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사놀음 10화

먹는 것이 나다

2부 놀음 (평천하)

by 신디리

'육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0년 즈음,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에 너무나 광활한 창고가 보였다. 그렇게 큰 창고를 닭들이 빈틈없이 메우다 못해 서로 겹쳐지거나 깔려 있었다. 사진 상단에는 “당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보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실제로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몸에 좋다고 생각하며 먹던 고기들은 보기만 해도 숨 막히게 비좁은 상태로 사육되고 있었다.

내 인생 첫 강의는 식습관에 관한 강의였다. 제목은 '먹는 것이 나다'였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강조했다. 그 강의를 했을 때 나는 36세로 10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일이 없던 상태였다. 남들은 백수라고 여겼지만 솔직히 나는 그 당시를 강사가 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퀀텀 점프의 시기라고 포장하고 있다.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강의라는 것을 해봐야 했다. ‘세상을 향해 뭘 가장 말하고 싶은가?’ 고민해 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고기를 덜 먹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고 말해야 했다. 요즘 우리가 먹는 고기는 끔찍한 감옥생활을 견디다 죽은 동물의 시체임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어렸을 때 먹던 닭고기는 할머니댁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공기놀이를 할 때마다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닭의 살이었다. 수돗가 옆에는 지름이 80cm는 될 것 같은, 대형 도마로 쓰는 나무 둥치가 있었다. 할머니가 그 위에 닭을 옆으로 누이고 도끼로 모가지를 내리치던 광경을 수시로 목격하면서도 나는 백숙으로 변해버린 그 닭의 살을 잘 발라 먹었다. 몸통에서 분리되어 놀란 눈을 번쩍 뜨고 있는 닭 모가지가 흙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져 떼구루루 구르는 것을 봤으면서도 ‘아 오늘 저녁은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겠다’ 며 집에 가지 않고 할머니댁에서 저녁상을 기다리곤 했다.

소도 닭과 다르지 않았다. 변소 옆에 붙어 있던 외양간에서 숙식하던 소 세 마리는 할머니네 밭을 갈아주다가, 어느 날 시세가 제일 좋을 때 할아버지 손에 끌려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경이롭게 지켜보던 새끼 분만의 감동은 딱 그날 하루 지속될 정도로 나는 동물에 대한 인정머리가 없었다. 소들이 큰 눈을 이리저리 굴려 가면서 죽 먹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내가 심심할 때마다 하는 오락거리였다. 가끔 소가 촉촉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으면 ‘뭘 봐?’하고 하대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엔 할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과 돼지 잡는 것을 구경했다. 돼지는 쉽사리 죽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명이 줄로 목을 비틀고 쇠파이프로 대가리를 내리치는 데도 돼지는 ‘끼익’ 거리는 비명 소리만 내지를 뿐, 죽을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도망치려고 버둥거렸다. 나는 돼지 살해의 주동자처럼 보이는 우리 할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할아버지가 힘들지 않도록 돼지가 빨리 죽기를 원했다. 돼지 한 마리로 시골은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내장을 고무 대야에 나누어 담고, 다리, 비계, 살, 피, 껍데기 등 하나도 버리는 것 없이 각자 가지고 온 냄비에 나누어 담아 들고 갔다. 며칠 동안 우리 집 밥상에도 고기가 푸짐하게 올라와 4남매는 평소보다 덜 허겁지겁 젓가락질을 했다.

산골 소녀였던 나에게 닭, 소, 돼지, 염소, 토끼, 오리와 같은 동물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하게도 나는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 공장식 가축, 밀집 사육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닭이 양계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죽기 5분 전에 간택되어 목이 잘리는 줄 알았다. 그랬으니 그 사진을 보고 얼마나 충격에 휩싸였을지 상상이 가는가. 유튜브로 공장식 축산, 공장식 가축, 공장식 사육, factory-farming 등 관련 검색으로 걸려드는 거의 모든 동영상을 숨죽여 시청했다.

나는 육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식 가축에 반대한다. 극심한 고통, 두려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은 고기가 내 몸과 영혼에 영양분을 공급할 거라 믿을 수가 없다. 동물 운동가들은 ‘몸에 좋은 고기란 없다. 인간은 동물을 먹을 권리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몸에 좋다면 육식을 해도 좋다는 내 발언에 ‘인간이기주의자’라는 패러다임을 씌워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축산업자들은 ‘우리가 쪽박을 차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꼭 한 번은 들어봐야 할 강연'이라는 제목으로 히트를 친 동영상에서 강연을 했던 동물 권리 운동가, 게리 유로프스키 (Gary Yourofsky)는 세상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규율이 있는데 동물도 이 규율이 말하는 '남'에 포함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 노예, 돈, 지배로 표현되는 노예제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들이 노예가 아니면, 현재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이유는 4가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습관, 전통, 편리성, 맛 때문에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게리와 언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그는 실제로 내가 보낸 이메일에 매우 과격한 답신을 보낸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영상에 자극을 받아 육고기를 덜 먹고 있으며 나 역시 사람들에게 공장식 가축의 폐해를 알리는 강의를 하고 싶다고 먼저 이메일을 보냈다. 마음 한 켠으로 유명인에게 나름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는 내가 비건이 아니면서 강의를 할 생각을 한다고 비난했다. 또한 물고기 역시 먹어서는 안 된다며 NOT을 대문자로 써 보냈다.

나는 아직 동물 권리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동물들이 죽기 전까지는 편안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식 사육을 반대하는 것이다. 적어도 더럽고 비좁은 감옥 같은 우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공 수정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살충제와 항생제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언제 죽임을 당할지 조마조마하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 내가 먹던 닭, 돼지, 소는 공장식 가축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태평스럽게 살다가 벼락같은 일을 당한 고기였다. 노르웨이 피오르드 지형에 여행을 갔다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웨이터는 뭘 먹을지 고민하던 나에게 바깥에 지나다니던 닭을 가리키면서 닭가슴요리를 시키면 저 닭을 바로 잡아서 요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 요리는 어릴 때 할머니집에서 먹던 닭백숙 맛이 났다

잘 잡아먹기 위해서 동물을 편안하게 두고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공장식 사육은 기필코 반대한다. 오늘 저녁밥은 호박, 양파,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와 양배추쌈이다. 끼니는 사실 한두 개의 반찬으로도 충분하다. 따뜻하고 고슬고슬 거리는 잡곡밥 (꼭 조가 들어가야 한다)에 깔끔한 야채 반찬 한 두 개로 내 마음은 충만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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