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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챔버 Dec 16. 2021

생명을 편집하는 기술 크리스퍼(CRISPR)

  낫형 적혈구(sickle cell trait)라는 것이 있다. 적혈구가 동그랗게 생겨야 하는데 마치 낫 모양처럼 생겨서 산소를 제대로 운반하지 못한다. 주로 아프리카 사하라 주변 지역의 사람들과 남유럽 등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유전적  질병이다. 이 질병은 우리 몸의 DNA 구조 중 제일 첫 번째 DNA가 돌연변이가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까지 이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보통 10세 정도까지만 생존할 수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 역시 어린아이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Unnatural Selection’에 소개된 이 질병은 한 아이의 시력을 완전히 앗아가고 있었다. 유일한 희망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DNA 염기서열 구조를 변형시켜 정상세포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때 사용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바로 일명 유전자 가위 기술이다.

NETFLIX 영화 'Unnatural Selection'

 유전자 가위란 DNA 특정 부위에 인공 효소를 집어넣어 세포 속 유전자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하여 원하는 대로 잘라내고 편집하는 기술이다(위키백과). 즉 효소가 천연 가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DNA 특정 구간을 잘라낼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1세대 징크핑거 (ZFN :  zinc finger nuclease), 2세대 탈렌 (TALEN : Transcriptor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을 이어 3세대인 크리스퍼/캐스나인(CRISPR : Clustered Regularly-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Cas9)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크리스퍼는 박테리아나 고세균 유전자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DNA 서열을 지칭하는 것으로 2012년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연구팀에 의해 CRISPR와 연관된 단백질 9번(Cas9)의 기능을 밝혀 낸 논문[1]을 발표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는 바이러스 감염 시 숙주 세포 게놈에 바이러스 DNA 일부를 저장하고, 이 저장된 DNA 서열로부터 CRISPR RNA를 발현하여 특정 크리스퍼 단백질과 결합한 후 바이러스 DNA 혹은 RNA를 파괴하는 시스템으로 박테리아가 바이러스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시킨 면역 시스템이다.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의 유전정보를 워드프로세서처럼 편집할 수 있어 유전질환뿐만 아니라 암, 감염증, 자가면역 질환 등의 치료에도 사용될 수 있다. Market and Market사의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유전자 가위 기술의 생명공학 및 제약 응용분야의 전체 세계 시장은 2014년 $1,845백만 달러에서 2019년 $3,514백만 달러로 성장했고 연평균 13.75%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신의 영역인 유전자 편집을 인간이 직접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서 크리스퍼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ZFN’과 ‘TALEN’을 키워드로 PubMed에 등록된 논문이 923편인데 ‘CRISPR’를 키워드로 한 논문은 2018년 한 해에만 4,414 편이 출간되었다. 기존 유전자 가위 기술은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수준의 숙련도가 필요하지만 크리스퍼 기술은 약간의 숙련도만 있으면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심지어 개인형 맞춤형 키트까지 나온 상태이다. 바이오 해커[2]인 조시아 제이너와 하버드 의과대학 유전학과 교수인 조지 처치가 주도하는 CRISPR 유전자 키트 판매 프로젝트인 'ODIN'에서는 2021 년 9월 현재 DIY CRISPR 유전자 키트를 16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https://www.the-odin.com/diy-crispr-kit 에서 판매 중인 유전자 키트

  이처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이전의 1,2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 접근성이 용이하다. 특히 특정 DNA 부위를 정밀하게 표적 할 수 있는 장점은 정상 유전자를 치환하여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세대로 유전되지 않는 암과 같은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s)를 제거하고 면역세포를 생성시켜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암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후대에 유전이 되는 생식세포 돌연변이(Germline Mutations)에 대한 인위적인 간섭이다. 생식세포의 치료는 단지 질병의 치료를 넘어 인체의 개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군가 필요에 의해 인간의 성별, 피부색, 유전적 형질 등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지게 된 것이다.    

중국남방과기대 허젠쿠이 교수

  기적의 기술을 발견한 다우드나 교수는 이 발견이 불치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부터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는 불안까지 크리스퍼의 강력한 파괴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퍼를 통한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는 기술적 위험성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클 것을 예상해 국제사회에서 금지 시 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욕망과 보다 나은 인체에 대한 꿈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한 인체의 변형을 끊임없이 시도하게 했다.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는 홍콩에서 열린 학회에서 크리스퍼로 유전자가 편집된 쌍둥이의 출생을 보고했다. 어머니로부터 HIV 감염이 되지 않도록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즉시 인간을 편집 대상으로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허젠쿠이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1] 중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결국 크리스퍼와 관련된 연구규정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를 계기로 인간을 다른 존재로 진보시키자는 운동인 트랜스 휴머니스트[3]들의 관심 또한 증폭되었다.

영화 '가타카(1997)'

  크리스퍼 기술은 싸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과학적 도구이지만 그로 인한 파급력 또한 엄청나다. 접근의 용이성으로 인한 바이오해커의 시도가 자칫 인간 개조에 악용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종 전체로 확산시켜 개량종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난임 야생쥐 프로젝트[4] 등을 통해 특정 종 하나를 완전히 멸종시킨다. 이런 기술은 무기로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또 아직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또 그 영향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번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크리스퍼의 윤리적 논란은 이런 불확실성에 따름이. 또 인간 강화의 기술로 사용하게 되었을 때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20년 전 영화 ‘가타카’에서는 유전자 편집기술로 인한 우생학적인 인류사회의 모순을 경고했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을 비롯한 적극적 인간 개조가 실현될 경우 인간의 서열화가 일어나 새로운 형태의 제노사이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크리스퍼는 분명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꿈의 기술이다. 이 기술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게 될 수 있도록 이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다 함께 고찰할 시간이다.       


<각주>

[1] Jinek, Martin, et al. "A programmable dual-RNA–guided DNA endonuclease in adaptive bacterial immunity." science 337.6096 (2012): 816-821.         


[2] 바이오 해커는 생명공학을 민주주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치를 표방하며 등장했다. 분자생물학을 중심으로 스스로 공부하고 실험하며 자신의 신체를 직접 고치거나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3] 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이다. 이것은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위키백과)


[4] 뉴질랜드에 시도 중인 야생쥐 난임 유전자 드라이브 프로젝트로 토종 앵무새인 카카포가 야생쥐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다다르자 난임 유전자를 이용한 쥐를 박멸시키려고 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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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1. 식품의약품 안전처. “유전자 가위 기술 연구개발 동향 보고서” 식품의약 안전처 (2017):5-20.

2. 이대희. "[하이라이트] 차세대 분자진단을 위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셜록 홈즈."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37.4 (2019): 440-447.

3. 전방욱.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의한 인간 배아 편집의 과장: 국내외 신문기사 내용의 과장 등급에 근거하여." 생명윤리 19.2 (2018): 77-84.

4. 최윤주, and 이아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윤리적 문제." 인문과학 79 (2020): 149-178.

5. Jinek, M., K. Chylinski, I. Fonfara, M. Hauer, J. A. Doudna, and E. Charpentier. "A Programmable Dual-Rna-Guided DNA Endonuclease in Adaptive Bacterial Immunity." Science 337, no. 6096 (Aug 17 2012): 816-21.

6. Redman M, King A, Watson C, et al. Arch Dis Child Educ Pract Ed 2016;101:21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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