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놀음 (평천하)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 부캐로 마사지사가 되었다. 마사지업계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지원샘이라고 불렀다. 가게에 상주하지 않고 예약이 있을 때만 샵에 가서 일을 하는 마사지사를 말이다. 마사지가 끝나면 원장님이 고객이 낸 자격의 50%를 건네준다. 내가 일했던 곳은 원장님 혼자 영업하는, 배드 3개짜리 작은 가게였다. 하루 종일 콜이 없을 때도 있었다. 일이 가장 많았을 때는 하루 대여섯 명까지도 관리했다. 힘쓰는 법을 몰라 손가락, 손목, 어깨에 무리가 많이 갔다. 일을 시작하고 서너 달 동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손부터 확인했다. 손이 얼마나 부어있는지, 어느 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는지 양손을 서로 어루만져보는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누누이 이야기했다. 돈도 안되고 골병만 드는 것을 왜 하냐고 말이다. 나 역시 마사지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PPT 만들고, 온라인 강의를 많이 해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마사지 지원샘으로 일할 때는 보통 한 주에 15명을 관리하고 30만 원가량 벌었다. 거의 2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주무르고 비비고, 누르고, 압박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강의장에 가서 2시간만 떠들면 되는 돈이다. 그런데 굳이 마사지를 6개월 동안이나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이 끝날 때마다 원장님께 받은 지폐를 지압과 경혈 책에 고이 꽂아와서 상자에 넣을 때 나는 행복했다. 교육기관에서 받은 통장에 숫자로만 찍히는 돈보다 나에게 마사지를 가르쳐준 선생님께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물성이 있는 돈을 받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45분 내지는 80분 동안 긴장과 미숙함에 눌려 분출하는 땀이 내 영혼을 맑게 해 줬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당근 알바를 기웃거린다. 프리랜서 강사이기 때문에 파트타임 알바가 가능하다. 해물탕집 홀 서빙, 복집 주방 설거지, 다슬기집 다슬기 까기 등을 하고 나면 한없이 낮아진다. 식당에서 나는 항상 대우받는 손님이었다. 하지만 알바를 하러 가면 식당 사장님이나 중간 관리자들은 나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내 이름은 전혀 불릴 이유가 없었다. 내 인격과 신념이 외부 환경에 흔들리는지 시험할 수 있는 좋은 현장이다. 다슬기는 1kg를 까면 5천 원이었다. 다른 이모님들이 '진짜 잘 깐다'라고 칭찬을 했지만 결국 다슬기 까기의 임금은 시간당 5천 원도 되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군자'처럼 살기 쉽다. 돈이 없어도 '군자'처럼 살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었다.
부자는 인문학을 못한다고 그런다. 사실 나는 이 말에 백 프로 공감을 한다. 인문학을 강의하는 자격이 되기 위해 자발적 가난을 원한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때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가난할수록 행복하다”, “가난할수록 도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할수록 몸과 마음이 건실해지고, 인간관계가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난하려고 노력한다면 전쟁이 있겠는가? 투기가 있겠는가? 싸움이 있겠는가? 질투가 있겠는가? 먹고살만한데도 돈을 끌어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좋은 직책이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승진하려고 할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가끔씩 낮아지고 작아지고 없어도 보고 결핍되어 볼 때 인문학적인 인간이 된다.
경제학자 강수돌 박사는 자본이 사람의 노동, 신화, 탐욕, 두려움, 위기감, 분노, 증오를 먹고 산다고 했다. 현재 자본주의는 '글로벌 슈퍼 리치'가 지배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기업들은 오로지 경제 이익에만 신경을 쓴다. 인간적인 정이나 분배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모으고 배를 불려야 멈출 수 있을까.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하나마저도 잃게 될 것이니!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편하게 잘 수 있고, 배 곪지 않고, 몸 아프지 않으면서 할 일이 있으면 된다. 그 일을 내가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행운아다. 더 편하게 자려고, 더 배 불리려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더 많이 하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