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앤 Apr 03. 2024

X라는 제자와 쫄보 선생

'X라는 제자' 바뀐 결말 수정

3월 초, 브런치 작가 데뷔용으로 'X라는 제자'를 올렸습니다. 

결말을 수정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수정본을 'ENFP의 휴직생활' 연재에 공유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X입니다."

카카오톡 친구로 등록은 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개인톡을 주고받은 적은 없는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쪽 시력이 많이 나빠 교정을 한다는 이유로 6학년 내내 안대를 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던. 6학년임에도 글 읽기가 유창하지 않아, 그 당시 막 개발된 찬찬한글로 매일 아침 글 읽기 지도를 했던, 말하자면 공을 많이 들인 녀석이다.

뽀얀 얼굴에 눈을 완전히 맞추지는 못하고, 슬쩍슬쩍 쳐다보며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이 순수한 학생이었다.

그가 배움이 느리고, 거의 방과 후엔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이유가 어머니의 부재 때문일 거라 미루어 짐작하며 마음 한구석 아파했다.

공부를 잘하진 않아도,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지는 않았다. 숙제를 해 오지는 못해도 남아서 해야 하는 보충학습에 빠지지도 않았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흔히들 하는 욕도 하지 않고 온순했지만, 깐족의 수위가 도가 넘는다 싶으면 한 번씩 거칠게 대응도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X를 졸업시킨 20 학급 넘던 그 학교는 올해 6 학급이 되었고, 차를 타고 지나칠 때마다 텅텅 비어있을 교실을 안타까운 눈길로 넘겨보며, 희한하게도 계속 생각이 나던 녀석이다.

제자들을 졸업시켜 보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칭찬 많이 해주고 사랑 많이 받았던 아이들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미안하게도 1:1로는 그렇게 많이 마음을 주지 못했던 아이들인데,  그 1년을 남달리 기억해 주고 고마워해주는 아이들에게서 말이다.

X는 이도 저도 아닌 조금 다른 케이스여서 연락이 와서 적잖이 놀랐다. 학교 이름까지 대며 졸업생 X가 맞냐고 다시 물어볼 정도였으니. 게다 주고받은 문자를 유심히 보았는데, 띄어쓰기,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아 또 놀랐다. 하이라이트는 산업고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을 진학했다는 것이다. 히야... X가 대학을? 물론 전문대이긴 하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며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기 관련 과에 들어갔단다.

정말 멋지다는 감탄을 쏟아내고 큭큭큭 웃는 녀석의 문자들이 오고 가며 나는 살짝 흥분했다. 너무 고마워서. 내심 걱정스럽고, 안타깝고, 불안했던 제자의 미래에 그 어떤 기도도 보태지 못했던 나는 그저 1년짜리 선생이었다. 그러함에도 무던히도 잘 자라 이렇게 장성한 후,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이 그저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만으로도 140만 원어치의 기쁨이었다.  

나는 밥 한 번 사 줄 테니 날 한 번 잡자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 주 토요일로 바로 약속을 잡았고, 몇 번 데려다준 적 있는 X네 아파트 앞으로 데리러 가겠다는 말로 카톡을 마무리했다.

토요일 점심에 가족들과 함께 못할 이유를 설명하며 설레었던 금요일 오후, X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만날 텐데, 혹시 약속을 취소하려는 건가.

"어, X야~" 상기된 내 목소리를 따라 수화기 너머로 이제 대학생이 된  X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하며 무척이나 곤란한 듯, 그러나 정말 간절하게 X가 한 말은...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아니 왜.... 7년 만에 만날 선생인 내게?

녀석의 설명은 이랬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가방을 새로 사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사야 할 것 같단다. 그리고 새로 지은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90만 원이 필요한데집에서도 자기를 대학 보내느라 돈을 많이 써서 부담드리기가 죄송하다는 것. 오늘 친구들과 과조교 포함 스무 명 남짓에게 사정을 해보았는데, 하나같이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누가 이제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되는 사람을 보고 그 많은 돈을 빌려줄까그래서 정말 죄송한데, 내가 빌려주면 더 많이 얹어서 빠른 시일 내에 꼭 갚겠단다. 뭐지? 지금 얘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싶으며 기가 막혔다.

다음날 만날 약속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도 거절한 21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왜! 그 순간 장발장이 떠올랐을까?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감싸주었고, 장발장은 이후 세상의 많은 약자를 품는 사람으로 살아갔다는 그 이야기가. 은촛대도 당시 시세로 140만 원 정도 했을까?

X가 내게 목적을 가지고 연락해 왔고, 수순에 따른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선생이었던 나라는 한 사람쯤은 장발장의 미리엘처럼 넘어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뭔가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그래, X야, 선생님이 빌려줄게. 계좌 번호 보내"

우습게도 내 평생,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실제로 그만한 액수를 빌려준 일도 처음 있는 일이 되었다.

전화받은 곳이 차라 옆에 막내가 처음부터 앉아 우리의 통화를 듣고 있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 내가 혹시 몰라서 녹음해 놨어"라고 한다. 와.. 얘 봐라, 얘도 보통이 아니네. 블루투스로 전화를 받는 동안 핸드폰을 가져가서  만지작 거리더니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엄마, 진짜 빌려줘도 돼?"

