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개 Jan 24. 2022

[인터뷰] 내 안의 또 다른 나, 페르소나를 깨우다

[낄낄 프로젝트] 세 번째 친구 양지욱


낄낄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 → [낄낄 프로젝트의 서막] 클릭   



돌이켜보면 대학교 동기로 인연을 맺은 지욱이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스무 살에 마주한 내 삶은 너무 고단했고, 아르바이트와 학교 수업만을 오가며 시간을 질펀하게 흘려보냈다. 찰나의 행복과 긴 시간의 불행이 점철된 20대, 자연히 친구들과 멀어졌으며 지루한 일상을 살아내던 나에겐 그저 주급 아르바이트비만이 삶의 동력이었다.      



지욱이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조별 과제를 함께하면서부터다. 스치듯 인사를 주고받을 땐 몰랐지만 곁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또 재미있는 친구라 늘 유쾌했던 기억이다. 조용해 보였던 지욱이는 무대 위에 서면 확실한 존재감으로 훨훨 날아다녔다. 사실 지욱이를 잘 몰라, 조용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고요했던 내 삶에 콕콕 자극을 주면서. 



그렇게 알게 된 지욱이 속에는 다양한 페르소나가 존재했다. 겉으론 조용해 보이지만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판을 벌리고 그 안에서 보란 듯 춤출 수 있는 사람. 넘어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러너. 우리가 서른두 살이 된 2022년 겨울날, 즐겁고 상쾌한 내 친구 양지욱을 만났다.           



글 햇배





웃음 주는 게 좋았던 아이, 남들과 달라 보이고픈 마음 커 

미녀 삼총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늘 당당한 모습이었고 원하는 게 있다면 술수를 동원해서라도 쟁취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일단 그들처럼 되려면 무술을 잘해야 했다.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텀블링을 하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택견 학원에 갈 정도였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어린 꼬마였다.      




― 너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어?

다들 ‘NO’라고 얘기할 때 나는 아주 작게 ‘YES’라고 말하는 사람튀지는 않지만, 남들과 조금 다르게 가고 싶은 마음이야.”      




― 역시 넌 재미있는 친구야. 언제부터 네 끼를 발산하게 된 거야?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고 주변 사람에게 웃음 주는 걸 즐겼어. 고등학교 땐 공부보단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학교에 일찍 갔던 학생이었거든. (웃음) 그렇게 놀다 보니까 축제 무대까지 나가게 된 거야. 그때 최고로 인기 있었던 빅뱅의 대항마로 ‘걸뱅’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원더걸스 ‘노바디’ 춤을 췄지. 반응이 좋으니 내가 흥분하면서 ‘관종력’이 나오게 된 거야.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끼가 무대를 만나 싹 틔우게 된 거지. 그때 TV 프로그램 스타킹이 인기 있었는데 마침 대구에서 오디션을 한다는 소식에 곧장 달려가서 춤을 췄어.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고 3이 되자마자 작가에게서 전화가 온 거야 ‘이상한(특이한) 여고생 프로젝트’를 하는 데 참가해 줄 수 있냐고. 아쉽지만 그땐 한창 입시 준비할 때라 거절했지.”     




― 작가 눈에도 남달라 보였을 거야. 스타킹 출연 제의를 받다니 대단해. 혹시 장래희망은 뭐였어?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이 장래희망으로 대통령, 과학자를 적을 때 나는 PD를 썼어. 당시에는 PD라는 직종이 흔치 않아서 내 장래희망에도 자부심을 느꼈지. 어릴 때부터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었거든.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 다들 가수 god에서 손호영, 윤계상을 좋아할 때 나는 팬도 아니었는데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어 김태우를 좋아한다고 했지 뭐야. 초등학생 땐 과학의 날에 대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잖아? 난 아이디어가 없는데도 새로운 걸 하고 싶어서 엄마 바짓가랑이 붙잡고 진상처럼 들들 볶은 거야. 결국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져가며 아이디어를 냈어. 결국 상도 탔지.”     




―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게 됐구나. 

