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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십없는 리더는 절대 세우면 안된다

오너십이 없으면 어느 순간 자기의 세력을 키우는 리더들로 변질되더라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 초창기에는 조직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운영해보며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예를 들면 내가 L사 전략기획실에 다닐 당시에는 한대협 회장을 겸임하며 다이렉트로 대학생들과 함께 일했다. 그 때는 진짜 회사처럼 마케팅 부서, 인사 부서, 기획 부서 등으로 조직을 구성해 야근 도중 저녁 먹는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방배역 맥도날드에서 부서별로 미팅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회사 업무 중간에도 아이들과 통화하기도 하고, 밤 11시, 12시 퇴근하는 길에 탄 택시 안에서 아이들 기획서나 자소서 피드백 해주고..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때 훈련시켰던 친구들은 거의 다 이탈했다. 상사로부터 이탈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매서운 비판이 그치지 않았고 그 당시 임신 15주차에 유산까지 되면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겹쳐 몸과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그 당시 26살이었던 미숙한 내가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했던 것은, 내가 그들을 업무나 역량적으로는 성장시켜줬지만 '업무 외적인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회사에 묶여 있다 보니 주말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그들의 관계 속에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회사처럼 운영하다보니 대학생들이 추구하는 '재미' 요소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결국 '오너십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그 이후 대학생들을 다시 모집했고 이번에는 대학생 회장을 세워 조직을 다시 꾸려보았다. 그 아이가 평일에도 열심히 또래 구성원들을 만나고 다녔고 한대협에 재미를 붙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려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러면서 회원들 숫자도 꽤 늘어났고 뒤이어 리더로 뽑은 친구들이 또 신나게 일하면서 대학생들 숫자가 150명 이상 되었다. 그런 시간이 몇년이 흐르면서 취업한 선배들도 꽤 생겨났다. 그래서 선배들의 노하우를 한대협 경영에 녹이고자 부서별로 자문을 배치하려고 했더니 대학생 공동회장들과 임원진 몇몇이 굉장히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대학생들 입에서 '실무진들은 자소서 첨삭이나 해주면 된다'는 식의 무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백여만원의 예산을 기수 마무리 기념 행사로 하루만에 탕진해버리기도 했다. 가장 선두에 선 대학생 리더들이 조직에 오너십이 없으니 그들과 친한 임원진들은 모두 다 같은 여론으로 쏠렸고, 결국 그들은 모두 이탈했다.

위와 같은 경험들이 한대협을 운영하면서 수도 없이 많았다. 오너십 없는 리더는 결국 자기 세력만 키울 뿐 결론적으로 조직에 보탬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오너십의 부재.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정말 고심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대학생들에게 오너십 뿐만 아니라 인성, 긍정심, 팀웍, 이타심, 리더십을 세분화시켜 가르치는 것이었다. 하나하나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그것들이 왜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그걸 키우기 위한 실천 방법까지 가르쳐왔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지속적인 팀 플레이와 리더십 경험을 하며 이러한 개념들이 체화되도록 반복해서 교육하고, 필요하다면 개인적인 피드백도 한다.


요즘은 내가 가르쳐준 것들을 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일부 대학생들을 보며 희망을 본다. 성장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멘토님! 친구가 그러는데, 제가 많이 성숙해진거 같대요."라며 자신의 긍정적 변화를 부모님, 친구들 등이 알아봤다며 수줍어하는 얼굴로 전해주는 소식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들이 한대협에서 배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가정과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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