그러게... 내 마음속에서도 계속 소리치는 의문이었다. 막내에게는 그렇게 설명했다. 내가 노력 없이 누리고 산 많은 것들에 반해 그 형이 누리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 만한 돈은 그냥 장학금으로라도 주고 싶다고.

그러나 호기롭게 대답한 그 말은 그날 이후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패대기 쳐졌다.

다음 날 나는 마냥 반갑게 만나게 될 줄 알았던 X를 마음속에 의심 한 보따리를 안고 맞이했다.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실은 그랬다. 나란 사람 이렇게 쫄보였나?

X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하게 된 유도로 몸이 건장했고, 여자친구도 있단다. 홀로 계신 할머니께서 건강이 좀 나빠지셨고, 아버지와 형은 여전히 X의 표현으로 '한 성깔'하시긴 하지만. 그런데 말끝에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가 화덕 굽는 회사의 부사장이시란다. 나의 의심은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5m.

그래, 기숙사는 언제 들어가냐는 말에 기숙사 말고 힘들어도 집에서 학교 다녀야 할까 싶다고 한다.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헉! '야, 너! 나한테 기숙사 들어간다고 90만 원 얘기했어!'라고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아니 소리쳤어야 했나? 이마저도 나중에 후회가 되었다. 의심의 깊이 10m 추가.

그런데 녀석이 이런다. 자기가 지금껏 용돈이랑 알바를 해서 거의 3천만 원 가까이 모았단다. 지금 딱 210만 원이 모자라서 3천만 원을 찾을 수가 없는데, 그만큼만 먼저 빌려주면 어제 빌려준 돈까지 한꺼번에 바로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은행담당자에게서 온 문자라며 핸드폰을 보여준다.

의심의 깊이 100m!

야!!!!!!! 하고, 있는 힘껏 소리치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현금이 없다고 답했다. 사실이기도 했다. 녀석은 끈질기게 아시는 분한테 잠깐만 빌려서 줄 수 없냐고 한다. '얘가 진짜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요즘 현금, 통장에 가지고 있는 사람 많이 없다고 애써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리고 좀 더 천천히 갚아도 되니 돈을 갚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갚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네가 직접 알바를 하든 용돈을 모으든지 해서 갚을 처지가 되었을 때 천천히 갚으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X는 내가 학생들 생일이면 보리빵을 직접 쪄와서 생일파티를 해주고, 자기에게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가르쳐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검은콩 옮기기 연습까지 하며 배웠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자기는 아직도 주먹 쥐고 젓가락을 사용했을 거라며 미소 지었다.

자기 입으로 초등학교 때 가장 좋은 선생님으로 나를 기억한다며 고마워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뭐가 진실일까?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나는 X에게 무엇일까?

녀석은 끝내 내 계좌번호조차 묻지 않고 헤어졌다. 몸이 축나는 게 느껴져서 알바는 당분간 안 할까 싶다는 말을 했다. 하.... 그럼 빌린 돈은 대체 어떻게 갚겠다는 걸까?

나는 장발장의 신부 코스프레도 제대로 못했고,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며 네게 주는 장학금이라 생각한다는 통 큰 말도 못 했다. 그저 착한 척, 마음 넓은 척하는 어쭙잖은 선생이라 돈도 잃고 제자도 잃어버릴 '호구'라는 생각이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리고 만약 지금껏 녀석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나는 그깟 140만 원에 멀쩡한 제자를 사기꾼으로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찐쫄보일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만약 한 가지를 택한다면 그래도 후자이길... 호구보다는 쫄보이길. 믿어주지 못한 대가로 내가 지불한 금액은 140만 원이다.


몇일 뒤, X에게 문자가 왔다.

"알바 다시 시작해서 바로 갚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문자를 받았던 그날, 나는 X를 믿고 싶었고, 또 딱 그만큼 믿지 못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X라는 제자 바로 그 녀석이라는.

부끄러움에 눈앞이 흐려졌다. 나를 한 순간에 호구 아니면 쫄보로 만든 X. 그 녀석이 당당하게 내 앞에 설 수 있는 그날이 오기까지 응원하고 기다려 주는 한 사람이 내가 되라는 뜻일까? X가 스스로에게 떳떳하며 책임 있는 성인으로 자라길 기대하며 선생노릇 좀 더 하라는 계시일까?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시시콜콜 일상을 얘기하는 남편에게조차 한 마디도 못하고 마음 속 깊이 묻었다. 7개월 같은 일주일이 흐른 뒤, 이달 말까지 갚겠다는 문자가 왔고, 나는 애써 명랑한 문체로 기특하다는 응원의 답문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30일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도서관에서 녀석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140만 원도 돌려 받았다.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길 수 있는 돈. 그 때문에 20일을 넘게 호구와 쫄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거짓과 진실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감사하게도 글을 쓰며 나 자신의 얕음과 가득 찬 의심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X의 성장을 감사했고, 언제든 성실하게 살아왔던 X의 인생이 느리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길.

3월 말이 다 되어 갈 때쯤 혹여나 그 돈을 받게 되면 나는 얼마나 큰 마음의 죄를 짓는 것인가 싶어 한편 불안해졌고, 그 걱정은 사실이 되었다.

쫄보 선생, X 제자에게 빚지다. 이 마음의 빚은 녀석의 인생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평생 갚아도 모자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