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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너스톤 Mar 04. 2019

라곰과 휘게,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주얼리

언제부턴가 마냥 멀게만 느껴지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 패브릭 아트와 원목가구, 무민 텀블러와 편안하고 절제된 패턴의 앞치마. 아마도 출세지향적이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북유럽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힐링의 기운을 잠시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스웨덴 특유의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관통하는 개념은 '라곰(lagom)'이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원칙으로 작용하는 라곰이란, 스웨덴어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라는 의미를 갖는다. 소박하지만 만족할 줄 알고, 물질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며, 지역 공동체와 자연 환경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바로 라고머들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공도 부도 아닌 마음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소비하고 균형잡힌 생활을 하며 자연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삶의 패턴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와도 잘 맞닿아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에는 '휘게(hygge)'라는 단어가 있다.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 혼자서 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보내는 소중한 순간들에 서려있는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거창하고 화려한 삶보다는 주변과 함께하는 따스한 시간들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런 삶의 가치관은 마찬가지로 특유의 디자인과 주거환경의 배치에도 잘 배어난다. 따스한 색감의 식탁 위에 좋은 음식이 있고 벽난로 앞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서 좋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20세기 초부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는 아르데코의 화려함을 거부하고 단순함을 지닌 순수함이 강조되어 디자인의 본질을 되찾고자 하는 디자인 흐름이 있었고, 가구와 조명과 텍스타일과 패턴까지 특유의 절제되면서도 고상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이 속속 유명해졌다. 모더니즘 원칙에 따라 디자인은 심미적이면서도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생활예술이 되었고, 딱딱한 바우하우스가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절제됨과 천연재료를 만나면서 보다 부드러워졌다.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서 주얼리가 차지하는 위상은 어떨까. 스칸디나비아 국가에는 오래된 실버와 에나멜 세공 전통이 있지만, 디자인의 측면에서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스타일에 지표가 되어준 사람은 덴마크의 조각가 게오르그 옌센(Georg Jensen)이다.

게오르그 옌센의 실버 주얼리


그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기존의 주얼리 개념에서 탈피해서,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귀금속을 활용한 주얼리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했다. 스털링 실버 공예품들이 주를 이뤘는데, 단순히 반짝이는 실버가 아니라 무광택이라거나 독특한 해머링 등을 통해서 같은 실버라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선보였다. 엄청난 부자보다는 예술의 가치를 아는 중산층들이 그의 주얼리를 사랑했고, 특유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실버 주얼리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자기과시와 부의 전시가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스칸디나비아 문화에서는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숭고미가 더 선호되었고, 그렇게 장식 없이 자연스러운 금속 주얼리가 대세가 되었다. 단순함과 자연스러움이야말로 가장 균형미 넘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와 대중들을 위한 공장식 생산에 의존하지 않았다. 스칸디나비아는 특유의 공동체문화와 자연에 대한 조화를 바탕으로 주얼리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으로 소규모 작업실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사람의 정성과 흔적이 묻어나는 수공예를 통해 공정성과 신뢰를 키워나가고자 하는 스칸디나비아 문화 속의 제조과정은 단연 투명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주얼리는 뛰어난 품질로도 유명하다.


에바 아틀링의 주얼리


애니 버너의 주얼리
올 블루스의 주얼리

최근 한국에 팝업 스토어를 연 스웨덴의 에바 아틀링(Efva Attling)은 특유의 디자인으로 다수의 상을 받은 여자 디자이너로, 수많은 연예인들의 주얼리를 담당하기도 했다. 에바 아틀링은 자신의 주얼리 철학이 '사유가 담긴 미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시적이고 함축적이며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주얼리를 만든다. 노르웨이의 젊은 디자이너인 애니 버너(Annie Berner)는 현대예술에 가까운 주얼리 디자인을 선보이는데, 미니멀리스틱한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모더니즘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더 볼드하고 더 과감한 젊은이 특유의 영감을 가미한다. 디자인 듀오인 올 블루스(All Blues)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수작업으로 최근 주얼리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감상이나 과시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검소하면서도 생활친화적인 것이 스칸디나비아 문화의 특징이기 때문에, 장식 없는 금속 주얼리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얼리하면 유색보석보다는 귀금속을 떠올리고, 심플하면서도 고상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된다. 스칸디나이바 가구에 대한 관심을 넘어 스칸디나비아 주얼리에 대한 관심도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www.connerst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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