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
이게 어머니의 대지라니, 참혹해서 못 보겠군.
하지만 이런 참상을 바란 자들도 있지. 인간조차 발 디딜 수 없는, 원죄의 더러움이 없는 정화된 세계니까.
나는 죄로 더럽혀지더라도, 혼돈으로 가득하더라도 인간이 살아있는 세계를 원해.
혼돈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야. 세상은 모두 조화와 질서로 이루어져 있어.
결국 인간의 마음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건가.
-만화 ‘에반게리온’ 中
마음에는 형태가 없다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이 결국 우리 마음의 모양이 아닐까.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는 항상 감정이 담겨 있으니. 후회의 씨앗을 심고 자는 날에는 태양에게 속삭일 것이다. 내일을 데리고 오지 말아 달라고. 지금의 긴 밤 속에 머무를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하지만 태양은 여지없이 내일의 세상을 비출 것이다. 나약한 나를 벌하기 위해. 태양은 뜨겁고 화창한 하루를 내 앞에 내밀며 말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라고. 그러면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 나갈 것이다. 숨 막히는 아지랑이 속으로.
기대의 씨앗을 심고 자는 날에는 태양에게 속삭일 것이다. 얼른 내일을 데리고 오라고. 안 온다 싶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라고. 태양은 내가 뭐라던 무심하게 내일의 세상을 비출 것이다. 어젯밤 심은 기대의 씨앗이 아름답게 피었다면, 하루 종일 폭우가 내린다 해도 나는 웃을 것이다. 태양은 분명 내가 즐거워하는 꼴을 못 보니까 먹구름 뒤에 숨어 있겠지.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 기대가 충족될 수 있다면, 온몸이 흠뻑 젖는 것쯤이야 대가로 지불할 수 있으니.
화창한 날씨를 보며 누구는 ‘오늘 날씨가 참 맑다’ 할 것이고, 누구는 그 뜨거움에 현기증을 느끼며 혀를 내두를 것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며 누구는 인상을 찌푸린 채 우산을 펼 것이고, 누구는 웃으며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갈 것이다. 적을 마주했을 때 누구는 긴장해서 몸이 굳어버릴 것이고, 누구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릴 것이다. 약자를 마주했을 때 누구는 비웃으며 지나갈 것이고, 누구는 주머니 속 자그마한 사랑을 꺼내 전해줄 것이다. 약자는 자신을 비웃는 누군가를 보며 강해질 거라 다짐할 것이고, 사랑을 주는 누군가를 보며 강해질 거라 다짐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 마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우리 앞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흔히 우주를 질서와 혼돈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질서가 규칙적이고 조화롭다면, 혼돈은 불규칙적이고 파괴적이라고 한다. 행성의 궤도와 은하수의 형태가 질서라면, 질서가 무너진 블랙홀과 초신성은 혼돈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혼돈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흔히 혼돈을 카오스라 부르는데, 본래 카오스(Chaos)의 어원은 ‘입을 벌리다’(Chainein), 즉 ‘공허’라고 한다. 카오스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심연.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죽음을 앞둔 별의 구성 입자들은 무질서화되고, 거기에서 비롯된 강력한 힘은 주변의 질서를 파괴한다. 그 힘은 숨 막히는 어둠으로 모든 걸 빨아들이고, 눈부신 빛으로 우주에 충격파를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하고, 규칙을 만든다. 우리가 정의 내리지 못한 이 질서들은 ‘혼돈’이란 이름으로 주변을 파괴할 테니.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아마 악의 색깔을 지닌 채. 어쩌면 우리가 그 색을 입힌 채.
우리가 정의 내릴 수 없는 이 혼돈은 우리의 감정과 마음. 우연인 것 같기도, 운명인 것 같기도 한 우리의 선택. 그리고 타인과 자신의 관계. 우리는 타인에게 쉽게 물들 수 있는 존재니까. 니체의 말처럼, 심연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므로. 때로는 타인의 존재가 괴물일 수 있고,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괴물이 될 수 있기에.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혼돈에 잠식되면 괴물이 되는 줄 알았다. 규정되지 않은 세계에 방치되면 괴물이 되기에, 규범과 교육은 그걸 막기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진짜 괴물은 질서를 지닌 채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짜 괴물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었고, 뒤틀린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볼 줄 모르고 세상을 탓하는 사람들, 거짓말로 자신을 변호하는 사람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우리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괴물이었고,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괴물이었다.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살아가기 편하다는 착각은, 혼돈을 가장한 잘못된 질서였다. 그렇다면 혼돈은 무엇일까.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하여 혼돈은 흔히 ‘악’의 색을 띠고 있는데, 생각보다 혼돈은 그리 악하지 않다. 사랑과 우연 역시 무질서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돈이지만, 우리 삶을 무엇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니까.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화도 낼 줄 알아야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과 우연, 분노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질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질서와 이성만이 옳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마음속엔 혼돈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삶은 걸어가는 것만이 아닌,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기에. 내 발걸음이 선택하는 방향만이 아닌, 날 이끄는 세계의 외력도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 그 외력에 익숙해지기 위해 혼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성에 함몰되지 않고, 때로는 감정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로 한다. 타인과 상황 때문에 내 감정을 숨기기보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하기로 한다. 이러한 감정은 신이 내린 본능적 감각이므로. 혹은 논리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상이므로.
혼돈에 입혀진 악의 색깔을 지울 것이다. 눈을 뜰 것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모든 감정들을 긍정할 것이다. 그 감정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내 인내심을 키워줄 것이고, 증오는 감춰진 내면의 힘을 끌어내 줄 테니. 혼돈을 품에 안기로 한다. 파도의 흐름에 겁먹지 않기로 한다. 내일을 데려오는 태양을 담대하게 반기기로 한다. 고슴도치 같은 타인의 가시에 겁먹지 않기로 한다. 그 돋친 가시를 잠잠케 하려면 타인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가시에 찔려 아프지 않겠냐고? 물론 아프겠지. 하지만 아프지 않을 방법을 안다. 마법을 사용하면 되니까. 뒤틀린 세상과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마법. 모두가 사용할 줄 아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마법.
‘악수’가 뭐야?
친해지기 위한 주문이야.
‘좋은 아침’이 뭐야?
그건, 오늘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주문.
‘잘 자’가 뭐야?
안심하고 자길 빌어주는 주문.
‘안녕’이 뭐야?
다시 만나기 위한 주문이야.
만화 ‘에반게리온’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