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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Nov 09. 2021

생각보다 사랑은 피곤한 일이다

500일의 썸머 - 우리는 사랑과 함께 비정상의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내가 당신의 운명이 아닐 수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깨달아가며 우리는 성장한다. 당연히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당신이 나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통보'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것 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이라면 그저 서로가 착각 속에 살았다는 것뿐이다.     



  영화는 연애하며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의 설레는 만남을 시작으로 서로의 감정이 조금씩 스며드는 과정을 섬세히 표현 하지만 그것도 찰나 감독은 뜨거운 사랑의 현장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갈등과 이별의 단계를 내놓는다. 한껏 감정 이입된 관객은 매정하게 떠나가는 섬머가 서운하고, 마치 내가 이별을 경험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십 년도 더 넘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섬머와의 이별 후 '가을(Autumn)'과 새롭게 만나는 것을 보며 그래도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이 크게 인상 깊지 않았다. 오히려 가을과의 만남이 아닌, 이별 후 혼자 남겨져 일상을 살아가는 톰의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연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비로소 차분하게 된 한 인간의 모습에서 어쩌면 저 모습이, 썩 행복한 모습은 아니지만, 정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중독에서 벗어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사랑과 함께 비정상의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쁨과 행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 수 있길 바란다. 심지어 그 사랑이 비극일지라도 정작 그 소용돌이 안에서는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차분한 일상은 그저 ‘일상’이기에 늘 새로운 자극을 바라는 것이다.    

 


  가을과의 만남 후 앙상한 가지에 다시금 새싹이 돋아나는 일러스트는 행복한 사랑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작'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영화가 나이를 먹듯 나 역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 역시 다시금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될 것을 알기에 또 차분한 일상의 고마움을 깨달았기에 격정적인 사랑의 소용돌이는 영화로만 만족한다. 생각보다 사랑은, 피곤한 일이니까.     


  더구나 가을과 만났던 톰의 새로운 사랑이 행복의 시작일지 또는 비극의 시작일지는 영화 속에서 강조하듯, 그저 '운명'일뿐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왕이면 가을과의 사랑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 사랑을 감상하는 것 또한 기대하니 혹시 또 모를, ‘50번의 가을’ 역시 언젠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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