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오르면 펼쳐지는 거대한 산맥, 지평선을 향해 뻗은 평야, 바다의 수면에 맞닿는 태양 등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규모는 인간을 압도한다. 황홀경 속에서 우리는 경외감, 행복, 존재적 허무함 등을 느낀다. 마음 깊숙히 우러나오는 한숨과 진심 어린 감탄 역시 그러한 감각의 표현이다.
이러한 큰 감각을 자연이 아닌 도심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뛰어난 심미적 건축물을 보는 등 공간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 자연이 주는 것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하지만 건축물 고유의 심미성과 공간이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부터 충분히 좋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늘 소개할 송은(松隱)이 그러하다. 도심 속 여행지이자 여행자를 압도하는 최고의 건축적 & 문화적 공간으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도심 속 숨겨진 소나무'의 의미를 담은 송은은 비영리 문화 공간이다. 한국 예술 작가를 지원하고 전시를 통해 국내외 미술을 알리는 곳이다. 동선에 따른 송은의 얼굴들을 담았다. (2021년 10월 방문)
노출된 콘크리트의 겉면에 소나무의 결이 돋보이도록 시공하였다. 소나무라는 작명에 걸맞은 표현이다. 평면에서 나타나는 패턴은 중복되지 않는다. 섬세한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송은이라는 공간을 대표하는 4가지 키워드이다. 빛의 대비는 내부 공간에서 강조되므로 이를 제외한 채 건물의 입면을 바라본다. 마치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나 '듄'에서 나올법한 신비로운 외형을 갖는다. 거대한 물체가 은은히 부유하는 듯, 묵직한 무게감과 균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파사드가 돋보인다.
베이지 색상의 콘크리트에 거뭇거뭇한 흔적들이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질감을 표현한다.
송은의 거대한 파사드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은 바로 여백이다. 거대한 규모의 흐름 속으로 기운이 집중되고, 똑바로 서 있는 몸이 아래로 이끌리는 듯하다. 중력을 느끼는 첫 번째 지점이다.
송은을 디자인한 헤르조그 & 드 뫼롱 건축가의 작품 이미지들이다. 특히 오른쪽 트라이앵글 타워는 현재 파리에 세워질 상황을 놓고 갈등 여론이 뜨거웠다. 고층 건물 제한을 유지하던 파리의 정책 기조를 벗어난 실험적인 시도가 탄생할 예정이다. 건축가들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공간과 향의 연관성을 주제로 '한강의 향'을 표현한 전시이다. 실제로 물, 철, 우유, 이끼 등 향들의 낯선 조합이 느껴진다. 어떠한 향을 맡을 때 과거의 경험이나 특정한 공간이 생각나곤 하는데, 앞으로 송은이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면 이 오묘한 향은 공간에 얽힌 고유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하에 위치한 바로 이 지점이 송은의 백미이다. 넓은 여백과 빛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탁 트이는 시야를 제공함과 동시에 무거운 중력감을 빚어낸다. 아무런 설명 없이 지상과 지하를 잇는 거대한 여백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건축적 의도와 실질적 기능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위와 같은 공간이 비워진 이유는 주차장에 있다. 지하 주차창으로 향하는 원형 동선의 가운데 비워진 공간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주차창 램프 구간으로 인해 생겨난 구조를 공간의 심미성으로 풀어낸 탁월한 감각이다.
이러한 의도 덕에 사람들은 차분히 감탄을 자아낸다. 송은이 대중들과 강렬한 관계를 맺는 순간이자 고유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과정이다. 다른 공간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큰 감각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와 고유한 경험을 얻어가는 것이다.
몰입과 감탄의 경험을 파생시키는 송은이다. 도심 속 소나무는 화려하게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위치에서 올곧고 정직한 모습으로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자본과 예술성이 빚어낸 공간 경험의 극치를 송은에서 온몸으로 느껴보시길 바란다.
장소: 송은(松隱)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1
시간: 11:00 - 18:30 (일요일 휴무)
연락처: 02-3448-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