“맞아. 고등학생 때 감사하게도 친구들이 춤추고 노는 내 모습을 좋아했어.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이런 나를 긍정적으로 보셨고 진로 상담할 때 신문방송학과를 추천해주셨지.”     




― 친구들한테 웃음을 주는 네 모습이 상상이 가. 한편으로는 널 알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어. 네가 과제 발표 때 랩을 하는 모습에서 내가 충격을 받은 거야 

“나도 내가 다른 사람 같지만, 연기하는 건 아니야. 베이스에 즐거움이 있거든. 근데 나는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많이 떨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창피했어. 긴장을 극복하려고 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시뮬레이션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반복해. 무대 위에서 온전히 즐긴 시간도 있지만결과가 좋았다면 그 이면엔 엄청난 연습이 있었던 거야.”     




― 피나는 연습의 결과물이네 

“고등학생 때까지는 부담감 없이 온전히 즐겼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거든. 그런데 성인이 되니 위축되더라. 내가 변한 것 같다는 괴로움도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그냥 어릴 때의 내 모습일 뿐인데 말이야. 아무튼 사회에 나와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어. 자신에게 늘 엄격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까 봐 조심하면서 예민해졌어. 말속에 항상 실수가 있잖아.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헛소리했을까 봐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어.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해서 차라리 조용하게 지내는 걸 택하게 됐지.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많이 들었던 소리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벽이 느껴진다’는 말이야.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아. 가까워지면 나에 대해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곤 해.”     




― 나는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아예 못 했는데 넌 치열하게 살았더라고. 

“학교 내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는데 밖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 중국 난징대학교 교환학생도 가보고 말이야. 주변에 매우 활동적인 친구가 있었는데 전국의 대학생들을 위한 아카데미에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길래 수락했지. 토론 대회와 발표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졌고 운 좋게도 개인 발표에서 1등을 하게 됐어.”     




― 주제는 뭐였어?

“당시에 광고학을 가르쳐주던 교수님이 나한테 점수를 낮게 준 걸 주제로 삼아 이를 극복한 과정을 설명했지. 그때 심사위원이었던 한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부르셔서 말을 업으로 하는 직업을 택하라고 조언해주셨어. 또 비슷한 시기에 내가 발표하는 걸 본 다른 교수님께서도 리포터를 해보라고 권하셨지. 내 길은 이건가 싶어 쇼호스트를 준비하게 됐어.”     


성적 공개에도 거리낌 없는 지욱. 무대 위에선 부끄러움 1도 없이 당당하다




― 쉽지 않은 직업이잖아. 순발력, 언변이 뛰어나야 하는데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매력적이었어. 아나운서는 차분한 이미지라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리포터처럼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진행하는 건 여러 면에서 끌리지 않았거든. 언변이 좋아도 말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라 주워 담을 수 없잖아. 결국 쇼호스트를 꿈꾸며 휴학하고 서울에 오자마자 쇼호스트 아카데미에 등록했어.”     




굳세어라 지욱. 쇼호스트 아카데미에서 수업 받는 모습



― 추진력이 대단하다. 수업은 어땠어?

“첫 수업에서 느낀 점은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나는 촌스럽고 촌티 나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화려하고 말도 잘해서 좌절감을 느꼈지. 매시간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학원에 가기 싫어서 많이 울었어. 게다가 나는 사투리를 고쳐야 하는 과제가 하나 더 있었어. 화장실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연습해도 표준어가 안 나오는 거야. 나중에는 말을 하기가 싫더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학업을 핑계로 도망치듯 다시 김해로 왔지.” 



    

―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돌이켜보면 정말 황당한 생각인데 그때의 나는 24살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어. 무작정 짐을 싸서 내려오긴 했는데 큰일 났다, 시간을 들여서 한 길로 직진했는데 다른 길을 살펴볼 용기가 없는 거야. 그래도 스피치 기술을 배워왔으니 이걸 썩히지 않을 뭔가가 없을까고민했어. 당시 서울 경기권에는 스피치 동아리 4곳이 있었는데 이외엔 한 곳도 없었어. 부산 경남권 친구들을 위해 까짓것 내가 만들어 버리자고 생각했지사명감이 있었어.”     




