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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araxia Sep 18. 2019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대중을 움직이는 정치인의 감수성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최근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 17년 전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라는 키워드만 빼면 조국 법무부 장관과 놓인 상황과 처지가 물론 전혀 달랐다. 그리고 진실과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위기를 타개했다는 점에서도 조 장관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는 한 정치인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말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호남지역 경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을 문제 삼는 세력의 네거티브 공세에 직면했다. 그가 택한 길은 정면돌파였다. 그는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대중이 노 후보 자신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연설 일부를 그대로 되짚어 보자.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호남지역 경선 당시

 “제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해방되는 해 실명을 하셔서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남 지역민들은 이 질문에 답해 노 후보에게 압도적 승리를 안겨줬다. 이 기세를 몰아 결국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나아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된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 지지는 정치인들에겐 존재 이유이자 활동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과 눈높이를 맞춰 상호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된 소통의 제스처로 정치판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인물도 있다. 


 고졸 출신 대기업 여성 임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 간판으로 떠오른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다. 양향자, 하면 눈물의 입당 기자회견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1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영입된 양 전 상무는 “대기업에서 잘 나가다 갑자기 웬 정치?”라는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당 기자회견 발표문을 보자. 


 “움츠리고 있는 청년들이 용기 있게 내딛는 그 길에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박사급 연구자가 수두룩한 글로벌 기업에서, 고졸이었던 제가 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셨던 많은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고, 동료들의 배려가 있습니다.

2016년 1월 12일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닦는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이제 청년들에게 제가 힘이 되고 싶습니다. 학벌의 유리천정, 여성의 유리천정, 출신의 유리천정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신이 어디이던, 학벌이 어떠하던,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펙은 결론이 아닌 자부심이어야 합니다. 없는 길을 만들며 무수히 눈물을 삼켰던 주인공이 제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간 인생을 반추하며 정치 입문의 변(辯)을 밝힐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눈물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살아온 인생이 전하는 메시지만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은 없다. 




 정치판이라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말’이라는 칼과 방패로 전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에게 말만큼 그들이 지닌 사회적 감수성의 척도가 되는 것도 없다. 


 내가 스피치라이터로 모셨던 한 국회의원 출신 장관은 그런 측면에서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노련한 정치인 출신답게 누구에게든 호칭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정부가 파견하는 베이비시터를 칭할 때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붙였다. 공식적인 인터뷰에서나 사석에서나 항상 빼먹지 않았다. ‘선생님’이라는 존칭은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의미로 여러 직군에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육아도우미는 아무리 예의 바른 사람에게도 그동안 ‘이모님’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이란 호칭은 육아도우미들에게 부모를 대신하는 양육 책임자로서 직업적 자긍심을 안겨줄 수 있다. 육아도우미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시킬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해 항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 서비스의 질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감수성은 그저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은 가장 흔하게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영역일 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육아도우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을 다시 만나진 못했다. 


 

 요즘 '삭발 투쟁'으로 다시 뉴스 중심이 된 이언주 의원은 2년여 전 "그냥 동네 아줌마" 발언으로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적이 있다.  이 의원은 2017년 여름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한 학교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다. 왜 이들이 정규직이 돼야 하느냐”라고 했다가 호된 후폭풍을 맞았다. 

 이 의원은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급식노동자들의 극한 작업환경과 높은 산재율을 망각했다. 또한, ‘급식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인다는 직업적 자긍심이 있으며, 학교가 이들에겐 치열한 밥벌이의 터전임을 망각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며 국민들이 안은 저마다의 사연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헤어릴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이 먼저 발달해야 한다. 


 그런 정치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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