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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개 Jan 01. 2022

[인터뷰]오직 전진, 도전하는 삶의 궤적이 멋진 손성경

[낄낄 프로젝트] 두 번째 친구

낄낄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 → [낄낄 프로젝트의 서막] 클릭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어린 시절

터닝 포인트 맞은 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으로

전기 분야 기술자에서 의류 업계로 직종 변경

'0'에서 시작, 배움에 목마를 때 현장에서 답 찾다

생산·판매·기획 등 온-오프라인 종횡무진

화합·관용·주관의 가치 담은 브랜딩 목표




바른 생각으로 비롯된 말과 행동 그리고 집중.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참 멋있는 사람 손성경. 꾸준함과 성실함이 돋보이는 내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랑하고픈 멋쟁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를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살며, 삶의 매 순간을 몰입하는 그는 늘 도전에 있어 머뭇거림이 없다. 훗날 자신이 만든 브랜드로 사람들과 연대하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이 사람. 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손성경. 2018년 김해에서 열린 청년 포럼에서 처음 만난 후부터 우정을 쌓았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이 시간에 나는 이 친구가 참 따뜻하고 긍정적이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이번 인터뷰이는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지라 나는 확신을 넘어선 묵직한 부담감까지 느꼈던 시간이기도 했다. 눈이 소복이 내린 12월의 겨울날, 그를 만났다.     



글. 햇배



혼자서는 NO, 사람과 조화되어 최고가 되자

성경이에게 먼저 인터뷰 동의를 구하고 질의서를 만들기 위해 간단히 공개 가능한 수준의 연도별 이력을 요청했었다. 몇 분 후 도착한 PDF 파일 하나. 입사 지원용 이력서였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낱낱이 기술된 자료를 턱 하니 내주니 이걸 열어봐도 되는 것일지 고민도 잠시. “네가 이걸 세상에 뿌릴 것도 아니고. 나로서는 너에게 빨리 건네줄 수 있는 게 이거야.”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참, 이게 성경이지.    



― 너를 소개한다면?

“네가 최근에 ‘인스타그램이 나의 명함이 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게 하나의 브랜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HSSK’로 정리해봤어. 내 아이덴티티(identity)이자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야.”     


@hameleon.official 인스타그램 캡처



“정리하자면 혼자의 힘만으로는 잘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기에 살아가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과 조화되어 최고가 되자는 의미를 담았어.”     



옷에 새긴 자수로 자신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다



― 하멜레온(@hameleon.official)이라는 인스타그램 ID도 특이했어.

“하모니(harmony)와 카멜레온(chameleon)의 합성어야. 카멜레온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색을 바꾸잖아. 내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색이 나올 거야. 무한의 가능성을 펼쳐놓은 거지.”  


   

―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뭐였어?

“초등학생 때 막연히 내가 좋아했던 게 축구라 축구 선수가 꿈이었지. 고등학교 들어서는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당시에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고, 사랑 받는 존재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이잖아. 남들 또한 그렇기에 내가 소중하듯, 남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한편으로는 세상에 행복한 사람들도 있지만 힘든 사람도 많아. 이들에게 눈길이 갔고 비영리 단체나 국제기구 같은 곳에서 일하며 도움을 주고 싶었어. 아직도 내 가슴 한켠에는 그들을 위해 일해보고픈 마음이 남아 있지.”     



― 공고에 진학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왠지 넌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했을 것 같아 질문해봤어.

“내가 공고에 간 이유는 당시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었고, 아버지께서 어중간하게 할 바에는 기술을 배우라고 하셔서 진학하게 됐지. 내 의견보단 부모님 뜻을 따른 거야. 대학교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었어. 그때도 아버지는 사회복지가 경제적으로 생활하기에는 힘들다며 기술을 배워서 빨리 크길 바라셨지. 부모님은 자식이 어떻게 사회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조언해주시잖아. 그래서 전기계측제어 분야를 전공하게 됐어.”     



― 넌 사회복지를 전공했어도 잘했을 것 같아. 대학 졸업 후에는 전기회사에 다녔구나.

