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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May 20. 2023

무엇을 쓸 것인가?

글쓰기와 책 출간

인도에서 15개월째 여행 중이던 내가, 인도 현지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고 나자, 그다음으로 결정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무엇을 쓸 것인가?’      


당시 나는 참 쓰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내 머릿속에는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희한한 것들이 꽉 차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외부로 구현해 보고 싶었다. 글쓰기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인도 문화에 관해서도 쓰고 싶고 : 인도 사람들은 왜 손으로 밥을 먹을까?

인도 불교에 관해서도 쓰고 싶고 : 인도 불교는 왜 중국에서 꽃피웠을까?(달마는 왜 동쪽...)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쓰고 싶고 : 죽기 위해 인도로 간 그녀의 이름은 K.    

 

그냥 단순히 좌충우돌하면서 15개월째 인도 여행을 하고 있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누가 비행깃값 줄 테니 보름 안에 써, 하면 감금 상태에서 하루 20시간씩 쓸 자신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쓰는 동안 가장 재미있을 것 같고, 가장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있었다. 바로 여행기였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이 쓴 여행기에 매료되어 인도로 갔다.      


김정미라는 사람이 쓴, 《3천 원의 인도여행》이란 책이었다. 이 책은 1991년에 나왔다. 당시 나는 군대 생활 중이었다. 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급기야 저자에게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답장은 못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도 여행을 꿈꾸었다


‘여행기를 쓸까? 메모도 잔뜩 해 놨으니 두어 달 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자신감이 불쑥 솟았다. 책 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비행깃값을 마련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책을 누가 읽어줄까? 아니, 그전에 그 책을 내줄 출판사가 있기는 할까? 더구나 나는 지금 인도에 있는데...’     


이런 현실적인 생각에 부딪히자 자신감이 급 사라졌다.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을 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글은 좋아서 쓸 수 있고, 의미가 있어 쓸 수 있고, 순전히 재미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였다. 사람들은 글을 쓴 결과물이 모여 책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낸다는 것은, 자비로 책을 만들어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 아닌 이상, ‘내 글을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팔겠다’는 목적성이 뚜렷한 행위다. 그 결과로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당시 나의 목적은, ‘비행깃값’이라는, 현실적이고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마냥 좋아서, 의미가 있어서, 재미로 써서는 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노트북이 있고, 인터넷이 있어 인도에서도 막 글을 써서 어딘가에 올릴 수 있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메일이 있었다면, 이런저런 출판사에 이런저런 제안을 하고, 조율을 통해 가장 좋은 방향을 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5년도는 전혀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간단한 안부 전화하기도 무척 힘든 것이 인도였다. 외국 여행자들이 많은 도시에는 사설 국제 전화방이 있어 비교적 쉽게 전화를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어림도 없었다.    

  

한국에 전화 한 통화하기 위해서는 물어물어 전화국까지 가야 했다. 다이얼을 돌리고 내 입에서 ‘여보세요’라는 말이 나오면,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전화국 직원이 비장한 얼굴로 초시계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끝나면 초시계를 보고 요금을 청구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통화 음질도 지금과 무척 달랐다. 아날로그 방식이라 상대방이 말을 하고 나면 2초 정도 뒤에 들렸다. 내 말도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감도 아주 멀었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전화 요금도 무척 비쌌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화로 뭔가 중요한 일을 논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단 한방에 출판사에서 오케이 할 수 있는 제안서를 만들어야 했다. 밀고 당기고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시 고민했다.      


‘내가 쓰고 싶고,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출판사가 한 방에 오케이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일까?’     


나는 15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뭔가가 없어서 아쉬웠던 그 뭔가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너무 싱겁게 답이 나왔다.      


‘그래, 바로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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