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인천의 어느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두 명이 2살 원생들을 학대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밥을 먹는 아이를 때리는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법의 언어를 빌자면, 나의 할머니는 오랜 기간 나에게 건강, 복지, 정상적 발달을 저해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했다.
유치원 선생님은 수기로 꾹꾹 눌러써서 가정통신문을 보내곤 했다. “혜미가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할머니가 귀찮다고 하셨답니다.” 엄마가 출근 전에 동생과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고 나가면, 할머니는 그걸 상할 때까지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어 두거나, 그냥 버렸다고 한다.
다른 어른들이 있을 때는 태도가 달랐다. 직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할머니인 양 손녀를 품에 안고 자랑하던 사람이 동생과 나만 남으면 180도 안면을 바꾸었다. 동생과 나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달랐다. 같은 일이라도 동생에게는 너그러웠지만, 기분에 따라 나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손위이고 동생이 손아래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여자이고 동생은 남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늘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이가 극렬하게 굴면 얼마든지 작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동생과 나는 워낙에 조용했다. 몇 시간을 함께 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있는 줄도 몰랐다고 어른들이 놀랄 정도로 손이 가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도덕적 허가라고 번역되는 “Moral Licens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정 정도의 도덕적 행동을 한 다음에는 마치 면죄부라도 생긴 듯 스스로에게 부도덕한 행위를 허락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를 가리킨다.
다이어트를 위해 무리해서 운동을 한 뒤에 ‘열심히 운동했으니 먹을 자격 있어’ 생각하며 마음 놓고 식사를 하게 되는 보상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표를 한 이후 그럴 자격이라도 생긴 듯 보다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다거나, 18세기, 유대인 계몽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에게는 그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라 하여 가르침을 구하고 베를린에 머물 수 있는 특혜를 준 대신 다른 유대인들은 베를린에서 가차 없이 추방한 사례가 전형적인 도덕적 허가의 예시에 해당한다. 멘델스존이라, 어딘지 익숙한데? 맞다. 모제스 멘델스존은 우리가 아는 독일의 그 유명하신 분,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야코프 루드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의 할아버지 되시겠다. 아모스 엘론(Amos Elon)의 저서 <The Pity of It All>에서 조망된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모순적 태도는 17세기 이래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전까지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독일 왕가는 몇 명의 뛰어난 유대인을 포용하고 지상의 모든 영예를 안기는 대신 대다수의 유대인을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몰아내기를 반복했다.
옳은 행동을 한 뒤에 꾸준히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가해를 당한 뒤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매운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일수록 가혹한 시어머니가 될 확률이 높고, 꼰대 아래에서 꼰대 나기가 더 쉬운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냥 행복하게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늘이 짙고 상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고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을 일컬어 ‘성숙하다’고 말한다. 진짜 어른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그토록 조용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맞은 자국이 모두 옷 아래로 숨겨졌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엄마 외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심리상담, 미술치료, 최면치료를 받으러 다녔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누가 알까 조심스레 다니느라 중도에 멈추곤 했다고 들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만 유독 차갑고 정 없이 구는 내게 서운해하셨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여덟 살 때 당한 일을, 열여덟 살 때 당한 일을, 스물여덟이나 되어서야 설명할 수 있었다.
자주 책 속으로 도망쳤던 까닭은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그때만이 손찌검을 당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하게 안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그토록 자주 열이 나고 목이 붓고 병원신세를 졌던 까닭은 할머니에게 맞아서였다고. 나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발길질이 날아오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고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가끔 동생이 앞을 막아서며 누나를 왜 때리냐고 대들면 할머니가 동생의 뺨을 내리쳤는데, 두어 번은 어디를 어떻게 잘못 맞았는지 아이 머리에서 피가 났다고.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몸무게가 17kg를 넘지 못했는데. 나는 덜덜 떨면서 동생을 끌어안고 지혈을 하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 말만 속삭였다.
그러니까 아빠, 나는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라고 생각 안 해. 그냥 길에서 마주친 어르신이다. 그 정도로 생각해. 내가 보일 수 있는 존중은 딱 그 정도야. 이런 얘기하게 돼서 너무 미안해.
아빠는 미안하다고, 아빠가 미안하다고, 다 갚아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참담했다. 그 갚아주겠다는 말이 그저 슬프고 허망했다.
아동학대가 더욱 질이 나쁜 까닭은 그때 남은 상처가 그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일어났던 일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살고 싶은 딱 그만큼 죽고 싶었고, 앞으로도 결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 탓을 하며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제 몫의 상처를 알아서 갈무리하고, 무엇이 되었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스스로에게도 주위에도 폐가 된다.
아동에 대한 보편적 복지가 당위로 자리 잡은 것은 길지 않은 일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전제의 역사 역시 길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 안의 괴물을 의식해야 한다. 우리가 마냥 선한 존재가 아니며,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피해자는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했던 사람이 바로 그러한 까닭에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따위의 헛소리에 지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건 잘못됐다고. 그냥 두면 안된다고. 맞을만해서 맞은 게 아니고, 때릴만해서 때린 게 아니라, 전적으로 너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잘못된 거라고.
한 번 깨졌던 그릇을 다시 붙인다고 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듯이 당신의 삶이 균열 없이 매끈하게 굴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스스로를 해하고 싶어 졌다가, 또 어느 날은 이토록 평화로운 날들을 믿을 수 없어질 것이다. 당신의 속은 진탕인데 누구도 그걸 알아주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파봤다고 해서 누군가를 아프게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한 번 옳은 일을 했다고 후에 나쁜 일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저 누구도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저 그 같은 일은 누구도 겪을 필요 없는 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