“한 회사에 5년을 근무했지.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 플랜트나 빌딩, 아파트 등을 시공하는 곳에 기술부로 들어갔어. 입사 후 한 달도 안 돼서 아랍에미리트 복합화력발전소 현장 관리직에 자원하게 됐지.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 기회라고 생각했거든. 타국에서는 어떤 문화가 형성돼 있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이 나라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막상 가보니 일이 고되고 쉽지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 우리는 2018년 거제에서 처음 봤잖아. 네가 일을 그만두고 서울에 간다고 했을 때가 기억나.

“해외에 파견 근무를 한 것처럼 거제 역시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거야. 나는 거제에 갈 때부터 이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오는 시간이라 생각했어. 당시 20대의 마지막이기도 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예전에 아버지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말에 따랐던 부분이 많았거든. 내가 대학 들어갈 때 아버지가 ‘네가 열심히 해볼 것 다 해본 후 이 길이 아니라면 그때 가서 진로를 바꿔라. 그럼 내가 아무 말 안 하겠다고 하셨어. 이 말을 대학 선택할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지. 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했잖아. 전기회사에서 기술을 배워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방안도 꿈꾸기도 했어.”     


 

― 아버지와 모종의 비밀 계약(?)이 있었구나.

“5년이란 시간 동안 회사에서 현장 관리 경험은 물론 본사·해외 지사 근무 등 할 건 다 해봤지. 이제 아버지가 뭐라 해도 자신이 있을 만큼 명분이 확보된 거야. 나는 힘든 일을 다 이겨내고 해 볼 거 다 해봤다는 명분. 그리고 더 지체하면 직종을 바꾸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두게 됐지.”     



― 거제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하면서 뭘 하고 싶은지 찾은 거네. 그게 뭐였어?

“모자를 만드는 것. 단순히 모자를 제작·판매해서 돈을 잘 벌겠다는 게 아니야. 내가 만든 제품에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이 사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장(), 커뮤니티가 됐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지. 너도 [낄낄 프로젝트]를 하면서 네 주변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듯, 나는 내 제품을 통해 서로 간 질문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 형성되길 바랐어. 획일적인 제안보다 서로 질문하며 답을 찾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제품이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이론보다 현장! 필드에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수로 전진 또 전진

손현 작가는 <글쓰기의 쓸모>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에 초점을 두기보단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뒤로 하고 동대문으로 간 성경이에게 혹자는 ‘맨땅에 헤딩’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시도하지 않았을 때 잃게 될 기회를 파악하고 처절하게 자신을 객관화시켜 누구보다도 계산적이고 치밀하게 작전을 짰으리라.

   


― 의류도 수많은 종류가 있잖아. 왜 모자였어?

“개인이 입는 옷은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부분이자 보이는 거잖아. 그중에서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비즈니스적인 모델로서 어떤 게 리스크가 적고 현실성이 있을지 고민했어. 나는 원래 모자를 안 쓰던 사람이었는데 해외 근무 땐 햇빛이 너무 강해서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됐거든. 또 모자는 사이즈 편차가 크지 않고 부피·무게도 작아. 내가 이 분야에 달려들었을 때 생존할 수 있는 영역이라 판단한 거지.”     



― 많은 고민 끝에 ‘결단’하게 된 거구나.

“친구 아는 사람 중에 모자 디자이너가 있었어. 그분이 빨리 배울 수 있는 곳을 알려주셨지.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의류산업의 메카 동대문이었어. 그곳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 판매가 활발히 일어나는 곳, 체계적으로 돼 있는 곳을 리스트업 해서 다 둘러봤어. 마침 이중 도·소매 전문업체가 구인구직을 하길래 일하게 됐지.”   


  

― 주말에는 의류 편집매장에서도 일했었잖아. 어떻게 일하게 된 거야?

“어릴 적 교회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은사님이 계셨어. 그분께 퇴사 후 동대문에서 일하고 있지만 배움에 있어 부족한 것 같다고 내가 처한 상황을 전했지. 내가 좋아하는 롤 모델은 패션 신(scene)에서 어떤 사람이고, 그를 만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알려드렸어. 그 사람이 *버질 아블로라는 패션 디자이너였거든. 이 분야의 최고를 만나고 싶었어. 버질 아블로가 만든 브랜드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독학해 바지를 리폼해서 직접 전달하고 싶었어. 한국에 딱 한 번 왔을 때 난 너와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고.”     



