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리 Sep 30. 2023

머리카락 용

#3

2023.9.30

제목: 머리카락 용

용들의 변신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모든 산과 강, 언덕과 계곡이 차례차례 모습을 바꾸며

파헤쳐지며 숨을 곳이 없어진 용은
구름을 타고 한참 동안 떠돌았다

그렇게 비가 되어 이 땅에 새의 깃털과 고양이의 수염
사람의 머리카락에 골고루 스며들었다

겨울이면 모자 속에 여름이면 양산 아래
웅크려 있다 새 머리칼이 돋아날 즈음 자유를 얻은 용은

눈치채지 못하게 옷에 붙은 머리카락이 되어 자유롭게
세상을 구경하곤 했다

커다란 몸일 적엔 알지 못했던 세계 가지 못했던
작은 벌집 같은 공간을 누비며 꽤

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었구나 지하 땅굴을
덜컹덜컹 지날 때 옷소매를 따라 순순히 흔들리며

꾸벅꾸벅 꿈을 꾸었다 우르르 타고 내리는
발걸음은 구름이 되고 쿠구궁 철의 굉음은

천둥이 되었다 구불구불 먹빛의 하늘을 날며
비늘마다 전기가 흘러 혜성처럼 긴 꼬리를 남겼다

깜빡 졸다가 번쩍 눈을 뜬 사람이
눈앞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다

아 오늘 비가 오려나 봐
머리가 뻗치는 걸 보니

매거진의 이전글 ㅅㄹ을 찾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