― 와. 황무지를 개척한 거네. 너무 멋있다.

“패기 있었지. 하지만 인맥이 없어서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어. 마침 친구가 도와준다고 해서 어설프게 포토샵으로 모집 공고를 만든 다음에 대학교 페이스북 계정에 메시지를 수 백통 뿌렸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이 이걸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어. 결과적으로 창원, 부산 등 부울경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이게 됐고.” 



     

― 그 친구들은 지방에서 쉽게 습득할 수 없는 스피치 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아. 그때 네가 가르친 스피치 기술은 뭐야?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사람은 성장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커리큘럼을 짜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발성 연습, 복식 호흡 등 노하우를 알려줬지. 매주 PPT도 만들게 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어. 그 모습을 녹화하고 인터넷 카페에 올려 피드백을 하는 과정을 6개월가량 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던 활동이었어.”     




동아리 다양성이 부족했던 지방의 한계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다. 사명감으로 만든 스피치 동아리 활동 모습






다양한 직업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련이 남으면 늘 도전이 따랐다. 아쉬움이 없도록 발이라도 담가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일 것이다. 그나저나 지욱이는 언제 이렇게 다양한 일을 했담? 



― 서울에서 김해로 도망쳐온 양지욱은 지금 서울에 있네?

“친구가 취업 준비로 서울에 있었는데 같이 준비해보자는 말에 바로 올라갔어. 아무래도 서울을 쉽게 떠나왔던 전적에 미련이 있었나 봐. 서울 이모 집에서 살다가 취직하면서 자취를 시작했지.”      




― 네가 보내 준 이력을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회사 생활도 열심히 했더라. 첫 직장은 어디였어? 

“부동산에서 잠시 일하다 에뛰드 매장에 있었어. 제일 아쉬운 직장은 쿠팡이야. 부서를 이동하게 되면서 새 업무를 맡았는데 기획안을 만들어 외부 업체를 유치하는 곳이었거든? 아침에 출근하는 게 괴로울 만큼 어려운 업무였어. 고민 후 퇴사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     


다음 직장은 여행사.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 가이드가 되어 여행자들을 인솔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야. 실제 현장에서 일해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웃음) 나는 배낭을 메고 훌훌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완벽한 계획이 세팅된 상황에서 여행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나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것 같아그다음은 배달의 민족에서 리뷰를 관리하는 일을 했지.”      


    


― 다음 직장이 회계 업무를 하는 곳이었네. 사실 우린 ‘파워 문과생’인 줄 알았는데 너와 나의 사이가 살짝 멀어진 기분이야

“나는 수포자였어. 내 인생에 수학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미련이 있었나 봐. 네 브런치에서 ‘쯩’과 관련한 글을 읽었는데 나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거든. 근데 주변에서 회계 자격증 2~3주면 딴다고 하는 거야. 남들 한 번에 붙는다는데 나는 시험을 세 번 볼만큼 어렵게 자격증을 취득했어. 보증보험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업무가 재미있는 거야그리고 내가 계산하고 확인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거야남들은 그렇게 하면 피곤하지 않냐는데 나는 확인 안 하는 게 더 피곤해나랑 잘 맞고 재밌었어. 회계를 선택한 건 어쩌면 내가 포기했던 걸 다시 도전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 

 



― 우와. 정말 다양한 일을 했다

“사실 예전에는 이 점이 콤플렉스였어. 친구들은 한 직종에서 직함도 달고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는데 나는 계속 ‘0’에서 리셋되니 부끄럽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경험을 사서 고생했잖아그 부분이 나한테 소중한 자산이 됐어이 이야기도 과거의 양지욱이었다면 네게 말하지 못했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 계기도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난 참 운이 좋았다는 것도. 내가 궁금하거나 원했던 직종에 발가락이라도 담갔잖아. (웃음더 이상 스스로 자책하지 않을 거야.”  





― 지금은 뭘 준비하고 있어?

