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P 2019 후기 ② 도쿄 워크샵 참가자
TISP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일본 중소기업에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된다. 자세한 과정 및 워크샵 방식들은 이후에 다루겠으나, 전반적으로 오리엔테이션 및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비롯해 현장 탐방 (fieldwork)과 다양한 워크샵, 프로토타입 제작 (prototyping), 마지막으로 최종 발표 및 최종 점검을 진행하였다. 자세히는 아래와 같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⑴ 이노베이션 소개 (Introduction, OT)
⑵ 주어진 미래상을 바탕으로 미래 니즈 파악 (Future Needs)
⑶ 일본 중소기업 소개 및 팀별 선택 (Introduction of the SME's and Choice)
⑷ 현장 탐방 및 질의응답 시간을 통한 기업 이해 이후 기업 강점 파악 (Questions and Strengths of SME)
⑸ 미래 니즈와 기업 강점 연결을 통해 제품 및 서비스 아이디어 구상 (Strengths, Needs, and Ideas)
⑹ 미래 니즈 및 기업 강점을 기준으로 아이디어 자체 평가 (Evaluation Matrix & Comprehensive Analysis)
⑺ 아이디어 정비 (Refinement of Idea)
⑻ 프로토타입 제작 (Prototyping)
⑼ 최종 발표 (Final Presentation)
⑽ 소감 공유 (Reflection)
흥미로운 점은 TISP에서는 흔히 디자인 씽킹 활동에 사용되는 포스트잇 노트가 아닌 APIS Note라는 온라인 노트 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메모 노트에 각자 아이디어를 적어 붙인 뒤 노트끼리 서로 연결할 수 있어 비교적 효율적이다. 나아가 이러한 복합적인 과정을 시간상으로 기록해 프로그램 이후에도 타임라인을 복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i.school의 이노베이션은 꽤 체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ISP 첫 주에는 동경대학교 고마바 캠퍼스에서 나를 포함한 30명의 i.school 및 국제 학생들과 이노베이션 워크샵을 가졌다. 내가 속한 팀은 Team A로, i.school 소속 동경대학교 대학원생 이외에도 미국 중서부, 호주, 중국 등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본격적인 워크샵 시작에 앞서 i.school 총괄자이자 동경대학교 토목공학 교수님이신 Hideyuki Horii 교수님의 ‘Designing and Studying Innovation Workshop: How to support ideation’ 강의를 들었다. 이노베이션의 본질적인 개념 및 목적, 아이디에이션 방식, creativity의 의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세 종류의 creativity 중 이번 프로그램에서 접근한 방식은 combinational creativity, 그 중 특히 analogy 라고 하셨다. 간단히 말해 analogical thinking은 A:B = C:D와 같이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하며 이루어내는 creativity인데,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analogy를 적용해 미래상 및 미래 니즈 (future scenarios & needs)와 회사의 강점 (strengths of the company)을 비교하게 된다. 프로그램 시작 약 한 달 전에 미리 이메일로 i.school에서 자체적으로 구별해낸 열 가지 미래상이 주어졌었는데, 참가자들은 이를 기업 현장 탐방 이후 파악된 강점들과 접목해 새 제품 및 서비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된다.
