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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Sep 16. 2023

파키스탄 에피소드 - 1

비자 받기 위해 떠난 여행

원고를 아직 마무리하지도 못했는데 인도 비자가 끝나갔다. 

돈이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 원고를 마무리하면 간단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 값이 없었다. 

그 비행기 값을 벌기 위해 가이드북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인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가장 가기 쉬운 나라가 네팔이었다.      


나는 네팔에서 인도 비자를 받아 본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다. 

신청서를 내고, 50달러 정도 내면 1주일 후에 비자가 나왔다.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나오기까지 네팔을 여행하면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네팔을 찾는 외국 배낭족들이 무척 많던 시절이다. 

카트만두에 있는 인도 대사관에 가면 집시 같은 배낭족들이 바글거렸다.      


내가 머물던 보드가야에서 네팔이 훨씬 가깝고 가기도 편했지만, 어째 또 가기는 싫었다. 

그동안 원고 쓰느라 여행도 못 하고, 감금당한 채 글만 썼던 내게 스스로 선물을 주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가기로 했다. 

파키스탄 여행도 하고, 인도 비자도 받고.     


너무나 달랐던 두 국경     


당시 파키스탄과 우리나라는 무비자 협정이 맺어져 있었다. 

따라서 너무나 싱겁게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싱겁게 들어가기는 네팔과 똑같았는데, 다른 점도 있었다.      


인도 네팔 국경의 경우, 인도 이민국과 네팔 이민국이 약 200미터 사이를 두고 있었는데, 그 사이가 시장이었다. 

사람들로 바글거려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처음으로 그 국경을 넘었을 때, 인도 이민국에 들러 출국 절차를 밟고, 다시 네팔 이민국으로 가서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네팔 비자는 돈만 내면 즉석에서 내주었다), 인도 이민국 찾아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새 네팔 이민국 앞에 와 있었다. 

그러니까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계속 걸어가면 그냥 네팔로 불법 입국을 하는 셈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인도 파키스탄 국경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날, 같이 국경을 넘은 사람은 나와 일본 배낭여행자 1명, 독일 여행자 1명 모두 세 명뿐이었다. 

인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도 이민국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이민국으로 걸어가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파키스탄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파키스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가이북도 없었고, 파키스탄에 갔다 왔다는 여행자도 만난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출처:픽사베이

다행히 국경에서 만난 일본과 독일 여행자의 도움으로 파키스탄에 대해 간략한 정보를 조금 얻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대사관이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라마바드에는 공공기관만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세종시 같은 곳이었다.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라 넓기는 엄청나게 넓고 깨끗한데, 사람이 없다 보니 숙소나 식당도 없다고 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라왈핀디’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이 옛 파키스탄의 수도라고 했다. 

그곳에는 싸구려 숙소도 많고, 싸구려 식당도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라왈핀디에 숙소를 정해 놓고 이슬라마바드로 일을 보러 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버스를 타고 라왈핀디로 갔다. 

하룻밤 꼬박 가야 하는 거리였다.      

라왈핀디는 인도의 여느 도시처럼 복잡하고 정신없고, 곳곳에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들이 즐비했다. 


아, 뭔가 잘못된 것 같애    


라왈핀디에 숙소를 정한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인도 대사관을 찾아갔다. 

비자가 나오려면 최소한 1주일은 걸릴 것이고, 미리 신청을 해 놓고, 비자가 나오는 동안 파키스탄 훈자 마을이나 갔다 올 생각이었다.      


사람들에게 인도 대사관 위치를 물어보니 친절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주었다. 

몇 번 버스를 타면 인도 대사관 앞에 선다고 했다. 

     

라왈핀디를 벗어난 버스가 이슬라마바드로 들어서자 마치 우리나라 강남에 온 듯 길은 반듯하고 건물들도 깨끗했다. 

다만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잠시 뒤, 버스가 멈췄고, 차장이 인도 대사관 앞이라며 내리라고 했다. 

소도둑놈처럼 생긴 버스 차장은 친절하게 멀리 있는 하얀색 건물을 가리키더니 ‘저게 인도 대사관이야’ 하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인도 대사관은 마치 궁전처럼 화려했다. 

우리나라 한남동에서 보았던 우체국 분소 같은 인도 대사관이나, 카트만두에서 보았던 숲 속 대피소 같은 인도 대사관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규모가 엄청났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보다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도 대사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대사관이 가까울수록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왈핀디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길거리에서 가장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도 대사관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인도 대사관 주변에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인도 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와우'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시에 뭔가 잘못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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