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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긴가 Apr 16. 2020

그렇게 나는 나를 마주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프롤로그



뭐든 시키면 열심히 잘했던 우등생



10년이 넘어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나를 이렇게 기억했다.

나름의 시험운과 성실함으로 시키면 열심히 잘했던 나는 그렇게 서른 중반의 생물학적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한 번의 칭찬은 다음번에 대한 기대감이 되었고,

그다음의 성취는 또 그다음 역시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그렇게 서서히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로 몰아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압박감에 잡아먹혀버렸다.




서른이 넘어 압박감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나서야, 나는 나를 마주했다.

때로는 사춘기처럼,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우울이란 얼굴을 하고 찾아왔었는데

한 번도 나를 마주한 적이 없었던 나는 참 많이 서툴렀다.

처음엔 도망치기만 했고, 다음번엔 소리도 질러봤고, 또 찾아왔을 땐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숱한 방황의 시간이 무색하게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나를 이제서야 나는,

어떻게 생겼나, 무슨 표정을 짓고 있나, 어떤 행동을 하나

조심스레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관찰한다.


킥킥거리며 혼자 끄적끄적 만화를 그리던 모습이,

닥치는 대로 100권의 소설책을 방학 내내 읽어대던 모습이,

문장과 문장들 사이의 감정을 음미하며 마음이 울컥하던 모습이,

조심스레 마주한 나의 얼굴에서 어렴풋이 보인다.


그제야 나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봐주지 않아 희미해져 가는 나를
조심스레 먼지도 털어주고, 만져주고,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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