“회계, 부동산 업무가 재미있었거든? 그런데 요즘 공인중개사는 너무 많잖아. 그걸 뛰어넘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감정평가사라는 걸 알게 됐어. 이게 고시 공부라 할 정도로 어려운 자격증인데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오는 4월에 시험이 있는데 몇 번은 넘어져 줘야 할 것 같아또 요즘 생각하는 게 부업에 대한 고민이 있어. 근데 인형 눈알 붙이기를 하려고 해도 인맥이 있어야 하더라고. 내가 유튜브로 영상 편집을 할 줄 알게 돼서 이 특기를 살려보고 싶어.”     




― 지금의 넌 어떤 상태인 것 같아? 

너무 좋고 편안해. 예전에는 스스로 채찍질했는데 지금은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 너무 잘됐다. 사실 난 지금 불안정한 시기인 것 같아. 성장,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서 조급하기도 하고.

“네 마음이 뭔지 충분히 알 것 같아. 이제 100세 시대잖아. 지금은 예전의 30대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같은 고민을 하지만불안해하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내가 겨우 24살 때 늙었다고 생각했잖아. 당시엔 다른 길을 선택하기엔 늦었다는 조급함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해. 지금도 우린 어려.”      




― 네가 다양한 일을 했잖아. 여기서 네가 키운 전문성이 있다면? 

“회계는 정확도를 요구해. 회계는 흔히 숫자를 연상하지만 사실 전달의 의미가 더 크더라고. 정확한 전달을 할 수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각도거든. 나는 확인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다시 태어나면 이과를 가고 싶어. 하하. 수학에 미련이 많나 봐.” 




유튜브 뷰티 크리에이터 ‘삐삐’라는 페르소나 

2015년 이모의 화장품 사업을 도와주고자 시작한 유튜브에서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어 냈다. 자신의 모습과 철저히 분리한 캐릭터로 재미도 느꼈지만 힘듦이 더 많았다. 당시 구독자 2천여 명, 업로드한 영상은 100여 개일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며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지욱이는 도망가듯 유튜브를 포기했다. 




양갈래 머리를 한 삐삐



―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했어?

“이모의 화장품 사업을 도와드리고 싶었어. 그때 내 캐릭터를 키운 다음 화장품을 홍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 ‘삐삐’로 캐릭터를 잡았는데 우리가 아는 삐삐 양갈래 머리를 하려면 철사가 필요했어. 캐릭터를 위해 철물점에 가서 적당한 두께, 적당한 휘어짐이 있는 전기 철사를 고르고 골랐지. 머리카락 뜯기는 극한이 고통을 참아내야 했어.”     




― 구독자 반응은 어땠어?

“사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유튜브 스타가 되는 줄 알았거든? 첫 영상을 올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고 일어났는데 조회수가 3이야. (웃음) 아쉬운 점은 편집기술이 부족해서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걸 쉽게 구현할 수 없었어. 또 욕심은 많은데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한 괴리감과 괴로움에 예민해졌지. 내가 중국 진출에 뜻이 있었거든? 중국 계정도 만들고 인기 드라마 패러디도 하면서 열심히 했어. 그런데 지인 중 중국 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있어서 삐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삐삐라는 단어가 중국에서 비속어처럼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는 거야. 세상에!”     





― 하지만 초창기에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고 오래 지속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

“하하. 지금은 완전 레드 오션이지만 그땐 유튜브가 돈이 된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했어. 당시에 여러 유튜버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이 많이 왔었어. 미팅까지 이어졌는데 그때의 양지욱은 정서가 굉장히 불안할 때였거든? 텐션 높은 삐삐를 생각하고 왔던 담당자들이 실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거야. 계약까지 성사되진 못했지.”     




다양한 콘셉트를 찰떡같이 소화해냈다



― 헉, 그 당시에 구독자도 2천 명이 넘을 만큼 인기 있었구나 

“생각보다 날 알아보는 사람이 진짜 많았어. 거기서 이제 연예인병이라는 고통이 시작된 거야. 밖에서 나쁜 짓 하는 건 아니지만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제일 무서웠던 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페에 가서 잘 놀다가 집에 왔는데 dm이 와 있었어. ‘언니 오늘 봤었어요’라고.”      




