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긴 혼잣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ty noodle Sep 10. 2024

마음을 멈춰주세요

2024.07.28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임에 합류하고 처음으로 글을 씁니다. 처음으로 쓰는 글의 주제가 ‘내가 주의하는 것’이라니, 상징적이군요. ‘주의하는 것’이라는 말 자체도 무게가 상당한데, 그 앞에 ‘인생에서’라는 말이 붙으니 뭔가 엄청난 것을 써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허허.


하지만 '인생에서'는 빼고 최근의 저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마음 가볍게, 새벽의 기운을 받아 손가락을 놀려 보겠습니다. 너무 가벼운 글을 써버리게 되어 첫 글 작성 이후로 쫓겨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지만, 일단은 마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써볼게요.



요즘의 저는 사람에게 금세 반해버리는 일을 주의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의하는 것’이기보다는 ‘주의해야 하는 것’에 더 가깝겠어요. 한동안은 쉽게 반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길래, 몇 해 전 성숙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덕분에 금사빠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개가 똥을 끊죠. 얼마 전에는 1년 동안 사귀었던 사람과 이별한 지 두 달 만에 미지의 인물에게 섣불리 반해버리고 또 그 마음을 고백까지 해버렸습니다.


미숙한 상태로 전해진 고백은 뜻밖에도 수락되어 새로운 연애로 이어졌습니다만, 여린 가지에 붙은 설익은 열매 같던 그 어설픈 연애는 한 달도 채 안되어서 이별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주 글쓰기 모임의 마감 시간 몇 시간 전쯤에 저는 그와 만나 서로 사랑에 대한 정의와 연애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우리의 극명한 가치관 차이를 직면한 뒤에 ‘잘 지내, 늘 응원할게’ 따위의 멋없는 말을 건네고, 잠시나마 아주 친밀했던 그와는 영영 이별을 하겠지요.


변명은 구차하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원래는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다시 금사빠가 되어버린 것은 맞(는 듯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것’이라는 말을 이렇게 빨리 실천해 본 적은 3N살 평생 처음입니다. 심지어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도 않는다구요. 그래서 연애를 마치고 나면 꼭 1년 이상은 공백기를 가지며 마음을 추슬렀는데, 올해의 저에게 일어난 이상현상은 뭘까요. 아무래도 지난 연애의 헛헛함이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척 컸었나 보죠?


사실 그 관계를 종결한 뒤로는 오랜만에 상담센터를 찾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도 받는 일도 시작했어요. 첫 방문에 상담 신청서를 작성할 때 어떤 관계에서든 깊어지고 나면 어느 순간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서 나를 지키면서 관계 속에 있고 싶다고 적었는데, 작년에 시작되어 올해 끝난 그 관계는 생각보다 더 저를 옅어지게 했나 봅니다. 이토록 저답지 않은 행동으로 저를 놀라게 하다니요.


다행히 이번주에는 상담 선생님께서 휴가를 가셔서 상담을 건너뛰었는데, 다음 주 상담에서 "선생님…저… 또 헤어졌어요…"라고 말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낯이 뜨겁습니다. 지난주에 새로운 연애 이야기를 조잘대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누들님이 이번 관계에 만족하시는 것 같아 좋지만, 한편으로는 또 같은 상처를 받으실까 봐 걱정이 돼요"라는 말만 안 하셨더라도 조금은 덜 민망할 텐데 말이에요.



아무튼 이런 사건을 이유로, 최근의 저는 누구에게든 금세 반해버리는 일을 주의하려 노력 중입니다. 마음이라는 놈이 워낙 관성이 센 녀석이다 보니 제 시도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들지만, 적어도 주의를 하는 것과 아예 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다르겠지요. 그러고 보니 제 결심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이참에 핸드폰 화면에 미끄럼 주의 표지판 이미지를 설정해 두는 것도 좋겠네요. 만약 귀여운 표지판을 발견하신다면 저에게 꼭 좀 알려주셔요, 호호.

매거진의 이전글 이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