*버질 아블로(1980~2021) : 루이뷔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오프화이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패션뿐 아니라 디자인, 음악, 공연 등에서 활약한 전방위 문화 생산자이며 인품도 매우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박찬용 칼럼니스트는 그를 ‘시장 위에서 능숙하게 파도를 타며 늘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예술·사업가’라고 표현했다.     



“롤 모델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밤새 바지를 만들고, 몇 시간 동안 공연장 앞에서 기다렸지. 결국엔 전달을 못 해서 공연할 때 맨 앞에 서서 노트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서 보여줬어. 그런데 버질 아블로는 공연에 집중해 내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어. 나는 그걸 보면서 느꼈지. 이 신에서 실력을 키워야겠다. 그런 후에 만나야겠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내 의사만 표현한다고 해서 롤 모델의 이목을 끌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은사님에게 이야기했어.      



버질 아블로 디제잉 공연.



사실 대학 졸업 후 내 궤적이 의류 쪽이랑 관련 없었잖아. 이야기를 들은 은사님은 내 진심을 아시곤 의류 편집매장을 운영하는 대표님을 소개해 주셨어. 그리고 그분을 만난 자리에서 내 목표를 전했지. ‘돈 안 줘도 되니까 주말에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일 가르쳐 주세요’라고. 그렇게 일하게 된 거야.”     



―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곳에서는 어떤 걸 배웠어?

“동대문은 브랜드가 아닌 보세를 취급해. 편집매장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로 다루는 곳이지. 동대문은 괜찮은 디자인과 가성비로 많이 팔자는 목적이라면, 편집매장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가 명확해.”     



― 옷을 판다고 다 같은 곳이 아니네.

“난 브랜드 제품이 어떻게 판매되고 어떤 가치로 브랜딩 해서 옷을 디자인하는지 생태계가 궁금했어. 편집매장에서 일한 덕에 브랜드 관계자를 많이 만나게 됐어. 여러 매장에 가보고 수주할 때 참여해보고, 바잉 할 때도 따라가 봤지. 디자이너 브랜드 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알게 된 거야. 내가 전문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필요한 부분을 필드에 나가서 배운 거지.”     



― 잠시만, 주말에는 모자공장에서도 일했잖아?

“토요일은 편집매장, 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모자공장. 도소매업을 하면 모자에다 자수를 놓던, 나염을 하던 가공 해서 견적까지 내. 일련의 작업에 대해 상품 가격이 어떻게 측정되는지 내가 ‘직접’ 못 보는 거야. 결국 세일즈만 하는데 생산 과정을 잘 알아야 실수나 사고가 적어지겠지. 나는 공장과 사업자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싶었어. 그러면서 모자를 제작하는 공장 사장님들을 6개월 동안 눈여겨보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나는 평일, 토요일에 일정이 있어서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는 거야. 하필 그날 공장도 쉬거든. 사장님이 주말에 공장을 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지. 그러던 중 내가 거래처 사장님에게 제품을 대량 생산·납품할 수 있는 오더권을 줬던 계기가 있었어. 일감을 드린 거지. 어떻게 보면 사장님은 나한테 뭔가를 받았잖아? 그래서 요구했어. 금전적인 걸 떠나서 일거리가 있으면 하나씩 줘라, 나와서 일하겠다고 얘기를 했지.”     



― 사장님도 일요일에는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일요일에 사장님이랑 나만 나오는 거야. 어린 친구가 열정적으로 달려들고 아쉬운 부분도 보이니까 승낙하게 되셨지. 이제는 사장님도 평일에 나한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곤 미리 일감을 만들어 놔. 나는 매주 토요일에는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내일 공장에 가도 되는지 꼭 확인해.”     



― 이쯤에서 사장님이 너에 대해 해 주신 말이 있을 것 같아.

진짜 특이한 놈이다. 할 일 없냐고.(웃음) 여자친구 안 만나냐, 연애 안 하냐 이러시지. 나는 진짜 하고 싶고 잘 알고 싶어서 한 건데.”     



일요일엔 늘 모자 공장에서 일을 배운다





내가 이루고픈 목표, 값진 것일수록 힘들고 귀하게 얻는다는 믿음

물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돌부리에 넘어진 적도 있었겠지. 하지만 당신의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는 듯 묵묵히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에게 닥친 일련의 시련들이 되려 자신을 성장시켰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은 깨달음이 되어 성경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 사실 네가 쉬는 날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어.

