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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Nov 17. 2020

살아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아찔하다

어바웃 타임 - 성공과 실패의 기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다

  오래된 영화를 찾아보는 건 내 기억력의 하찮음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즐길 수 있게도 한다. 오랜만에 다시 본 <어바웃 타임>을 즐겁게 봤다는 얘기다...

  장면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고 치밀한 구성과 연출, 무엇보다 나무랄 것 없는 서사와 대사가 좋았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전에도 이만큼 좋았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기억력에 놀라고 이런 기억력으로 잘도 살아왔구나 싶다. 


  

  물론 영화 속 감명 깊은 대사도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역시 기록을 해야 한다. 뭐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인상 깊은 대사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우리의 여행이 정말 즐길 수 있을 만큼 멋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대사가 주는 진짜 의미는 어려운 삶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은 단지 긍정성만으로 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여행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여행의 참 즐거움은 가기 전의 설렘에 있단 말이다)


  오늘 아침에 본 기사는 그마저 남아 있던 달달한 감정을 단숨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저 일할 수 있게만 해달라는 한 가장이자 계약직 노동자의 사연이 담긴 기사였다. 이뿐 아니라 관련 기사들 역시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막막하다는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가 매일 같이 쏟아진다. 터진 수도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 


  살아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아찔하다.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은 이제 얼마나 고된 길을 가게 될 것이냐는 말이다.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라는 것은 어쩌면 도저히 그냥은 견딜 수 없기에, 그럼에도 나는 즐긴다고 스스로를 속이라는 뜻이 아닐까? 저마다의 ‘버티기 노하우’를 갖고서? 그렇게 의심한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가 요즘은 월급쟁이가 가장 부럽다고 했다. 월급쟁이도 나름 고통과 괴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월급은 나오니 감사하긴 하다. 쥐꼬리 같은 월급이지만 말이다.(표현이 식상하지만 적합하다) 사실 회사의 요즘 형편으로는 월급쟁이도 불안하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사장은 아니니까, 사장이 알아서 하겠지 라는 속 편한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런 점이 다행이긴 하다.


  

  현실과 달라서 영화고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그리고 소설을 읽는다. 현실이길 바라고 또 때론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보고 읽는다. 그 환상 속에서 늘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환상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니다. 늘 저 너머를 꿈꿔야 한다는 게 씁쓸한 일이고 더구나 우리는 그게 씁쓸한지도 모르고 산다. 


 * 다시 본 영화에서는 두 여인의 사랑보다 부자간의 애틋한 사랑이 훨씬 더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아버지가 되니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기억력이 나쁜 것도 모자라 배은망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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