― 잘하던 유튜브를 왜 중단한 거야?

“그때 여러모로 지쳐있었어. 영상 중 하나가 악플이 엄청 많았는데 고통스럽더라. 아쉬운 게 뭐냐면 이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줬으면 잘 됐을 것 같아. 근데 나는 삐삐라는 캐릭터에 갇혀서 진실한 나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 사회에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자기 검열하면서 언행에 극도로 조심하다 보니까 피곤함을 느꼈지.”     




― 최근에 다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잖아. 다시 해보니 어때?

“사실 포기하니까 너무 편안하고 행복했거든. 근데 나의 내면에서 관심받고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또 구글 계정에서 너 왜 안 들어오니~ 로그인 안 하니~ 노크하는 거야.”     




― 그 마음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작년에 맘먹고 용기 내서 들어갔거든.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니까 너무 눈물 나고 감동적이더라나 참 열심히 했다는 걸 느꼈지포기한 것들을 다시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또 친구의 격려와 응원도 큰 힘이 됐고. 유튜브 초창기에 괴로워했던 마음가짐도 싹 바뀌었어. 이제는 온전히 즐기면서 할 거야. 난 모든 사람한테 유튜브 하라고 권해힘들지만 젊은 날의 내 모습을 기록하는 게 의미 있잖아. 이젠 업로드 압박 없이 찍고 싶을 때 찍어.”     



큰 용기를 내서 2021년에 다시 시작한 유튜브.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채널 응원해!
로망을 선망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실현으로 옮긴 친구가 자랑스럽다. 참고로 지금은 유튜버 ‘양쮸기’로 활동 중이다.

<<양쮸기 유튜브 바로가기 클릭>>




― 너한테서 용기를 얻는다. 나도 친구들이 뭔갈 시도하는 움직임에서 에너지를 얻어. 요즘 관심 있는 분야는 뭐야?

“영상 편집 그리고 암벽 등반. 나는 또 근육에 대한 로망이 있거든. 너도 잘 알겠지만 내가 체력 방전이 빠른데 근육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난 에너자이저가 되고 싶은데 말이야. 지금 필라테스로 속근육을 채워주고 있고, 암벽 등반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싶어.”    



  

―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지욱이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

“차분하고 따뜻한 사람. 내가 못 가진 부분에 대한 로망인 것 같기도 해.”     




― 혹시 좋아하는 색이 있어?

“해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른 것 같아. 올해에는 초록색. 이유는 없지만 편안하고 평화의 느낌인 것 같아. 지금 나의 정서가 진짜 반영된 건가? (웃음)”     




― 우와. 나도 초록색 좋아하거든. 싱그러움이 좋아. 살면서 꼭 지키는 나만의 약속이 있다면?

잠 잘 오는 하루를 보내자어디서 연구 결과를 봤는데 하루를 헛되이 보낸 사람은 새벽까지 잠을 잘 못 이룬대. 나도 그걸 느꼈거든. 종일 놀고 나면 새벽 3~4시까지 안 자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의미 있는 특별한 하루를 보내자는 게 아니야. 운동, 야식 참기 등 소소하게 나만의 퀘스트를 깨면서 성취감을 느껴보자는 거지.”   


차분하고 따뜻한 너, 내가 원하던 사람
나? 새롭고 재미있는 것에 미친 사람



― 혹시 내 첫인상이 기억이 나? 

“첫인상은 아니지만 사진 속 한 장면처럼 기억나는 게 있어. 여름방학 끝나고 개강해서 강의실로 가는데 네가 문 앞에 서 있었거든? 흰 색깔 반바지를 입고 시크하게 서 있었어. 내가 친구한테 ‘야 미진이 왜 저렇게 예쁘냐’ 말했던 기억이 나네?”      




― 어머, 뭐야! 하하. 네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넌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거침없이 하는 사람인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아기 같거든. 주변 사람한테 의지하면서 물어보기도 징징대기도 하는데 넌 한참 후에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고 감정을 이렇게 정리했다고 말해. 어른스럽다고 느꼈어.”      