“즐기고는 있지. 사실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피곤해.”     



―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 거야?

나에게 필요한 일이고 하고 싶은 거니까. 값진 것일수록 더 힘들고 귀한 것이라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참 멋있다. 너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인 것 같아. 타고난 성격이야?

“원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었어. 어느 순간 나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되면서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예전에 소속된 곳에서 임원도 돼보고 리더도 해봤는데, 사실 리더라는 자리가 쉽지 않잖아. 전체를 내다보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조직을 끌어야 하잖아. 근데 내가 힘듦을 내색하면 구성원들이 많은 영향을 받더라고. 또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깨달은 건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자는 거야.”     



― 어렸을 때 내성적이었다는 게 믿기질 않아.

“그때가 중3~고1 한창 사춘기였어. 부모님 속을 썩이고 사고 치고 다녔을 때야. 이후 터닝 포인트를 겪고 난 뒤 나의 가치관은 물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향성을 세웠어. 이때 첫사랑도 하면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됐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정립할 수 있었지.”     



― 빨리 철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너 뭐 했길래 애가 변했어?’라고 하더라. 도덕 선생님 같다면서. (웃음) ‘재미없다, 피곤해, 왜 이렇게 애가 변했지’ 이러면서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이랑 멀어졌지.”      



― ‘끼리끼리’ 놀았는데, 확 달라져서 왔으니.

“이외에도 힘든 사건이 많았어. 흔치 않은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났거든. 어머니를 떠나보낸 게 당시에는 정말 큰 힘듦이었지. 그 일에 비하면 다른 일은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힘듦을 통해 다른 부분의 힘듦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어. 왜냐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어봤으니까.”     



― 힘듦을 통해 삶의 태도와 방향성을 확고히 다졌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깊이 울려. 또 다른 질문! 넌 어딜 가든 메모를 많이 하던데 어디에 활용하는 거야?

메모하는 건 관찰하는 거야. 우리는 항상 똑같은 곳에 24시간 있을 순 없잖아. 내가 마주한 이 상황을 관찰하면서 보는 거지. 이 행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획·구성한 것인지 등등.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메모도 내가 보고 듣는 현상을 따라가 보는 거야. 또 상황을 잘 인지하고 기억하려는 의도이기도 해. 나의 필기는 이 시간, 이 순간을 소홀히 흘려버리고 싶지 않아서 하는 거야.”     



― 그러면서 순간에 더 머물 수 있구나.

“맞아. 지금을 잘 기억하기 위한 행동이야. 단순히 ‘좋다~’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게 왜 좋은 것인지 좀 더 현상 자체를 집중하고 관찰하기 위해서 적는 거지.”     



― 지금은 MD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해준다면?

“MD는 상품을 잘 팔기 위한 모든 것을 기획하는 사람이야. 마케팅은 물론 기획전도 열지. 나는 그동안 실질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일을 많이 했어. 이제는 온라인에 대한 비중이 커질 텐데 이 시장을 배우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 중이야.”     



― 그동안 밥벌이로 구축한 너의 전문성이 있다면?

사람 간의 관계가 나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해. 나는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직종, 여러 사람과 부딪히면서 일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건 간에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힘들지 않아.”

 


― 나는 클라이언트 잡이라 이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크거든. 혹시 나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

“부당한 일은 당연히 열 받지. 근데 스트레스를 준 사람에게 네가 받은 감정을 되돌려준다면 그것대로 개운하지도 않잖아. 나는 그냥 똥은 똥이다라고 생각해. 오해하지 마. 이 사람을 똥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 ‘똥은 똥이다’라..

“중학교 때 간 캠프에서 얻은 나만의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이 캠프에서는 3일 동안 ‘똥은 뭐야’라는 한 가지 질문만 해. 많은 학생이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했을 거 아냐? 똥은 거름이야, 좋은 거야, 냄새나는 거야, 혐오하는 거야… 결국엔 ‘똥은 똥이야’라는 결론에 이르렀지. 나한테는 크게 와닿았어.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나 자신을 바꾸기도 힘든데 내가 타인을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 매우 철학적인 캠프인 것 같아.

