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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Nov 04. 2024

떨쳐낼 수 없다면 그냥 달리는 수밖에

드라이브 마이 카

  말이 통하지 않는 배우들은 각자의 언어로 대사를 하고 그대로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한 여자는 중국어로 말을 하고 상대 배우는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식이다. 심지어 말을 하지 못하는 배우와도 ‘대화’를 나눈다. 다시 말해 배우들은 상대방의 낯선 말과 의미를 모두 외우고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소통, 그 어려움과 낯섦을 이야기한다.  

  사연이 가득할 것 같은 표정의 한 남자는 무겁게 다문 입으로 운전을 한다. 그의 운전을 쫓는 카메라의 앵글 역시 더없이 고요하다. 자극이 난무하는 요즘에 이건 무슨 배짱이지 싶지만 실제 우리 삶이 그렇다. 이처럼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호흡과 감정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과는 다른 호흡과 긴장을 원하지만 영화는 관객의 기대 따위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차분함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긴장이 몰입감을 높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실제 영화는 뿜어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제법 묵직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남자의 아내는 불륜을 한다. 불륜 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내는 글을 쓰기 위해 아니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낯선 남자와 섹스를 했고 그 섹스는 딸의 죽음을 잊기 위한 그녀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온전히 공유하고 있던 남편은 아내의 '비밀'을 가만히 덮어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부의 모습은,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배우들의 대화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여전히 풀지 못한 상처들을 남겨둔 채. 

  불륜남은 어떤가. 놀랍게도 남편은 내연남의 ‘생각’에 관심을 가진다.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숨긴 채 내연남의 이야기 속에서 아내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반전은 내연남 역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깊은 슬픔 속에서. 영화는 시종일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좋은 영화가, 좋은 소설이 늘 그렇듯.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오래전 단편집이 나왔을 때 소설을 읽었었는데 놀랍게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 나서야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렇게 까맣게 잃어버릴 거였다면 책은 대체 왜 읽는 걸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과 회의감이 들지만 뭐 즐기려고 책을 읽지 뭔가를 배우려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니까. 그때 잠깐 즐거웠으면 됐다고 변명한다. 

  어쨌든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 소설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가 영화에서도 느껴졌던 것 같다. 어쩌면 하루키라는 이름의 무게에 억지로 그렇게 느끼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가 하루키의 소설의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는 거다. 



  영화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자주 보여준다. 멋진 풍경 속에서 매끄럽게 달리는 차의 모습은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 영화 속에서 ‘드라이브’는 혼란과 갈등을 정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우연히 만나게 된 기사는 훌륭한 운전실력으로 남자의 상념을 돕고, 덕분에 남자는 온갖 감정과 상처를 조용히 달리는 차 안에서 정리한다. 결국 남자는 자신조차 몰랐던  외로움을 토해내고, 남자를 다독이던 운전사 역시 자신의 감정을 치유한다.  


  아까운 휘발유를 버려가며, 단지 기분전환을 위해 드라이브를 한다는 사람들을 곱게 바라보지 않었던 나지만 정작 나 역시도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도로 위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열린 창문으로 부는 바람을 맞으며 텅 빈 도로를 시원히 달릴 때는 정말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값비싼 드라이브를 하며, 삶의 무게를 떨쳐낼 수 없으니 그저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달리다 풍경 좋은 곳에 멈춰 슬며시 삶이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그런 꼼수가 먹히는 삶이길 바란다. 

  꽃길만 달리자,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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