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배우자를 '나중'으로 미루는가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중요한 것을 먼저 챙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요함'의 기준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당장 급하고 영향이 큰 일, 결과가 바로 드러나는 일들이 먼저 선택된다. 반대로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고, 미뤄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은 뒤로 밀린다. 그리고 그 기준 안에서 배우자는 쉽게 '나중에 해도 되는 영역'으로 밀려난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논문과 책 출간,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까지 겹치면서 거의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았다. 일정은 빽빽했고, 하루하루를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남편과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필요한 말은 했지만 대부분이 생활을 굴리기 위한 대화였다. 서로의 상태를 묻거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같이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늘 곁에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넘겼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건 관계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왜 배우자를 나중으로 미룰까. 이유는 단순하다. 관계는 당장 결과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미루면 문제가 바로 드러난다. 마감이 있고, 평가가 있고, 책임이 따라온다. 하지만 관계는 다르다. 하루쯤, 일주일쯤, 심지어 몇 달을 미뤄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쉽게 뒤로 밀린다.
하지만 관계는 '조용히' 변한다. 연결이 약해지면서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대화는 줄어들고 내용은 기능적으로 바뀐다.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관리하는 관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나빠지는 이유를 큰 사건에서 찾지만, 실제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어떤 사건이 아니라 '방치된 시간들'이다.
바쁜 일정이 조금 정리된 후, 남편과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벚꽃을 보며 드라이브를 했고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남편이 말했다. "오늘 너무 행복하다. 최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특별한 것을 해준 것이 없었다. 그저 시간을 냈고, 함께 있었고, 대화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최고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 알게 됐다. 내가 미뤄왔던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는 걸. 그리고 관계는 무너질 때도 조용히 무너지지만, 회복될 때도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사람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신호를 받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신호는 대부분 아주 기본적인 행동에서 나온다. 시간을 내고, 시선을 주고, 대화를 하는 것.
문제는 이 기본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일을 많이 벌려놓은 사람일수록 바깥 일과 관계를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먼저 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장 가까운 관계는 '나중에 해도 되는 영역'으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관계는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빠르게 무너진다. 익숙함이 방심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준을 바꿨다. 배우자와의 시간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확보하기로 했다. 일정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정으로 고정했다. 주 1회, 1~2시간. 짧아 보이지만 이 시간이 관계의 상태를 바꾸는 것을 직접 체감했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하느냐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고, 생활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시간. 이 시간을 통해 관계는 다시 기능이 아니라 연결로 돌아온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가까운 관계가 안정되어 있다. 가까운 관계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반이고, 바깥 성과는 그 위에 쌓이는 결과다. 기반이 흔들리면 결국 성과도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먼저 챙긴다고 믿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장 중요한 사람을 가장 뒤로 미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쁠수록, 더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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