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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Nov 14. 2021

경청의 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가끔 소설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간과하기에는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와 지혜가 무척이나 응용 가능하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는 벅찬 현실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마음속 깊숙한 무언가를 상실한 젊은 세대들이 이 막막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사랑의 힘은 절망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작가 김영하는 꽤나 명확하게 청사진을 그려주었다. 아무리 허풍이라 해도 좋은 소설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세계를 창조해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소설을 좋아한다.


최근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작품을 접했다. 바로 일본의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흥행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일본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이 책은 마음 따뜻하고 희망찬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절망의 세상에서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김영하의 ‘퀴즈쇼’가 보여주었다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경청’의 힘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진솔하게 경청하는 청자의 행동이 화자의 내면에 어떤 걸 일깨워줄 수 있는지.


나미야 잡화점에 어느 날 상담 창구가 생긴다. 첫 반응은 미적지근했지만,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의 진중하고 정성 어린 답장에 감명받은 사람들은 암암리에 나미야 잡화점 상담창구를 애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잡화점 할아버지의 소망으로 시작된 이 상담 창구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모를 이야기들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곳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비밀스러웠다. 어쩌면 나미야 잡화점 상담 창구의 인기는 사람들이 각자의 고민을 진솔하게 털어낼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전무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나미야 잡화점 상담 창구의 인기는,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과 잡화점 주인장 할아버지 사이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때로 익명의 존재에게 더욱 솔직해진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보다 더욱. 이해관계나 감정이 얽힌 사이라면 분명 내면의 고민을 드러내기 꺼려할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골치 아픈 상황에 타인을 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니까. 스스로의 응달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니까.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익명의 존재라면 고민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것들을 내재화시킬 여지가 있으므로.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전부 길이 막힌 사람들이다. 지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가다가 길이 끊겨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꿈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봐, 자신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자신의 증오가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을 불러올까 봐 그들은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나미야 잡화점으로 간다.


소설에서 다뤄지는 상담 내용도 우리가 한 번쯤은 각자 고민해봤던 이야기들이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을 경우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을 경우가 있을 뿐이다. 소설에는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부모님의 생선가게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음악가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렇다. 그의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세상이 알아주기엔 그의 스타성이 부족했다.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봤던 다른 이야기. 가족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 하는가, 아니면 가족이기에 용서하고 포용해야 하는가. 원인 모를 ‘장사’를 하던 고스케의 부모님은 어느 날 야반도주를 계획한다. 고스케는 부모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직감하고, 도망가지 말자고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시킬 생각도 없이 그저 따라오라 하신다. 어머니 역시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따라오라고. 우리들은 널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자기들을 믿어달라고. 하지만 고스케는 야반도주 중 기회를 틈타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친다.


이들의 고민에 잡화점 할아버지는 어떤 얘기를 해주었을까. 잡화점 할아버지가 항상 옳은 얘기를 해준 건 아니었다. 사실 잡화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상담에 답장을 해준 건 환광원 출신의 고아들이었다. 우연히 상담 창구의 존재를 알게 된 아이들은 사람들의 깊은 고민에 비웃으며, 분노하며, 때로는 걱정하며 답장을 해줬다. 아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답변을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스스로 고민을 해결할 힘을 얻게 되었다. 경청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일깨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은 결국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모든 의문을 풀 힘은 결국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자기 힘으로 삶의 고민을 해소해나간다. 생선가게 아들은 마음 가는 대로 음악가의 길을 계속 걷게 된다. 그는 대중적인 스타가 되길 포기했고, 그저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았다. 그는 보육시설을 돌며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생선가게 가업을 물려받는 것에 비하면 초라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행복해하기로 했다.


야반도주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친 고스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 비틀즈에게서 가족의 모습을 본다. 시대의 성공 신화였던 비틀즈는 당연히 서로 돈독한 관계로 여겨졌겠지만, 1970년 갑작스러운 해체를 발표한다. 비틀즈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Let It Be’를 보며 고스케는 충격에 휩싸인다. 연주를 하는 멤버들의 경직된 얼굴을 보고. 너무도 공연을 하기 싫어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비틀즈 멤버들의 태도는 마치 야반도주하는 부모님을 경멸하는 고스케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들려오는 말로는 이 영화를 보면 비틀즈가 해체한 이유를 알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실질적으로 이미 끝나버린 비틀즈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고스케는 그걸 알고 싶었다.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별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즈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고스케는 침몰하는 가족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고스케는 깨달았다. 다큐멘터리 속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 때 멤버들의 경직된 표정과 열정적이지 않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전히 음악은 아름다웠고 고스케는 언제나 비틀즈를 좋아할 수 있었다. 연주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멤버들의 마음속 미열 덕분이었다.


하지만 고스케가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고스케가 침몰하는 가족을 외면했을지라도, 고스케의 부모님은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스케의 부모님은 고스케의 삶에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즉, 떠나버린 고스케가 자신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다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죄로부터 고스케를 그렇게 해방시켜주었다.


상담 창구의 편지들은 전부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모두 하나로 묶여있다. 고스케는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친 뒤 성인이 될 때까지 환광원에서 살았고, 생선가게 집 음악가도 같은 환광원에서 노래했다. 음악가는 환광원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다 한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웃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음악가는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마치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듯했던 그녀에게는 한 번 들은 음악을 완벽히 기억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단박에 음악가의 노래를 묘사할 수 있었다. 음악가는 자신의 자작곡 ‘재생’을 소녀에게 들려준다.


한편 음악가의 아버지는 종종 그를 책망하곤 했다.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꿈을 좇으면서도 음악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음악가는 자괴감을 느끼며 결국 생선가게 가업을 물려받고자 하지만, 아버지는 거절한다. 원하는 꿈조차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열정이라면, 생선가게 가업 역시 제대로 이어받지 못할 거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투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내라고.


가까운 미래. 세계적인 한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그녀의 음악을 좋아한다. 공연 자리는 항상 매진이다. 그녀가 공연 말미에 부르는 노래는 항상 동일했고, 사람들은 그 노래에 가장 열광했다. 그녀의 음악 ‘재생’은 그렇게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 노래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데는 하나의 일화가 숨어 있었는데, 그녀가 어릴 적 살았던 환광원에 화재가 났고 당시 이 곡을 선물로 준 작곡가는 자신의 동생을 구해주고 목숨을 잃었다. 그는 그녀의 동생을 구하려는 투지로 삶의 마지막을 살아냈다. 그의 기적은 음악이 되어 사후에도 재생되었다.


그래서 경청이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반대로 경청하지 않는 태도는 날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스케가 들으려 하지 않았다면 그는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소녀가 음악가의 음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재생’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녀가 귀 기울인 덕분에 음악가의 투지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고스케가 귀 기울인 덕분에 그는 부모님을 용서하고 가족의 울타리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귀 기울인 덕분에 상담자들은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경청을 통해 지도의 막힌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소설의 말미, 잡화점 상담 창구 앞으로 하나의 편지가 날아온다. 편지는 백지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당연히 무시했을 편지지만 잡화점 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백지의 편지에도 최대한의 고민을 담아 정성스레 답장을 적어주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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