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보다 진심을
제주에는 경조사를 사돈에 팔촌, 지인에 지인까지 챙기는 문화가 있다.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지만 이제는 부고 알림 문자에 계좌번호가 함께 첨부된다. 코로나19로 장례식장 출입에도 인원 제한이 있어 계좌이체가 일반화되는 것 같다. 직접 가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조의금을 부탁하지 않아도 되니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지인의 부모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외에는 꼭 가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마음으로 슬퍼해주고 걱정해주는 게 우선인데 이런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형식적인 돈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기 바쁘다.
어제 남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별로 슬프지는 않다. 아프셔서 요양 중이었고 마음의 준비는 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명절 때나 제사 때 외에 뵌 적이 없기 때문 시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같은 마당에 집이 두채, 할머니와 잠도 같이 자고 밥도 먹여주고 마당에 큰 대야에서 목욕도 시켜줬다. 할머니는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임종 직전에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깨끗한 방에 할머니는 새하얀 한복을 입고 누워 계셨다. 온 가족이 미음을 한 숟가락씩 할머니 입에 넣었고 기운 없는 할머니가 우리 이름을 불러준 것 같다. 내 기억의 사실여부는 아빠에게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이 퉁퉁 부울 정도로 많이 울었다. 원래 눈물이 많은 나인데 정말 슬펐다. 이때 나의 장래희망이 선생님에서 의사로 바뀌었다. 할머니처럼 아픈 사람을 치료해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의사는 아니지만 의료업계에 일을 하고 있으니 꿈은 이룬 건가?!
우리 할머니는 매일 보고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슬픈 것이고 시할머니는 손자며느리로서의 형식적인 도리만 했기 때문 그런 것일까? 누군가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슬픈 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 부고 소식에 아이들 걱정부터 먼저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데 장례식장 데려갔다가 확진이라도 되면 어쩌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삼가 고인의 명복보다 나와 내 주변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참 못됐다!
내가 슬프지 않은 다른 이유는 감수성이 예전과 다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 마음이 좀 굳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슬프지 않지만 장례식장에 가면 눈물도 나고 슬프지 않다고 생각한 마음이 죄송하다고 느낄 것이 뻔하다.
고인을 보내고 이 세상에 남은 이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