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있는 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아침에 빵을 먹었다. 일명 ‘아메리칸 스타일 브렉퍼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봤자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에 우유였다. 아침 식사에 밥과 국을 먹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는 것은 학교에 간 다음에도 한참 뒤에 알았다.
요새야 아침 식사를 제대로 차려 먹는 일이 드문 일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과 국, 반찬으로 차려진 아침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집은 그 낯선 아메리칸 스타일로 아침을 먹게 된 걸까? 가족 중 누군가 외국에서 지내다 왔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무슨 서구에 대한 허황된 동경 같은 게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혼자서 문득문득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우리 부모님은 당시로서는 드문 연애결혼에 연상 연하 커플이었는데 아버지의 적극적인 구애로 성사된 케이스였다. 이미 ‘노처녀’ 소리를 듣던 나이였지만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결혼 생각 별로 없이 모던하고 즐겁게(?) 지내던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대시가 하찮아 보였지만, 어머니의 냉담함에도 붙임성 있게 지속되는 아버지의 노력에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은 결혼에 이르렀다는 뭐 그런 이야기... 뭔가 서론이 길어졌다.
하여튼 이러한 배경으로 장남이자 장손으로 자라온 아버지는 결혼 후 요리에 서툰 어머니를 위해 아침에 빵을 먹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선언 이후에 태어난 우리 남매들은 당연히 아침 식사는 빵과 우유였던 것이다.
따끈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에 버터와 딸기잼을 집중해서 골고루 펴 바르고 반을 접어서 빵가루를 너무 많이 흘리지 않게 (전혀 안 흘릴 수는 없다) 조심하면서 베어 문다. 토스트가 씹히는 아사삭 소리가 작게 입안에서 들리고 고소하고도 짭짤한 버터와 향기롭고 달콤한 딸기잼이 느껴지면 음미하지 않아도 그것은 맛있었다. 첫맛을 보고 나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얼른 다시 입에 넣고 싶지만 토스트를 두 번째로 베어 물기 전에는 꼭 계란 노른자가 찰랑하도록 익혀진 프라이를 흰자부터 잘라먹는다. 그러면 버터와는 또 다른 식용유의 기름진 고소함과 흰자의 담백함이 입안에 남아있는 딸기잼의 뒷맛을 살짝 덮어주면서 두 번째 토스트의 맛을 더 살려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이 급해 속도가 지나치면 찰랑거리는 흰 우유로 한 모금 쉬어가면 되었다. 그렇게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를 번갈아 가며 먹다가 맨 마지막에는 노른자를 한 입에 싹 넣어주는 것이다. 물론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한 번에 먹는 기술을 익히기까지 어머니는 노른자를 터트려 익혀주셨다.
나는 이런 간편한 아침 식단을 아버지가 사랑으로 선택한 용단이자 선진적인 가풍으로 여겼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야 그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급식이 아니라 도시락 세대였기 때문에 비록 아침은 빵을 먹을지언정 우리 삼 남매의 도시락은 싸야 했으니 어머니가 가사 노동에서 다른 집보다 덜 분주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빵이든 밥이든 식지 않고 딱 먹기 좋은 온도와 수분기를 머금은 우리의 식탁의 준비 타이밍을 맞추려면 어머니는 부엌 주변에서 종종거리다 우리가 출근과 등교를 한 이후에나 겨우 아침을 드셨던 것이다. (혹은 드시지 않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을 간편한 식단‘이 되려면 각자 혹은 다 함께 구워 먹고 프라이해 먹을 일인 것이다.
입에 박힌 습관도 무서운 것이어서 내일모레 60이 되는 나는 지금도 아침은 빵과 계란이 편하다.
입가에 빵가루를 묻힌 채 “다녀오겠습니다! “ 하던 기억 속의 토스트 맛은 다신 맛볼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