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내가 운전면허를 딴 지 40년이 된다. (으악!)
필기시험을 100점을 받았다든지 단 한 번의 응시로 붙었다든지 하는 일화는 없다. 대부분 그렇듯 나도 두어 번 떨어지고 나서야 운전면허증을 손에 받아 쥐었다. 따끈따끈한 운전면허증을 들여다보며 '성인 인증 면허증'을 받은 것처럼 뿌듯하고 흡족했던 기분이 아직도 삼삼하다. 비록 운전 면허증 사진은 범죄자처럼 나왔지만.
자, 면허를 땄으니 이제 자동차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우선 돈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당시 내게 자동차가 지상 최대 과제도 아니었고 언제나 부족한 용돈에서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당장 눈앞의 욕망(카페, 술집, 영화관, LP....)을 채우기에 바빴기 때문에 자동차는 그저 치기 어린 사치품이라고 덮어버렸다.
시간은 흘러 졸업을 하고 취직도 했다. 일을 하니 월급을 받았다. 아침잠이 많아 오전 수업은 수강 신청도 안 하던 나였는데 새벽이나 다름없는 이른 아침 7시에 통근버스로 꾸벅꾸벅 출근하고 한 달의 반은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다 보니 돈을 쓸 여력이 없어졌다. 그러니 본의 아니게(?)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호라!
통장에 찍히는 잔액이 조금씩 늘어나니 잠들고 있던 소비의 신이 눈을 떴다.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돈 쓸 궁리를 하던 내게 어느 날 점심시간 같이 밥을 먹던 옆 부서의 직원이 "차를 샀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무려 스텔라(현대가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생산했던 준중형 세단으로 당시 가격이 약 5~600만 원 정도로 기억)를 뽑았다는 그 직원은 군대를 다녀와서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입사 순위로는 내 후배였다.
나는 밥을 먹자마자 은행에 가서 통장을 찍어보았다.
꽤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나 동생들에게 괜히 인심 팍팍 쓰며 용돈 주고, 친구들 만나도 대부분 주부거나 백수인 게네 지갑을 뻔히 아는 내가 호기롭게 밥값 술값 내고 하다 보니 내 통장에 있는 건 스텔라는커녕 포니(현대가 1975년부터 1900년까지 생산한 자동차. 당시 가격이 3~400만 원 정도로 기억)도 어려운 액수였다. 그렇게 자차의 욕망은 두 번째로 불이 꺼졌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 다니며 출퇴근하는 삶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입사 후배가 남자라는 이유로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이해가 안 되었으며, 입사 10년 차가 넘은 여직원은 임원 비서들뿐이었고, 그들조차 모두 미혼이지 기혼 여직원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 그 일을 계속할 어떤 의욕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는 결혼하면 되지만 남자는 가장이 될 것이니 남자 후배가 우선 진급 대상이라는 부장의 발언을 듣고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에잇, 떼잉~’ 하면서 별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오오! 아무 생각도 없던 나의 20대 여!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니 퇴직금이란 게 들어왔다. 생각도 못 한 횡재 같았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써야 하는 사람, 통장에 돈이 있으면 써야 하는 사람, 그게 그때의 나였다.
게다가 이젠 출근도 하지 않으니, 체력도 보충이 되고 시간도 넉넉했다. 그러니 다시 슬금슬금 차에 대한 욕구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내가 써야 할 금액을 제외하고 나니 생각보다 적은 액수가 남아 실망스러웠다.
나는 당시 거의 매일 붙어 다니던(이라고 쓰고 술 마시던 이라고 읽는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뭐? 차를 사고 싶다고? 근데 돈이 그거밖에 없다고?" 그 친구는 자기 일처럼 흥분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더니(어디에 알아봤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당장 만나자고 했다.
나는 돈을 찾아서 친구와 함께 어딘가(아마도 인천 어디였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자동차 중고 시장으로 향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지?
결코 부드럽고 친절한 시장이라고 할 수 없는 중고차 매매시장에 어수룩한 두 여자애가 현금을 들고 어리바리 중고차를 보러 다니는 장면은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코미디 같기도 하다. 굶주린 늑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죽 늘어선 숲에 철없는 어린양 두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들러선 모양새랄까.
하여튼 그날 나는 차를 한 대 샀다. 귀여운 중고 티코(1991년부터 2001년까지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한 경차. 당시 신차는 300만 원 정도로 기억함)였다. 딜러 아저씨는 차 가격을 내가 가진 돈에 맞춰주기까지 해서 나는 연신 굽신굽신 인사했다. 이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까지 까먹지 않고 남기며 신나게 시동을 걸었다. 기분은 신났지만, 왕초보 운전인 나는 거북이 거북이 하면서 땀 삐질 거리며 집까지 왔다.
무사히 집 앞에 주차까지 마친 친구와 나는 서로 기특해하고(뭐가 기특한 건지?) 차주가 된 것을 축하하며 기분 좋게 한잔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가 그날따라 아주 시원했다.
다음 날 아침, 거실에서 들리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여보, 어제 보니까 집 앞에 웬 차가 한 대 서 있던데 누구네 차야?" "모르겠네? 우리 골목에서 못 보던 차던데."
나는 부스럭 일어나 방문을 열며 아직 다 떠지지 않은 눈으로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내 차야."
그때 엄마 아빠가 정지 화면이 되어서 5초는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빠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아빠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와 티코를 번갈아 보다가 어쩔 수 없는 애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의 보닛을 열어 보셨다. 차 내부며 바퀴 등등을 꼼꼼하게 보시더니 "이거 어디서 샀냐? 명함 받아 왔지?" 하셨다. 아빠는 내가 건넨 명함의 번호로 전화하시고는 차를 무르러 가셨다.
귀여운 척하던 티코는 사고 차량이었고 내가 지불한 돈은 그 상태의 차에는 턱도 없이 큰 금액이었던 것이다.
내 첫차라고도 할 수 없는 첫차를 그렇게 보내버리고 차에 대한 열망도 금세 식어버렸다.
그 이후 ‘내 차’를 가진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나는 차를 몰면서 내가 혼자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달릴 때뿐 아니라 차를 세워놓고 혼자 앉아 있는 시간도 좋아한다.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언제 속력을 내야 하는지 언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배웠다.
천천히 간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속력을 낸다고 다 위험한 것도 아니며, 내 안전을 위한 운전을 하면 그게 다른 이의 안전을 위하는 운전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낯선 길을 갈 때는 이제 지도가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지만 그 또한 다 믿을 것은 못 된다는 것, 그렇지만 그 덕분에 안 가본 길로 가보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헤매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 된다는 것도.
이제는 노안으로 밤에 운전하는 것도 꺼려지고, 10년 가까이 타온 지금의 차가 내 마지막 차가 될 것인지 혹은 한 번 더 새 차를 몰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가끔 자동차 시승기를 보거나 새로 나오는 차들의 스펙과 모양새들을 들여다본다.
이러다가 또 어느 날 저 어린 시절의 나처럼 무모하게 질러버릴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