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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24. 2024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저는 꽤나 뿌듯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만히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충전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에는 글을 써야 조금 해결이 되는 것 같거든요. 모두 잠든 시간, 음악 하나 틀어 놓고 조금씩 생각의 타래를 풀어내 봅니다.


공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그것. 

굳게 닫힌 교실문을 열고 내 수업을 다른 선생님들께 공개하는 그것 말이죠.


사실 작년부터 꽤나 해보고 싶었는데 용기를 못 내다가 올해 시작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가르치기 위해 상징을 배우고, 윤동주의 삶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서시를 공부하여 '상징'을 사용한 이유를 함께 배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용기 내 전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윤동주와 상징"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할 테니 혹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 오라, 라고요.


무려 9일간의 대 장정입니다. 한 반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반을 다 공개하거든요. 반별 시간표를 맞추다 보니 16일부터 26일까지 무려 9일을 공개합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아무도 오시지 않더라고요. 그 후에 한 분, 두 분 들어오시더니 오늘은 글쎄 한 반 수업에 무려 여섯 분이나 들어오셨습니다. 그 반 애들, 진짜 말썽꾸러기 많거든요. 서로 공격하고 싸우고 디스 합니다. 그런데 저 말고 다른 샘들 계시니까 조금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평소처럼 하라고 했더니 평소보다 잘해서 놀랐습니다.


교실 뒷문이 열리고 한 분, 두 분 들어오시는데 솔직히 무척 떨리고 부끄러웠지만 일부러 뒤를 보진 않았어요. 선생님들 얼굴을 보면 부끄러운 마음에 제 원래 모습을 공개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저 파워 내향인이지만 수업할 때는 다들 놀라시거든요. 목소리 연기, 상황극, 그리고 개그(?)까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워낙 통제욕도 강하고 주목받는 것을 좋아해서 애들이 제 수업을 다 좋아했음 하는 마음에 늘 그렇게 별별 일을 다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상징을 배우는데 여러 가지 그림을 보여주며 모둠 활동 시켰어요. 처음에 아이들이 어려워할 수 있어서 글자수 힌트, 초성 힌트, 동작 힌트 등을 다양하게 주었고 함께 정리했습니다. 특히 '추상적'이라는 개념과 '구체적'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아이가 마무리 발언을 해줘서 수업이 더욱 빛났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서시>를 분석했는데요. 그때도 세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중1에게 윤동주가, 그리고 <서시>가 조금 어렵거든요. 그래서 시를 조금 더 쉽게 느끼게 하려고 일부러 외워서 낭송하는 시간을 좀 주었습니다. 5~10분 정도 서시를 외우라고 시키고 나와서 낭송을 하게 했죠. 


안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집중해서 잘 해냅니다. 특히 오늘 5교시의 아이들은 더위에 졸음에도 불구하고 잘해줬어요. 기쁜 마음에 보상을 마구마구 주었습니다. 5명 정도가 도전했는데 딱 한 명이 성공했어요. 그런데 뭐 어떻습니까. 일단 수많은 친구들 앞에 나와서 시 한 편을 외우겠다는 용기가 대단하잖아요. 참고로 저는 중1 때, 못했습니다..


낭송 후에는 '하늘, 바람, 별, 길...' 등의 시어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함께 토의하고(사실 이 부분이 제일 어렵습니다. 중3 단계거든요^^;;) 마지막으로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 이토록 많은 상징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를 함께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가 정리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더 힘을 썼어야 하는데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어요.


그렇게 오늘 수업 공개가 끝이 났습니다.

저는 수업 공개 후에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수업을 하면 제 에너지를 전부 다 쓰는데, 두 반 연속 공개 수업을 하니 에너지가 탈탈 털리더라고요. 배터리로 치면 거의 1%쯤 남아있달까요?


그런데 말이죠. 

신규 교사 때에는 그토록 두려웠던 공개 수업이 어쩐지 좋고 편하더라 고요.

오히려 약간 든든한 느낌이랄까요? 이 아이들을 지금 돌봐 주는 분들이 더 있다! 아이들이 많이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으니 수업이 더 편하게 진행되더라고요.

게다가 그분들은 소중한 공강 시간을 내어 제 수업을 들으러 와주신 분들이잖아요. 선생님들에게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있는 공강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진짜로요.




내일, 그리고 금요일에 마지막 수업 공개가 있어요.

모든 반이 쉽지 않아요. 아이들은 국어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 아이들에게 국어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와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데요.

퇴직하는 그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주어진 길을 걸어온 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고

어느덧 별이 반짝이는 깊은 밤이 되었네요.




별 하나에 소망과

별 하나에 나의 1학년과

별 하나에 곤히 자는 사랑하는 딸과

별 하나에 교사인 나를 지지해 주는 친애하는 남편과


별 하나에...

언젠가 웃으며 손뼉 칠 때 떠나고 싶은 나를 그리며



글을 마칩니다.




아참!




오늘 하루, 다들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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