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나만의 레시피를 꺼내 들고 망설임 없이 마음 내키는 데로 만들었던 이번 깍두기.
느낌이 좋았다. 자신 있게 설탕 대신 사과와 배를 갈아 넣고 슥삭슥삭 저녁 잠들기 전 쉐키쉐키 버무린 뒤 락앤락 통에 담았다.
며칠 뒤 라면과 함께 꺼내 든 깍두기는 무의 매운맛이 남아있었다. 며칠 좀 익히자 했던 그 깍두기를 일주일 뒤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 뽀글뽀글 작은 기포가 올라온다.
싸하다. 발효가 되고 있는 듯한 그 양념장의 표면.
어떻게 해. 깍두기 완전 익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것도 잠시. 괜찮다는 남편의 표정에 속상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깍두기 국물에 볶음밥 먹자로 대화를 이어간다.
깍두기 볶음밥은 맛있었다. 김치를 담그지 않은지 오래되어 그리운 김치의 그 특유의 발효된 톡 쏘는 새콤 짭짤 아삭한 맛을 깍두기에게서 찾았다. 그날 우린 정신없이 웍을 싹싹 긁어가며 한상 거하게 먹었다.
닥치면 또 어떻게든 잘 해결해 나가는데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안절부절일까.
집 나간 내 마음은 언제쯤 지금이라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올까.
깍두기 참패 후 남편이랑 이것저것 유튜브 맛있는 깍두기 레시피를 찾다 건너 건너 고깃집 된장찌개 레시피에 군침이 났기 때문이다. 팁 중에 하나는 김치 국물 두 스푼이었다.
집된장을 구하기 힘들어 브랜드별로 사논 된장은 영 맛이 별로라 최근엔 청국된장찌개가 주메뉴. 며칠 뒤 오랜만에 돼지고기 넣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이날 총각김치 맛이 나는 깍두기 국물 두 스푼은 마법의 재료가 되어 아주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었다.
세상사 삐끗하면 삐끗하는 데로 또 거기서 예쁜 꽃, 아니 맛있는 된장찌개 발견하며 또 앞으로 느릿느릿 나아가면 되는 그 쉬운 마음가짐을 가지기란 이리도 쉽지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