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9
제목: 딱 고양이만큼의 살가움
나는요 선생님
바라는 게 많지 않습니다
은도끼 금도끼 연금 복권
불로불사 천군만마 주식 떡상
다 괜찮습니다
아니요 정중히 사양합니다
나는요 이렇게 살고 싶어요
딱 고양이만큼의 살가움만
강아지만큼의 차분함만
저 저수지를 빼곡하게 뒤덮은 연잎밭에
보일락 말락 앉은 무당벌레만큼만
그 정도의 마음만 가지고
가고 싶어요
딱 그만한 미련만 가지고
가고 싶어요
마음이 우주 보따리처럼 한없이
늘어나 세상 걱정을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어린 왕자가 간 곳으로
무거워진 몸에서 그만 걷어가 주세요
어느 볕 좋은 날에 잘 말려두겠습니다
하얀 향기만을 남기고
흔적 없이 그렇게 걷어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