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긴가 Apr 20. 2020

오늘 나는 나와  조금은 가까워졌다.


하루 근무 시간을 일주일에 나누어 재택근무 중인 나와, 일주일 중 하루를 출근을 하는 남편.


정신 면역력이 약한 나는 이런 비일상적인 일상을 몇 주 먼저 맞이하며 한차례 불안의 홍역을 겪었고,

몇 주 뒤 이런 비일상적인 일상을 남편과 함께 공유하게 되고 나서야 마음의 면역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코로나로 인한 유럽 셧다운 5주째.

일요일엔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것 이외엔 더 이상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어진 오늘의 연속이다.


외국 살이 단짝처럼 단둘이 함께한 10년 차,

느지막이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밥을 먹으며 8시간 전 이미 하루를 시작한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주말과 같은 하루를 그렇게 몇 주째 매일매일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지금 심심한 것 같은데. 오늘은 뭘 해야 할까. 뭐 먹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데도 그 어느 무엇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


갑자기 자리를 일어난 남편이 늦은 오전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같이 운동할지 물어본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일으키며 나도 옷을 갈아입는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인가 할 거리를 찾고 있었으면서 막상 무언갈 하려고 하니 너무나 하기 싫다며 마음이 미친 듯이 반항한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자신을 보듬어 주지 않은 채

그저 해낼 수 없는 완벽의 이상향을 들이대며 가혹한 평가만 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아이로 돌변해 나에게 반항한다.


아침을 먹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밥하기 싫어, 귀찮아, 먹기 싫어.

열심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싫어, 의미 없어, 도망칠래, 하지 마.


돌변해버린 나는 이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불같이 화를 낸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나를, 이번에는 잘 지내보겠다며 마음을 잡아본다.

이제는 그 마음의 화를 만든 게 나 스스로였음을 알기에.




운동복을 갈아입고 가볍게 몸을 풀며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러나 나는 쉬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 분명 본인이 나에게 뭔갈 하고 싶다고 했었으면서.

심술보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그치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는 나에게 괜찮다며, 계속 말을 건네며 운동을 이어간다..


끝내 나는 나에게 듣지 못했다. 왜 화가 났는지.

다만, 운동이 끝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중2병과 같은 화난 얼굴의 내가 아니었다.

뭐, 오늘 하루 운동 덕분에 나쁘지 않았다고. 나름 재미있었다고.

어쩌면 다음에 또 하자며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나에게 말했다.


뭐 이런 변덕쟁이가 다 있나 싶은 표정을 지으며 나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지난 시간 나로 인해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나의 마음의 한가닥을 풀어내며,

그렇게 오늘 나는 나와 조금은 가까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순하게 살기 위한 치열한 덧셈 뺄셈의 공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