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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긴가 May 10. 2020

깍두기에서 총각김치 맛이 났다

과감하게 나만의 레시피를 꺼내 들고 망설임 없이 마음 내키는 데로 만들었던 이번 깍두기.


느낌이 좋았다. 자신 있게 설탕 대신 사과와 배를 갈아 넣고 슥삭슥삭 저녁 잠들기 전 쉐키쉐키 버무린 뒤 락앤락 통에 담았다.

며칠 뒤 라면과 함께 꺼내 든 깍두기는 무의 매운맛이 남아있었다. 며칠 좀 익히자 했던 그 깍두기를 일주일 뒤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 뽀글뽀글 작은 기포가 올라온다.

싸하다. 발효가 되고 있는 듯한 그 양념장의 표면.


어떻게 해. 깍두기 완전 익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것도 잠시. 괜찮다는 남편의 표정에 속상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깍두기 국물에 볶음밥 먹자로 대화를 이어간다.


깍두기 볶음밥은 맛있었다. 김치를 담그지 않은지 오래되어 그리운 김치의 그 특유의 발효된 톡 쏘는 새콤 짭짤 아삭한 맛을 깍두기에게서 찾았다. 그날 우린 정신없이 웍을 싹싹 긁어가며 한상 거하게 먹었다.




닥치면 또 어떻게든 잘 해결해 나가는데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안절부절일까.

집 나간 내 마음은 언제쯤 지금이라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올까.




깍두기 참패 후 남편이랑 이것저것 유튜브 맛있는 깍두기 레시피를 찾다 건너 건너 고깃집 된장찌개 레시피에 군침이 났기 때문이다. 팁 중에 하나는 김치 국물 두 스푼이었다.

집된장을 구하기 힘들어 브랜드별로 사논 된장은 영 맛이 별로라 최근엔 청국된장찌개가 주메뉴. 며칠 뒤 오랜만에 돼지고기 넣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이날 총각김치 맛이 나는 깍두기 국물 두 스푼은 마법의 재료가 되어 아주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었다.


세상사 삐끗하면 삐끗하는 데로 또 거기서 예쁜 꽃, 아니 맛있는 된장찌개 발견하며 또 앞으로 느릿느릿 나아가면 되는 그 쉬운 마음가짐을 가지기란 이리도 쉽지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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