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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Mar 06. 2019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싸울 때도 목차를 잡고 시작하는 분석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기 일수다. 말이 곁길로 새는 건 예사이고 화제는 무질서하게 전환된다. 대화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어리둥절해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라면 그 와중에도 끝내지 못한 말의 고삐를 쥐어 제자리로 돌려놓고 대화의 내용을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그라는 사람의 특징이다. 그가 나를 답답해하는가 하면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편인데 그가 생각할 때 어디서 이런 뚱딴지같은 게 튀어나왔을까 싶은 엉뚱한 발언은 내가 생각의 과정을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하고 결론만 말해서 생기는 오해일 뿐이다. 말이 생각의 속도를 다 따라잡지 못하는 탓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해본다.


당신은 어쩌면 기득권이고 세상이 바라는 모든 기준에 무리 없이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면서도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할 때 당신은 나의 생각을 무조건 수용하지는 못했다. 너를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너로 있게 해 줄게. 평생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부족하지 않게 해 줄게.라고 말했던 사람으로서는 조금 소극적인 태도였는데, 결혼이 싫고, 결혼을 하더라도 양가 어른들 모시고 소소하게 식사하는 형태로 끝냈으면 좋겠고, 굳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한 이론상의 동의와 실천적 행위는 엄밀이 구분되므로 당신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특정한 가치 판단 이전의 문제로 당신으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방식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 우리는 2~3년 후의 결혼 계획에 상호 동의했다. 이는 오로지 양가의 어른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이므로 가장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형태로 이행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인생에 아이는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대안적인 삶을 사는 방식을 다룬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눴다. 채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주로는 결혼 생활이나 인생을 대하는 태도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고기를 꽤 즐기는 당신이 채소, 과일, 곡물과 같은 식물성 재료로만 조리한 채식 요리의 풍미를 느끼며 아이처럼 놀라고 신기해할 때 엄마 미소를 짓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곧장 실천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함께할 미래에도 최대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는 방식으로 과도한 소비를 하지 않고 간소하게 살자고 다짐할 때는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동기 부여를 해줄 정도였다. 마침내,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대전제로 하되 결혼이나 제도에 묶이지 말자는 합의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김은덕 백종민 부부의 에세이, 가키야 미우의 소설, 독립서점에서 구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너무 많이 읽힌 탓은 아니었을까 자기반성도 했다. 정작 당신이라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최후의 깃털은 어느 다큐멘터리 영상에 나온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 1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받아들여라, 보살펴라’라고 굉장히 사람 좋게 웃으면서 요구를 하는 게 현재의 결혼제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라는 사람과 1대 1로 서로에게 예속되고 싶은 것이지 당신의 가족에 나를 편입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제도에 묶이지 않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보자고 했다. 정답이 없는 길이라서 앞으로도 우리는 헤매겠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해진 것 같았다. 당신은 우리가 지금까지 합의한 사항을 문서화할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너무나 당신다워서 나는 이보다 더 기껍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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