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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l 13. 2021

관심병사

가끔 머릿속이 너무 아프면, 문지방에 머리를 쿵쿵 찝니다. 그러면 이 머릿속 고통이 이마 쪽으로 가서, 그나마 좀 살만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걸 자해라고 부르는 건데...


소문이 돌았다. 부대에 엄청난 사람이 왔다고. 새로 신병이 들어왔는데 전과 경력에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군대에 오지?”

“그니깐, 듣기로는 강도였다는데 확실한 건 아니고, 어디서 들은 거야.”

용사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조금은 거멓고 퀴퀴한 이야기꽃을.


그날은 내가 당직(철야)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내 전번 근무자가 말한다.

이 친구 많이 심각해. 새벽 2시에 가보니까 잠을 못 자고 침대에 앉아 있는 거야. 놀래서 들어가 봤더니, 잠이 안 와서 죽겠대. 1시간 동안 산책하다 왔잖아. 애는 괜찮은데, 빚이 1억이 넘어. 많이 힘들겠더라. 밤에 잘 봐라.

그는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얘 운동화끈 찾던 친구라고. 그러니까, 한 번 죽음을 시도했던 친구라고.


근무 투입을 하고 소문의 주인공을 만난다. 잔뜩 겁먹은 눈빛이다. 동공에 초점이 없다. 하지만 한때 꽤 강렬한 눈빛을 가졌을 것 같다. 그의 자세는 굽어 있었고, 움직임은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얇은 밧줄에 발목을 묶인 코끼리처럼. 무엇이 너의 잠을 방해하는지, 내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사뭇 무섭다. 침대에 누우면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단다. 무슨 나쁜 생각?

이게, 제가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신교대(신병교육대) 있을 때, 수료 3일 전에 제 차렷 자세가 불량하다고 교관이 한 200명 되는 애들 보는 앞에서 절 엎드려뻗쳐 시켰습니다. 근데 제가 또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맞고 다녔거든요. 그때의 트라우마랑 엎드려뻗쳐 했을 때의 공포감이 겹치면서, 지금은 이제 침대에 누우려고만 하면 심장이 콩닥거리고 무섭고 그렇습니다. 이게, 진짜 힘들어요. 엄마 얼굴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 근데 진짜 심할 때는 엄마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 친구는 ‘요’ 자를 섞어가며 (군대에는 다나까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울먹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난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귀를 연 채 그저 가만히 옆에 앉아 있었더니 그는 말을 계속한다. 자기가 한 때 사업을 했고, 잘 나갔다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다고. 지금 자신이 28살인데,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는 군대에 올 생각이 없었단다. 자기는 대한민국의 아들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신의 아들은 현재 사업을 말아먹고 어마어마한 빚이 생겨 카드, 통장 등을 전부 압류당한 상태이고, 휴대폰만 켜면 독촉 문자와 전화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새벽의 암흑 속이라 가까이에서도 그를 잘 볼 수 없었지만, 느껴졌다. 생각의 방향이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안돼, 순간 섬뜩한 생각이 스친다. 난 그를 조금이라도 더 밝은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취미가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어머니를 사랑하는지. 나 뭐하냐, 이런 거 질문하는 게 지금 맞는 건가. 질문해놓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와중에 그는 친절하게도 내 모든 질문에 성심껏 답변해준다. 낚시를 좋아하고, 술과 회를 좋아하고, 여자친구가 있지만 지금 이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 연락도 안 하는 상태이고, 어머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의 불안 증세는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전번 근무자의 조치를 떠올리고 그에게 제안한다. 산책 갈래? 그는 흔쾌히 승낙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막사 입구 문을 열어놓은 채 빗소리와 바람으로 정신을 환기한다. 그는 아까보다는 조금 더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자신의 불안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사실 지금 빚이 많아서 밖에 나가도 답이 없고, 기왕 군대에 온 거 열심히 하고 싶은데, 여기서 성장하고 나가고 싶은데, 불안이 도통 사라지지 않는단다. 지금 같이 생활관 쓰는 전우들이 다 동생들인데 이런 모습 보여주는 게 형으로써 부끄럽단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났을 때, 그럴 때 내가 변해 있더라. 사실 난 너보다 짧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아니 그냥 형이라 부를게. 형보다 짧은 인생을 살고 경험도 적은 사람으로서 내가 형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어. 왜냐하면 난 형이 경험했던 고통의 깊이를 경험해보지 못했거든. 아직 그 정도로 그릇이 넓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런데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지금 형이 가지고 있는 그 고통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걸 기억해서 더 강한 사람이 될 기회로 삼아줬으면 좋겠어. 적어도 나한테 고통의 시기는 그런 의미였어.

물리칠 수 없는 감정이라면 받아들일 방법이라도 찾아보자는 뜻이었지만, 결국 난 말해놓고 또 자책한다. 뭘 안다고 이런 조언을 하고 있는 걸까. 그가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도 없으면서. 가늠할 수도 없으면서.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내 조언이 섣부른 동정 같아서, 그게 어쩌면 그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참 조언에 자질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빗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만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말한다. 산책 나오길 잘했다고. 그냥, 이렇게 흔들리는 나무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잠이 잘 올 것 같다고. 다행이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막사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분주하게 인원 건강 체크를 하고 근무 마무리를 하던 중, 그가 지내는 생활관에 다시 들어가 본다. 같이 지내는 용사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둘러싸고 있다. 용사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찾아와 말한다. 얘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약을 먹고 싶어 한다고. 알프람, 렉사프로. 마약류이기 때문에 가급적 먹지 않는 게 좋지만 지나치게 상태가 심각할 때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섭취가 가능하다는 진료기록이 있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약에 의존할 것 같아서 주지 않으려 하지만, 그는 약을 갈구한다. 지금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면서.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빗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메트로놈을 자장가 삼던 그였는데, 감정은 왜 이리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 보이지 않는 얇은 밧줄들에 종속당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코끼리는 언제쯤 그 밧줄들을 끊어내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한없이 역량이 부족한 나는 힘없이 약봉투를 그에게 내민다. 그는 다급하게 약봉투를 집어 들고 입 안에 탈탈 털어낸다. 진정해, 물 좀 마시면서. 내 입이 중얼거린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문화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시스템이라는 얇은 밧줄에 묶여 고통받는다. 그 고통은 1억 상당의 빚이고, 타인의 시선이고, 우울증이고, 살기 어린 비난이고, 비웃음이고, 와전된 소문이다. 코끼리는 자신의 발목을 묶은 얇은 밧줄을 충분히 끊어내고 걸을 수 있는데, 실패의 경험과 좌절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잠재되어 있는 힘을 과소평가한 채, 난 안 될 거라는 믿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믿음은 결국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무한하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믿음을 가져볼 수도 있는 것이다. 코끼리에겐 생각보다 쉽게 그 밧줄을 끊어낼 힘이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몇 밤 자고 나면 어느새 상처가 아물어 있을 것임을.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고통을 겪고 나면 새로운 관점이 생겨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부수다 보면, 혹시 알겠는가. 우리가 애초에 꽤 많은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지. 그 밧줄을 끊어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지. 우리가 대한민국의 자식이기 전에, 신의 자식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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