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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Jun 24. 2024

이제는 휘발되어 버린 마음에 관하여

2017년 10월 영화 <시인의 사랑>

몇 년에 걸쳐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다. 그게 사랑이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글쎄 나 혼자 좋아한 것일 뿐인데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 아이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고 그 아이를 더 자주 보고 싶었다. 보고 있으면 손이라도 잡고 싶고 안고 싶었고 그 아이의 깊은 곳까지 알고 싶긴 했지만 영화 속 강순의 말처럼 그 애의 똥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처절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당시의 나로서는 그 애가 없으면 죽을 것 같기는 했다. 

 관하여

영화 속의 택기가 그러했듯, 그 아이를 좋아하는 감정은 나도 모르게 스르륵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더니 한순간 그 안에 나를 퐁당하고 빠뜨려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자꾸만 그 아이의 곁을 알짱거리거나 눈으로 그를 찾아다녔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이 좋았다. 듣기 좋은 목소리, 깔끔한 옷차림, 시원하고 깨끗한 향기, 쟤도 날 좋아하나 헷갈릴 정도로 불필요하게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 


좋아한다는 감정에 익사해 버릴 것만 같았던 어느 겨울밤에 나는 그 아이의 동네 놀이터에서 벌벌 떨며 고백을 하고 며칠 뒤에 차였다. 좋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로 나름 그 아이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면서 그 아이를 향한 마음도 접으려고 했었지만 그 노력들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실연을 당하면 쿨하게 인정하고 돌아설 줄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좋아하는 감정에 집착과 오기까지 더해졌고 1~2년 정도에 거쳐서 두어 번쯤 더 고백을 했었다. 처절함은 없었지만 간절함은 있었다. 찌질함도 있었다, 매우. 


그 이후로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 몇 번쯤 연애도 하고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거구나'하는 감정도 강렬하게 느껴봤지만, 여전히 첫사랑을 물으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함께 딸려오는 그때의 감정들. 그 아이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느꼈던 설렘과 떨림, 때때로 이길 수 없을 만큼 크게 밀려오던 간절함과 그리움, 결국 나는 네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까지.


우리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한 번씩 만나서 얼굴도 보는 사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만남에 설레지도 않고 그 아이가 간절하지도 않다. 지난날의 감정이 차근히 휘발된 지 이미 오래전 일처럼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관계가/대상이 된 것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 택기가 이 문장을 적을 때의 마음이 나와 같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떠올렸을지는 나와 같을 것이다. 한 번씩 걷잡을 수 없이 아련함에 빠지게 하고, '그때의 우리가 만약..'을 상상해보게 하던 그 아이.


영화관을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겨울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입지도 않은 코트의 깃을 여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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