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임
내가 이곳에서 모시는 지휘관은 크게 세 분이 계신다. 우선 내가 속해 있는 포대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시는 포대장님, 나에게 주요 임무들을 직접적으로 부여하시는 정보과장님, 그리고 세 개의 포대를 포괄하는 대대를 대표하시는 대대장님. 군 특성상 나는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이분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분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던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던. 이곳에서의 내 바람직한 행동은 이분들의 명령 앞에서 임의 판단하지 않고 복종하는 것이다.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세부 요소들을 이분들은 염두에 두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이분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분들이 책임을 지셔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남들보다 더 꼼꼼히, 더 멀리 상황을 읽고 적합한 판단을 내릴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군대에서는 긴급상황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신속한 판단력이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지휘관 자리까지 올라가신 분들은 존경할 만하다. 특히 대대를 대표하시는 대대장님이라면 더욱.
지금까지 이곳 부대에서 지내며 느낀 결과, 리더십이란 건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 것 같다. 리더가 조직의 목적 달성에 중점을 두는지와, 아니면 구성원들의 여건 보장에 중점을 두는지로. 조직의 목적 달성에 중점을 두는 리더라면 성과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부하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가능성이 있으며, 구성원들의 여건 보장에 중점을 두는 리더라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내가 모시는 대대장님은 철저히 전자에 해당하신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리더. 성과 달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으시는 리더.
대대장님은 우리 대대가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수준이 아니라, 1등을 쟁취하도록 하기 위해 전 부대원들을 새벽 4시에 출근시키는 등 다른 대대보다 더욱 혹독하게 훈련계획을 수립하셨다. 그분께선 날씨가 좋을 때마다 부대원들의 컨디션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관측반 거점 고지를 점령하라는 지시를 내리셨고, 경연대회 참가자들의 훈련 여건 보장을 위해 부대 운영의 대부분을 대회 미참가 간부들에게 전가하셨다. 그렇게 대회 미참가 간부들은 몸이 두 개가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업무들을 마주하였다. 무엇보다도 부대원들이 불만을 가졌던 부분은, 이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력해 봤자 오직 대대장님 경력에 한 줄 더 적히기만 할 뿐 아니냐며, 계획을 소화시키기 힘들 때면 우리끼리 이런 푸념을 늘어놓고는 했다.
우리 대대는 경연대회 준비를 위해 타 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연습했고, 그 결과 군단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이렇게 연습하고 1등을 못하는 게 더 이상했을 정도로 우리는 많이 연습했으니까. 우리 관측반은 나침반 없이도 전방 방위각이 몇 밀(mil)인지 파악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전방이 도식되어 있는 지도의 세부사항들을 거의 외웠을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더위를 피해 아침 꼭두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산 정상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몇몇 인원들이 편도염에 걸리거나 이른 아침부터 구토를 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리한 훈련 일정을 강행하시는 대대장님을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전사관(전포사격통제관)님과 함께 부대 밖 민간 운동장에서 운동한 적이 있었다. 한창 운동에 집중하던 중, 전사관님께서 비시시 웃으며 말씀하셨다. 대대장님 오셨다고. 근데 못 본 척했다고. 재밌는 건, 대대장님도 전사관을 못 본 척했다고. 마치 사이 어색한 친척들이 밖에서 만나면 서로 모른 척하는 것처럼. 이쯤에서 대대장님 카톡 상태 메시지를 한 번 상기해본다.
좋은 곳. 좋은 사람들과 차분하고 보람되게.
그리고 생각해본다. 대대장님이 전사관을 못 본 척하신 이유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이셨을까, 미안함이셨을까. 대대장님께서 무리한 훈련 일정을 강행하신 것은 순전히 당신의 욕심이셨을까,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였을까. 좋든 싫든 우리는 군단에서 1등을 한 대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대대장님은 우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경연대회 준비 당시 대대장님께 가졌던 불만은 필요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다. 단지 그 ‘열심’이 너무 과한 것 같아서 힘들었을 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었기에, 이보다 좀 덜 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대장님의 의도를 생각해보게 되면서, 어쩌면 이런 가혹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1등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노력을 덜 하는 사람들도 1등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한 노력을 할 때 우리는 1등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점점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아셨던 대대장님께선 우리가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힘든 과정이기에 부하들에게 미움받을 각오를 해서라도. 그게 대대장님께서 주말에 우릴 못 본 척하신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선택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모두의 의도와 목적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큰 규모의 조직을 거느린 리더일수록 미움받을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마치 자신의 등을 칼로 찌르려 하는 누군가를 토닥토닥 포옹해 주는 느낌이다. 대대장님께선 우릴 볼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끼시지 않으셨을까. 조직은 구성원이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기에. 그래서 리더는 구성원 모두를 포용할 의무가 있기에. 마치 치기 어린 아들의 투정을 묵묵히 감내하는 아버지처럼.
순전히 자기 욕심이든 모두를 위한 판단이든, 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들로부터 손가락질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그리고 대답해본다. 아직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아직은 내 행동에 대해 가지는 확신이 남들에게 줄 수 있는 피해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내 자유권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자유가 아닌 방종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대대장님과 다른 길을 걷고 싶다. 만일 내가 그런 자리에 올라간다면. 가령 부모님과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자리 역시 한 가정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지휘관’의 자리이기도 하기에.
만일 미래에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면, 잡히지 않는 별만 쫓다가 더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의해 존재가 자각되기에, 타인을 가벼이 여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소멸되고 싶진 않다. 목표만 바라보다가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차라리 목표를 버리고 그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지휘관이 되고 싶다.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마치 대대장님의 카톡 상태 메시지처럼 ‘좋은 곳, 좋은 사람들과 차분하고 보람되게’ 지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