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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Aug 06. 2021

내 머릿속의 지우개

지우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 것들

난 살면서 지나치게 자주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곤 했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내가 선택하지 못한 나머지 선택지들에 미련을 가졌다. 내가 걷기로 결심한 길이나 내가 먹기로 선택한 메뉴, 또는 내가 손 잡기로 결심한 친구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면 난 타협하기보다 주로 후회하기를 택했다. 지금의 ‘나’가 내 모든 선택의 결과, 내 모든 행동의 결과라면 종종 선택을 후회하는 나는 결코 스스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듬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후회의 감정을 내면에 지니고 살아가던 나는 결코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나는 스스로를 바꾸기보단 세상이 바뀌기를 바랐다. 때로는 세상을 지우개로 지우고 흰 백지로 만들고 싶었다. 포기하려던 건 아니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좀 더 나은 필드에서 뛰고 싶어서. 그땐 몰랐다.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은,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달려도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세상을 향한 비관적인 시선은 글쓰기에서 여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블로그나 몇 안 되는 일기장에 나름 자랑스럽게 적어 내려갔던 글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겨움보단 수치심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글들 속의 나는 어두운 그늘 속에 있는 걸 즐기고 있었다. 고통이란 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힘든 척, 염세적인 척 핑계만 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만적이라 느껴져 나는 나의 기록들을 전부 지워나갔다. 힘든 척하지 마. 아픈 척하지 마. 그렇게 난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부정하며 스스로를 바꿔나갔다. 변태 과정을 거치는 애벌레처럼.


적은 글들을 족족 지워나가는 습관은 삶 속에서도 드문드문 드러났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절교라는 것을 해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무리가 있었는데, 서로가 서로의 총알받이가 되자는 의미에서 우리는 무리 이름을 불렛 팬츠라고 불렀다(으악!). 고등학교 입학 후, 무리 중 한 명이 지나치게 나머지를 통제하고 싶어 했다.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동들 앞에는 ‘무조건’이나 ‘우리끼리’라는 단어들이 붙었다. 이건 더 이상 우정이 아니야. 사소한 다툼을 기점으로 난 그와 인연을 끊었고 자연스레 무리의 다른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사실 그들과 멀어진 후 내가 느꼈던 건 외로움이 아닌 자유로움, 해방감이었다. 그렇게 난 누군가와의 관계에 미련을 갖지 않는 데 익숙해졌다. 그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중독되었다. 이후에 사귀게 된 친구들이 날더러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사람’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때때로 일부러 거리를 두곤 했다. 관계의 화학반응을 위한, 마음속 비커를 채우는 화학물질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커가 텅 비게 되면 사람들이 내게 질릴 거라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은 분명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안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두와 거리를 둔 건 모두와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지나치게 사이가 가까워서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봐 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무례함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타인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난 사람과 관계맺고 싶어 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마치 글을 쓰고 싶은 욕구와 지우고 싶은 욕구가 공존했던 것처럼. 난 언제나 소속되길 원했고, 동시에 자유롭길 원했다. 어쩌면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지라 모두와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내 부족한 모습에도 웃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요즘 생각한다. 관계는 한정된 화학물질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내 안의 비커가 텅 비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정한 관계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엮어가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런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선택으로 엮어나가는 관계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 속에 남는다는 것을, 요즘 생각한다. 그 ‘무언가’ 만큼은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난 오늘도, 앞으로도 사람에 의해 희망을 잃을 것이고, 사람에 의해 희망을 얻을 것이다. 난 언제나 기록해나갈 것이고, 언제나 그 기록을 지워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 의지가 깃든 선택이다. 다른 모든 기록을 지우더라도 브런치에 올린 글들만큼은 지워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저 사람이라면, 어떤 추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손 잡을 것이라 다짐해본다. 이런 어리석은 나 일지라도 포용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건 곧 뜻하지 않은 운명을 마주할 문을 연 것과도 같은 거라 믿기로 한다. 때로는 실수가 기적의 기반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의 ‘나’는 내 모든 선택의 결과. 내 모든 행동의 결과. 나는 내가 지우지 않을 것들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 앞에서 나는 결코 후회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그 선택들로 삶을 엮어나간다. 그렇게 나는 나를 긍정해본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 어디에서 달려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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