쌤! 저기서 애들 싸워요!

- 쟤가 먼저 존X 때렸다고요.

- 아, 어쩌라고요. 진짜 씨X


가만히 있으니 자꾸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매일 듣는 말들이 들리지 않자 오히려 더 잘 떠올랐다. 그 말들은 소리가 아닌 그림이 되어 은수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자꾸 코끼리가 생각나니까.


그런 말들은 어쩌면 나았다. 그건 아이들이 뱉는 말이었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으니. 요새 애들이 예전 같은가?라는 말로 툭, 쳐내면 될 일. 제일 힘든 건,


그때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알 수 있었다.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끈질기게 울리는 진동소리. 이 정도로 받지 않으면 끊어도 될 법한데 절대로 멈추지 않는 진동소리.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아마 통화를 하자마자 말하겠지. 왜 전화를 이렇게 안 받느냐고, 내 전화를 피하는 거냐고, 나도 바쁜 사람이라고.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반장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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