“어떠한 패러다임에 갇히기보다 사유하면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




화합, 관용, 주관을 담은 브랜드 만들고파

김도영 작가는 <기획자의 독서>에서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마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과도 닮아서 브랜딩이 참 좋다고 말한다.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가 오롯이 담기는 브랜드는  허투루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기획자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을 것이다. 난 성경이의 궤적에 고된 노력과 치열한 고민이 스며있기에 그것 또한 좋은 브랜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네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딩은 뭐야? 난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메시지 안에는 브랜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철학이 있어야 해. 그것을 실현하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이고. 브랜드의 가치를 지속해서 실현하고, 소비자와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것.”     



― 맞아. 브랜드가 파는 물건이 못생겨도 그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나 메시지가 명확하면 소비자는 가격에 상관없이 산다고 하더라.

“현실과 동떨어진 가치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는 쉬워야 해. 너무 철학적이거나 복잡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더 유쾌하고,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나도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아.”    

 

첨언하자면 스티브 잡스는 “나이키는 신발을 파는 게 아니라 비전과 이상을 판다”고 말했다. 송영길 저 <그냥 하지 말라>에서는 ‘브랜드는 지금부터 의미를 팔게 될 것’이라 한다. 뭔가 뜻깊은 일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는 숭고하긴 하지만 지속되기는 어렵다고도 전한다. 저자는 사회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 미래에 네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의 가치나 철학은 뭐야?

화합, 관용 그리고 주관. ‘우리 물건은 이 의미를 담고 있어’라기보단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을 확립할 수 있는 도구이길 바라. 다양한 이야기의 장이자 타인의 관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해. 다양한 표현과 질문들이 오가야지 우리가 좀 더 우리다워질 수 있고, 삶을 잘 살 수 있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을 담당하는 김도영 작가는 <기획자의 독서>에서 좋은 브랜드에 대해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가치관과 소비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브랜드’라고 정의했다. 브랜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은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성경의 메시지와 저자의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      




― 책도 많이 읽는데 요즘 어떤 걸 읽어?

“주로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어. 내가 모르는 부분, 내가 알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것들이지. 나는 책을 다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취해. 먼저 목차를 보면서 궁금한 부분이나 핵심, 알고 싶은 내용만 캐치되면 그냥 덮어.”     



― 오. 예전에 1년에 책을 100권 넘게 읽는 다독가 책방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이분도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고 하셨어.

“나는 처음부터 다 읽겠다는 생각으로 안 사. 책을 살 때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 궁금한 걸 채워줄 수 있는 책을 찾아서 읽지.”



― 혹시 나한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어?

“<나음보다 다름>, <언카피어블>, <나는 7년 동안 세계 최고를 만났다>. 네가 브랜딩을 고민하잖아. 넓은 시장 속에 하나의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나타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좋은 책이 <나음보다 다름>이야. <언카피어블>은 스타트업에 대한 얘기야. 혁신 쌓기 과정에서 브랜드가 어떤 형식으로 경쟁력을 쌓아가는지 보여주지. 브랜딩에 대한 전문성, 경쟁력을 어떻게 키워갔는지 담겨있어.


마지막으로 <나는 7년 동안 세계 최고를 만났다>에서는 의대생이 성공한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야.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담은 책이지.  브랜딩을 하면서 열정과 무모한 도전 사이에서 실패를 딛고 나아가는 부분이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했어.”  


   

인터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경은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바우터 하멜의 ‘Breezy’, ‘Escapade’ 음악과 함께 나에게 추천하는 책 세 권을 모두 선물했다. 고마워!


     


 ― 일에서 벗어난 시간에는 뭘 해?

“내가 보고 배워야 할 것을 공부하거나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 혹시 침대에 멍하게 누워 있을 때도 있어?

“그럼~ 유튜브도 재밌는 영상이나 킬링타임용을 많이 봐. 나도 사람인지라 몸이 힘들 땐 쉬어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아무것도 안 해.”     



― 무슨 색을 좋아해?

“검은색과 흰색. 흑과 백을 매칭하는 이유는 삶이 시작될 때 빛이 들어오잖아. 백색이었다가 삶을 거둘 때 어두워지는… 인생을 담고 있는 색이라 좋아해.”     



― 내가 무슨 질문만 하면 명언이 쏟아지냐. 인터뷰어는 이런 걸 좋아해. 혹시 주변에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남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그리고 자기 목표나 꿈을 계속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 사람이 나한테는 너인 것 같아.

