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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례 Jul 14. 2022

봄을 기다리는 마음

튤립

겨울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겨울을 힘들어한다.

인생의 답은 여름나라에 가서 사는 거라고, 그게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늘 생각했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라는 ‘하지(夏至)’만 지나도 이제 여름도 다 끝났고 점점 겨울이 다가올거라고, 세상 다 끝난 것마냥 엄살을 떨어댔다.


언젠가 '겨울이 좋은 이유'들을 노트에 써놓아 본적이 있다.


첫 눈, 목도리와 장갑,  뜨개질, 호떡, 난로 위의 둥글레차, 크리스마스 등등


겨울을 좋아해보려는 작은 노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려고 노력해봐도, 내게 겨울은 너무 길고 버거웠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두꺼운 옷들을 겹겹이 입고 벗는 것도 무겁고 지치는 일이다.

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고양이를 보는 일, 시린 바람을 피할 곳 없이 묶여있는 시골의 강아지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된다.

인생의 1/3이나 되는 시간을 힘들어한다니,  겨울을 싫어하는 것만으로 내 인생의 기본값은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겨울은 식물에게도 가혹한 계절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베란다에서 잘 지내던 식물들을 실내로 들이고 월동준비를 해야한다. 온도가 너무 내려가지 않게 항상 신경을 쓰고 실내가 건조하지 않도록 습도 관리를 해주어야한다. 그래도 겨울을 못 이기고 떠나가버린 식물이 매해 여럿 생긴다.

하지만 이런 겨울에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준비를 누구보다 부지런히 하는 식물이 있다. 바로 구근과 식물 튤립이다.


몇해 전부터 가을의 끝에 튤립 구근을 심는 의식이 생겼다. 모든 것이 지는 무력한 계절에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튤립을 심고 봄을 기다리는 일은, 기나긴 겨울을 보내는데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구근을 하나씩 선물하고 함께 봄을 기다린다. 싹을 틔우고 줄기가 올라오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관찰하다보면 여전히 겨울이지만 마음은 이미 봄에 가 있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쯤이면 어느새 봄은 성큼 곁에 와 있다.


겨울이 저 멀리 있다는 안도감.

내게 튤립은 ‘봄의 시작’이다.



지난 겨울에 심은 튤립(아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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