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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Dec 07. 2023

알 수 없기에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

먼 훗날 우리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이 어떨지를 안다면 세상은 심심했을 것이다. 나에게 딱 맞는 사람,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 사랑하게 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을 알 수 없기에 이별을 하고 또 후회하고 그렇게 세상의 수많은,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풋풋하고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지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쓸쓸한 이별을 알기에 다시금 영화를 찾아본다. 헤어짐이 만들어내는 그 애틋함과 아쉬움이 좋아서.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연인. 옛 연인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사랑은 ‘한때’였다. 한때 불같이 사랑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사연으로, 또 당시의 감정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 돌아보는 오래전 사랑은 후회스러우며 그립다. 누구에게나 아쉬운 사랑 하나쯤은 있기에 공감하고 동감한다. 둘은 우연한 만남으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를 회상하지만, 이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되었기에 더 애틋하다. 때로는 헤어질 수밖에 없기에 더 사랑스러운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영화에 흥미를 가진 건 여주인공이 매력적이어서였다. 그뿐인가 남자 주인공도 멋졌고 미장센 역시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 기준으로,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볼거리로 가득했다. 평범한 일상이 묻어나는 화면을 좋아하는데, 스크린은 꾸밈없는 중국 중산층의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두세 평 남짓의 작은 골방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집’과 옆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저마다의 희망과 기대 혹은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일상은 아름답고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중국 여행을 갔을 때 거대한 산처럼 늘어진 아파트 산과 그 아파트의 베란다에 걸린,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빨랫감들을 보며 또 다른 일상, 또 다른 사람들의 우주를 궁금해했다. 그때의 호기심에 대한 답변이 되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젊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은 중년 아저씨의 메마른 마음을 적시기에도 충분했다. 

  여기에 감정의 고조가 높지 않은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한데 사랑하면 사랑하는 데로 또 멀어지면 멀어지는 데로 그렇게 또 헤어지고 마는 평범한 남녀의 모습 그대로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단 한순간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뜨겁게 사랑을 불태우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사그라드는 사랑의 감정에 스스로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감정일 테고 또 그 감정에 흔들려 헤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평범한 연애다. 원초적인 사랑이 여기 까지라면 그 순간을 넘어서는 사랑들도 있다. 비록 처음처럼 뜨겁지는 않겠지만 좀처럼 식지 않을 것 같은 온기로 서로를 보듬으며 안락함을 안겨주는 사랑. 모든 연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해피엔딩’의 모습일 테지만 현실에서는 당연히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뉴스에 나올 만큼 드문 일이기도 하다. 

  영화 속 두 남녀 역시 콩깍지가 벗겨진 그 순간의 고비를 넘지 못해 헤어지고 만다. 먼 훗날 우리가 얼마나 안타깝고 그리워할지를 알았다면,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나 이토록 후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둘은 헤어졌고 그렇게 평범한 사랑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이다. 더 나아가지 않고 그쯤에서 멈췄던 것이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막연한 미래의 희망을 위해 식어버린 사랑을 쥐어짜며 버틴다고 다시금 아름다운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서로의 밑바닥을 경험하며 인생 최악의 인연으로 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틋하게 헤어지는 바람에, 앞으로 다가올 씁쓸한 현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다. 삭막한 세상에서 좀처럼 갖기 힘든 이름다운 추억, 아련한 사랑 한 조각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냔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난 사랑을 후회하지 말라는 거다. 헤어진 덕분에 환상으로 남게 된 연인은 그래서 더 아름다우니까. 상대에게 있어 당신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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