“나도 너야.”



― 항상 친구들한테도 널 자랑하거든. 목표를 잡고 열심히 사는 친구가 있는데 대박이지 않니? 이러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내 인생이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예상할 수 없어서야.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 나를 가다듬고 정진하는 이유지.”     



― 살면서 꼭 지키는 나만의 약속이 있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어찌 됐든 간에 우리는 삶을 살면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무엇인가를 계속하잖아. 그냥 최선을 다해 미련 없이 하고 싶어. 결국 인생은 한 번이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니까.”  


   

― 세상에는 너무 유혹이 많아. 온수 매트 깔린 아늑한 침대도 있고.

얼마나 잘 몰입하느냐, 안 하느냐. 그게 하나의 과제고 관건이지.”     



― 몰입이라.. 가슴에 확 꽂히는 단어인 것 같아. 넌 몰입을 되게 잘하는 친구야!

“필요하니까. 사실 몰입해도 부족할 때가 많아. 몰입해야 효율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아.”   


  



너? 순수한 본능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     


― 네가 기억하는 나의 첫인상은 어땠어?

“직진녀. 어떠한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자기 본능으로 순수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얘기하는 모습이 되게 멋있었어.”     



― 네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     



― 오늘 인터뷰 시간 중 제일 길게 고민하고 있어.

미진이는 미진이지.”     



― 똥은 똥이다?

“하하. 는 질문하는 친구야. 그리고 어떨 때 보면 불안해하고 걱정도 많이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는 친구인 것 같아. 한 걸음씩 차근차근 그 질문에 답해가면서 나아가는 친구.”     



― 딴 길로도 엄청 새.

“어떤 사람이 항상 옳겠어. 완벽한 사람은 없지.”



― 직진녀 외에 또 다른 게 있을까?

“씩씩해.”     



― 많이 들어봤어. 상사한테 씩씩하게 인사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고. 사회부 신입기자 때 아침에 경찰서 한 바퀴 돌고 브리핑 전화할 때나 사무실 가서 인사 소리가 작으면 무슨 일 있는지 걱정하실 정도로.

“넌 두려움과 걱정이 있지만, 씩씩하게 하나씩 잘해나가는 것 같아.”



― 좋은 말 해줘서 고마워.

“나는 그냥 내가 느꼈던 부분을 얘기한 거야.”     



― 마지막 질문인데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은 자기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해. 나는 나무를 심는 어른이고 싶어. 남들과 잘 어울리면서 화합하고 연대하는 어른이 될래.”



― 나도 한참 ‘연대’에 대한 단어에 꽂혀 있을 때가 있었거든.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 그리고 넌 확실히 몰입해서 너의 일을 하는 것 같아. 내가 좀 배울게.

“아니야, 난 널 통해서 배워.”     



― 인터뷰 소감.

“이 인터뷰를 하고 싶었어. 너의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질문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점검이지. 내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잖아. 난 이게 필요했다고 생각했어. 네 취지도 좋았고 자극을 받고 싶기도 했고. 네가 지금 프로젝트를 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를 나도 얻어가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지.”     



마음껏 얻어가. 그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오픈한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라고 생각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관심 있고, 좋아하고, 집중하고 있는지 남에게 알려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인다고 생각해. 나의 노력과 메시지를 표현해야 타인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을까? 내가 어떠한 능력과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면 기회가 덜 찾아온다고 생각하거든. 이 인터뷰는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어.”



성경이와 나




나는 글을 쓸 때 리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리드는 기사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는 마법의 문장이다. 그래서인지 기자 시절 국장님께선 “고뇌해라. 적확한 리드를 뽑아내라. 리드만 잘 잡으면 기사의 70%는 끝난 것”이라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다.      



성경이를 인터뷰하기 전·후로 문득문득 리드를 생각하곤 했다. 리드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운전 중 신호를 기다리다, 신발을 신다, 책 페이지를 넘기다… 기나긴 생각의 총량만큼 이 친구를 세상 사람에게 널리 자랑하고 싶은데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글은 엉덩이 힘으로 쓰되, 생각은 오래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자 나는 이번 인터뷰를 최대한 담백하게 쓰기로 맘먹었다. 자신만의 메시지를 섬세하게 구축하고 있는 성경이는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나는 사람이니까.


너와 나의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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