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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r 30. 2020

면접

보고 싶다

아이들을 보지 못한 시간이 일 년 반이 다 되어간다. 그리움이란 감정도 어느 순간엔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좀처럼 그리 되지 않는다.


상처에 딱쟁이가 생긴 후 새 살이 돋아나야 하는데, 같은 부분의 생채기가 반복되고, 빈도가 잦아지는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혼자인 시간이 어느 때 보다 긴 시기에는 결핍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욱 괴롭다.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협의, 조정, 재판 이 세 가지 단계 중 하나에서 마무리되는 것이라 여겼다. 위자료는 서로의 과실을 감안하여, 재산분할은 재산형성의 기여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으로 알았다.


물론 소송으로 갔을 경우 금전적인 부분에 관한 공방은 어느 정도 치열해질 수 있음을 예상은 했다. 상대방의 돈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분쟁을 각오하고 별거와 소송을 진행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그것은 전 배우자가 아이들을 소송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소송 과정에서 양육자의 감정이 상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들은 쉽사리 일어날만한 일들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아이들과의 면접을 방해했다.

소송초기부투 아이들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난 바로 면접에 관한 사전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의 개입으로 면접이 재개되었고 세 번 정도 진행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아이가 외할아버지에게 “아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고 말했어.”라는 이야기를 해서 면접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소송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당시 나의 아이는 7살이었다. 35살의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재혼 사실을 말하는 것이 과연 있을법한 일인가.


상대방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허위 사실을 주입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진술하게 시켰으며,  그러한 사실을 녹취록까지 만들어 제출했다.


반인륜적인 주장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증오가 솟구쳤고, 아무리 돈이 목적일지라도 의뢰인의 요구대로 준비서면을 작성한 상대 변호사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두 번째로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였다. 면접을 못했지만 아이의 첫 입학식을 축하해 주고 싶어 입학 예정 학교로 찾아갔다. 아무리 본인 의사대로 사는 사람이어도 입학식 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못할듯 싶었다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학교를 향하는 길이 무척이나 설렜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아이가 반가움에 한 걸음에 달려와 안길까 하는 기대도 했고, 그런 아이의 행동에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내가 눈물을 흘려 애가 놀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했다.


학교에 도착 후 몇 반인지 확인하기 위해 게시판을 들여다보는데 아이 이름 옆에 ‘전출’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근처 동사무소를 찾아 아이의 초본을 발급해 봤다.


아이는 입학식 일주일 전 다른 남자의 집으로 전입이 되어있었다. 이사를 간 것이 아닌 주소지만 변경한 위장전입이었다. 입학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체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일화다. 업무상 아이의 기본증명서가 필요했다. 대법원 사이트에서 아이의 이름을 입력한 후, 발급 신청을 눌렀는데 조회가 되지를 않았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후 조회를 해 보니 아이의 이름이 개명되어 있었다. 아이가 개명을 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재혼을 할 때 새아빠의 성을 따르기 위해서나, 아님 엄마의 성을 따르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는 이름만 변경되어 있었다. 법원을 통해 알게 된 개명의 이유는 한자 수업 중 이름의 뜻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어 아이가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月火水木金’ 수준의 한자를 배우는 초등학교 1학년 수업에서 누군가 ‘翰’이란 글자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한 것이다. 과연 이것도 있을 법한 일일까.



상대방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

예정된 면접일에 찾아가도 봤고, 연락도 해봤다.

이혼 소송 중일 때는 면접교섭에 관한 사전처분을 신청했다.

이혼 소송이 끝난 후에는 면접교섭 이행명령도 신청했다.


법원은 나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나는 아이를 볼 수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법원의 개입도 양육자의 거부 앞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이유의 타당함이 중요치 않았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양육자의 의사에 의해 면접이 좌우된다.


우리나라는 양육비에 대한 보장이나 강제력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부족한 것은 면접에 관한 제도이다.


양육비의 경우 급여에 대한 압류나 감치라는 제도가 있고, 소급해서 청구할 수도 있지만, 면접에 관해선 과태료가 전부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힘든 시간들은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마음을 접은 적은 없었다. 어떠한 것들은 관계를 지속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끈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보통의 경우처럼 되질 않는다.


“너도 양육비 주지 마.”


물론 그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나 역시 목적을 위해 아이를 이용한,  같은 수준의 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그리하진 않았다.


그리고 떳떳하고 싶었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아이들에겐 당당한 아빠이고 싶었다.


“아빠가 원해서 너희들을 안 만난 것이 아냐. 그 시간 동안 너희들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야.”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 날 까지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은 시간과 허투로 쓰지 않은 마음에 비례한 결과물을 아이들에게 건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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