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명상
스물아홉 살 때 인도 여행을 떠났다. 그때 책을 몇 권 갖고 갔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명상에 관한 책이었다. <깨달음의 여행...> 뭐 그런 식의 제목이 붙은 책이었다. 인도 여행 중 그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 다 읽고 나자 실제로 명상을 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러던 중 붓다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동네인 ‘부드가야’에 가게 되었다. 당시 부드가야는 우리나라 면 소재지만 한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무척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첫눈에 부드가야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명상을 해 보기로 했다.
어느 날 아침, 동이 트기 무섭게 보리수나무 밑으로 갔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앞에는 아파트 20층 높이의 불탑이 서 있었다. 그 안에는 불상을 모셔 놓은 작은 법당이 있었다. 법당 안에서는 하루 종일 불경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큰 절과 비슷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보리수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풀밭 위에 얇은 담요를 깔고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를 고쳐 보아도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허리를 세우면 몸이 뒤로 넘어질 것 같아 다리에 힘을 주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 명상은커녕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결국, 명상은커녕 아픈 허리와 저린 다리 탓만 하다가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그것이 나와 명상의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이 너무 힘들었던 때문인지 한동안 명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부드가야를 떠나 인도 북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7개월 후, 다시 부드가야에 갔다. 그러고는 <고려사>라는 작은 한국 절에 숙소를 잡았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지 않을 때라 부드가야에 온 한국인들은 물어물어 고려사를 찾아왔다. 고려사에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딸려 있었기 때문에 빈 침대가 있으면 한국인들은 며칠씩 머물다 갔다.
해가 지고 시원해지면 고려사에 머무는 한국 여행자들은 삼삼오오로 보리수나무가 있는 불탑 근처로 가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대구에서 온 어떤 아저씨가 명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아저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명상을 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한번 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명상에 대해 미련이 있던 나는 그날 밤 고려사로 돌아가 그 아저씨에게 속성으로 명상을 배웠다.
대구 아저씨는 먼저 앉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다음, 엉덩이에 방석을 반으로 접어 깔고 앉으라고 했다. 대구 아저씨 말대로 두툼한 방석을 반으로 접어 깔고 앉았더니 허리가 반듯하게 펴지면서 아주 편안했다. 그 상태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있을 것 같았다.
7개월 전, 혼자 명상을 해 보겠다며 보리수나무 옆 잔디밭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엉덩이에 두툼한 것을 깔고 앉는다는 그 간단한 것을 몰라 아주 불편한 자세로 앉아 명상을 해 보려다가 10분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걷고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대구 아저씨는 양손을 동그랗게 말아 포갠 뒤 엄지가 맞닿게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배꼽 주변에 놓아두라고 했다. 또 혓바닥을 입천장에 살짝 대라고 했다. 두 엄지를 통해 몸의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통하게 하고, 혀를 통해 몸의 위쪽과 아래쪽이 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숨을 내뱉으라고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숨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 눈을 감으면 잠이 오거나 잡념에 빠지게 되니 눈을 살짝 뜬 상태에서 눈앞의 한 점을 가볍게 응시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명상은 속이 비어 있을 때 해야 한다고 했다. 뱃속에 음식물이 가득 차 있으면 위장이 폐를 눌러 깊은 호흡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든지, 잠자기 직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것이 그날 저녁 대구 아저씨에게 배운 명상 수업의 전부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날 밤. 11시가 넘어 내 방으로 돌아간 나는 대구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명상을 했다. 몸이 편안하니 호흡도 편안했다. 처음 해 보는 명상이다 보니 호흡이 길지는 않았다. 대구 아저씨 말로는 명상이 경지에 오르면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뱉는데 1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20초를 넘기기 힘들었다.
몇 번 호흡 연습을 하다가 명상에 돌입했다. 바닥을 응시한 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아주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했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잠시 후, 다리가 저리고 갑갑함이 밀려왔다. 꼼짝도 않고 앉아 숨만 쉬고 있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누워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몸도 움직이지도 않고, 자세는 반듯한 상태에서 오직 숨만 쉬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은 것은 태어나 처음일 것이었다. 자연상태에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런 자세에서, 그런 상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을 일이 없다. 명상을 할 때 말고는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5분이 지났는지 50분이 지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억지로 참고 계속하면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자세를 풀고 시계를 보았다. 명상을 시작한 지 23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이것이 약 30년 전, 태어나 처음으로 한 명상이었다. 내가 명상의 세계에 발을 디딘 첫날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한 명상이, 나이 육십이 된 지금 흔들리는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