― 우리가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어, 네가 본 난 이런 사람인 것 같아?

“내가 원하던 사람. 차분하고 따뜻한 것 같아. 그 속에 유머도 있고 세심해. 내가 잘 못 봤나? (웃음) 부담은 갖지 말고.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사람들은 너를 어떻게 봐?”     




― 사람마다 달라. 독립적이고 강단 있다고 하는 사람, MBTI가 I 같다고 하는 사람, 나는 벼랑 끝에 서서 많이 흔들리는 사람 같은데 차분하다고 해주니 색다른 느낌이야 

“너의 연애사를 들어보면 사람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 같아. (웃음) 사실 이 인터뷰를 준비하기 전에  낄낄 프로젝트 아이디어도 좋고 취지도 맘에 들었는데 내가 과연 이 프로젝트에 답을 줄 수 있을까 긴장도 됐어.”      




― 네가 선뜻해주겠다고 해서 놀랐어.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공개한다는 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난 있잖아, 내 친구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 만약에 네가 날 인터뷰 상대로 고려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내가 졸랐을 거야. 또 정말 고마운 게 지금 휴식기지만 나한텐 아주 중요한 시간이거든. 이 인터뷰 덕분에 내 인생을 돌아봤지난 내 인생이 항상 재미없고 어떻게 보면 실패했다고 생각했거든근데 돌아보니까 내가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성취감이 들었고 이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됐어. [낄낄 프로젝트] 이름도 유쾌해서 앞으로가 더 기대돼응원해!”      




― 네 삶의 원동력은 뭐야?

“최근에 느낀 건데, 웃긴 일이 있어서 박장대소하면서 웃었거든.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웃다 보니 이 순간 덕분에 내가 사는구나힘든 일이 있어도 또 웃을 일이 있겠지이런 생각이 들더라고내 원동력은 웃음이야.”     




― 그리고 만날 때마다 조그마한 선물을 들고 오잖아. 귀찮을 수 있는데 너무 감동적이야

난 새롭고 재미있는 것에 미친 사람인 것 같아준비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너무 즐겁고 재미있거든. 오히려 상대가 원치 않을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너희들이 즐겁게 받아주니 고맙지. 하지만 아무한테나 하지 않는다.”     




― 마지막 질문!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고집부리지 않는 어른.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흡수할 수 있었으면 해. 너그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     




― 우리 그렇게 늙어가자. 고마워,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위로를 받았어

“어릴 때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어. 근데 나는 적으면서도 멋있게 보이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나만 볼 건데 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그런데 직종을 바꾸면서 좀 알겠더라고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하고 싶은 것들.. 비로소 이제 나를 알 것 같아너도 불안해하지 말고 미래를 선택했으면 좋겠어.”       



멋진 포즈를 잡은 나를 찍어주는 지욱. 뭐든 열정적으로 임한다






   

인터뷰 전 지욱이는 요약된 삶의 흐름을 보내 주었고 그걸 읽는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삶이 왜 이렇게 유쾌한지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었다. 오늘은 어떤 웃음을 안겨줄까 생각하며 인터뷰를 진행했고 웬걸,  더없이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내가 자랑스럽다는 지욱이의 응원에 스며들어 한참을 머물러 있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친구의 조언을 곱씹다가 취한 나머지 살짝 길을 잃기도 했다. 아무튼 기업 대표나 유명인들에게 듣는 조언보다 친구가 해주는 말에 더없는 위로를 받아 행복했다. 


이 인터뷰 덕분에 내 인생을 돌아봤지. 난 내 인생이 항상 재미없고 어떻게 보면 실패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돌아보니까 내가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성취감이 들었고 이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됐어. 



[낄낄 프로젝트]의 취지를 정확히 짚어낸 지욱이의 말. 오히려 프로젝트 기획이 열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다. 이렇듯 [낄낄프로젝트]는 다양한 친구를 만나면서 점차 제 모양새를 갖춰 단단해지고 있다. 내 도전에 확신을 심어준 지욱아 고마워. 


너와 나의 교집합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오직 전진, 도전하는 삶의 궤적이 멋진 손성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