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벌겋게 떴던 다음날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의 밤은 먼저 찾아와 있었다. 오랜만에 화면 넘어 아빠는 참으로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몇 년 전 시골에 자그마한 정원을 마련한 아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에서 바지런히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비닐하우스도 고치며 (나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르면) 딸은 독일로 아들은 서울로 훌훌 떠나고 헛헛한 마음을 이곳에서 정을 붙이셨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하는 나의 능청스러움에 오늘은 정말 마음이 좋으신지 여기 있으면 참 좋다시며. 엇 아롱드레 양난이 밤에 꽃을 피우네? 하며 잠시 화면 밖을 나가셨다 여기 장미도 많이 폈다 하며 화면을 획돌려 어두운 달밤에 청초롬히 핀 장미를 보여주신다. 그러다 이번에 조명을 하나 더 달았는데 너무 밝다며 훤하니 좋다신다. 티브이가 없어서 속 시끄러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나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 두런두런 지붕 낮은 집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자리 잡은 어릴 적 그때 같은 그 동네가 참으로 아빠의 마음에 드시나 보다. 마트에서 큰맘 먹고 사 오셨다는 구천 원짜리 맥주에 아는 척 그거 벨기에 맥주 같은데요 하며 쌉싸름하니 맛있겠네요 했더니 오징어 땅콩을 안주로 입에 넣으시며 아 그래 쌉싸름하니 맛있네 진짜. 하시며 한 병밖에 안 샀는데 아 아쉽네 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입은 웃고 계신다.
어제 본 보름달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아빠의 앞마당에 내리쬐고 아빠는 달도 밝다며 그렇게 환하게 웃으셨다.
다시 찾아온 나로 인해 울렁이는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면 나는 자꾸 지금에서 도망쳐 추억이 가득한 지나간 과거에 숨기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도망쳐버린다.
오늘 같은 날은 멀리멀리 미래로 도망쳐 빨리 한국에 가고파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쓴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자취방에 함께 지냈지만 첫 사회생활의 고단함에 챙겨주지 못했던 동생과 시원한 맥주 한잔에 별거 없는 시시콜콜 얘기도 주고받는 나날도 쌓을 텐데. 종종 부산에 내려가 없는 솜씨로 식사도 챙겨드리고 가끔은 서울에 올라오시라고 여기저기 나들이도 함께하며 별거 아닌 소중한 시간을 쌓을 텐데.
또 오늘 같은 날은 멀리멀리 과거로 도망가 그때 좀 더 잘할걸. 그때 좀 더 챙겨줄걸. 하며 웅크리고 주저앉아버린다.
아빠가 무척이나 기분 좋으셨던 그날, 그렇게 과거에 미래에 숨어있던 내가 툭 튀어나와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살아오셨냐고, 아 코로나고 뭐고 한국 가고 싶다 정말 하고 투정을 부렸다. 아빠는 성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지.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며 스스로 챙겨야지 하시며 스스로에게 다짐하셨던 말씀인 듯 동문서답처럼 말씀하시곤 아참 달 밝다 하셨다.
그날 아빠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한국만 보내주면 이번엔 진짜 잘할 거야 칭얼칭얼 거리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님을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보단 어린아이로 돌아가 부모님 뒤로 숨고 싶은, 그런 내 이기심의 마음이 더 큰 건 아닐까.
자신의 둥지를 일구고 그 속의 삶을 한평생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이제야 오롯이 자신이 지켜온 지금을 행복하게 즐기시는 아빠의 얼굴에 나는 또 한 줄의 주름을 세기려는걸까.
칭얼대며 도망간 나도 조금은 머쓱했는지. 쭈뼛쭈뼛 숨은 몸을 드러낸다. 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나도 이제 그만 아빠의 둥지를 나라 올라야 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이젠 진짜 내 둥지를 내 삶을 살아가야 함을.
외면했던 더 칭얼거릴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마주해서인지, 칭얼대며 꿈꾸었던 그 미래의 모습을 그저 미래에 두고 지금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너무나 속상해서인지 울컥거린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스윽 곁에 오더니 말없이 꼭 안아준다. 그 속에 숨어 한참을 나는 들썩거렸다.
가끔 남편이 화면에 등장하면 아빠는 나보다도 더 반가워하신다. 지지난해 잠시 이곳에 오셨다 가시는 공항에서 아빠는 나 몰래 남편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하셨단다.
다큐 속 어미 북극곰이 한 겨울 내내 새끼곰을 먹여 살리다 그 끝이 보이는 봄기운과 함께 그 품을 떠나보내듯이.
이제는 진짜 둥지를 떠나 날아오를 때인가 보다. 저 멀리 이제는 품을 벗어나 조금은 어설프게 아등바등 사냥하는, 다 커버린 새끼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제는 어미곰도 봄기운을 맘껏 즐겨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