가장 먼저 제시된 열 가지 미래상을 두고 앞으로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게 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한 가지 예로, ‘Both parents working full-time in Japan will become a commonplace’라는 미래상에는 ‘More children cooking for their family while the parents are not home’ 혹은 ‘Reward for yourself working hard at work and child care’와 같은 미래 니즈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워크샵 동안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구상해보았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빽빽한 일정과 부족한 시간 탓에 열 가지 미래상 전부를 짚어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급한 대로 각 팀원이 관심 있는 분야이거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미래상 몇 가지를 골라 아이디에이션을 진행하였다. (APIS Note의 우측을 보면 다섯 개의 주황색 노트는 연결된 노트 없이 비어있다. ㅠㅠ)
팀마다 맡게 될 기업을 정하기 전에 이 워크샵을 진행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기업을 정한 뒤에 그 기업에 적합한 미래상을 고민한다면 생각이 편향되기 쉽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미래상부터 생각해낸 뒤 기업에 관해 고민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팀마다 맡게 될 회사를 결정하기 전, 일본의 중소기업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이 제조업으로 유명한 나라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작은 부품 하나하나 중요하다는 점은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기억에 남는 점은 많은 회사가 에도시대 때부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가족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것, 또 장인정신을 매우 강조한다는 점. 심지어 비지니스 운영을 위해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을 가족에 아예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를 이해하고 나니 강연자의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 (SME) is essential, irreplaceable and unique part of Japanese economy"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어 각 팀이 맡게 될 회사를 골랐다. 가사 도우미 서비스, 프린팅 회사 등 다섯 개 분야의 중소기업 중 고를 수 있었는데, 우선 각 회사에 관한 소개 글을 읽고 짧게 설명을 들은 뒤, 팀별 회의를 통해 가장 마음에 드는 회사를 고르는 식이었다. 우리 팀은 Ishikawa-Kanaami (石川金網株式会社)라는 회사를 택했다. 다양한 종류의 철망을 다루는 곳이었다.
사실 처음엔 철망이라는 소재가 낯설고 전문 분야로만 느껴져 부담이 컸었다. 하지만 직접 회사를 방문해 얘기를 들어보니 어렵지만도 않았고, 오히려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현장 탐방 동안 회사 내부 및 공정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머리카락보다도 가는 철사를 손으로 일일이 엮어 철망을 만든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실수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철사가 너무 가늘어 이를 엮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기계는 굉장히 비싸 사람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의 독자적인 기술인 Oriami (종이접기가 가능한 철망)와 Kanaori (섬유 질감의 철망)도 눈에 띄었는데, 철망이 단순히 필터링이나 구조물 혹은 인테리어 등의 목적뿐만 아닌 장신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Ishikawa-Kanaami는 이렇게 이미 특허받은 기술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고, 규모는 작고 오래됐지만 그만큼 촘촘히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플랫폼 및 빅데이터 중심의 산업으로 변모 중인 사회일지라도 일본의 제조업 기술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현장 탐방 동안 회사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질문할 수 있었는데, 이후 워크샵에서 이때의 답변을 바탕으로 회사가 가진 강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철망을 자유자재로 접고 구부릴 수 있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껴졌다.
이 워크샵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팀에서는 우선 현장 탐방에서 각자 받아 적었던 메모를 참고하며 회사의 특징들을 최대한 빠짐없이 적어보았다. 그렇게 모인 노트 그룹, 즉 cluster는 총 여섯 개로, Company (Vision), Product, People & Skill, Technology, Branding/Sales/Marketing, 그리고 Business Model이었고, 이들은 파란색 노트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그룹화시킨 이후에는 SWOT Analysis에서 착안해 Strengths (강점), Weaknesses (약점), 그리고 Opportunities (기회)로 나누어 노트를 다시 분류하였다. (기업 현장 탐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기에 외부 위험요인인 Threats는 분류에 포함하지 않기로 하였다.) 분류가 다 끝난 뒤, 각 cluster마다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였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cluster 하나를 제외해 총 다섯 개의 강점을 흰색 노트로 정리하였다.
미래 니즈와 회사 강점이 모두 파악된 뒤, 본격적으로 새 제품 및 서비스 아이디어 아이디에이션에 돌입했다. 앞서 진행했던 워크샵에서 만든 미래 니즈와 회사 강점 APIS Note를 불러와 이 둘을 연결하며 새 제품 아이디어를 내보았다. 쉽게 말해, ‘이 회사는 강점을 활용해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 해결하거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How can this company solve or fulfill what's needed in the future by utilizing its strengths?)’를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세 가지 미래 니즈, 즉 개인 환경에 대한 민감성 (sensitivity to personal environment), 개인 맞춤성 (customizability), 그리고 환경 친화성 (sustainability)에 초점을 두었다. 회사의 강점 중 철망은 주로 필터링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점과 Oriami와 Kanaami 같은 경우에는 철망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어 장신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해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보고자 하였다.
다양하고 기발한 제품 아이디어 중 하나를 고르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워크샵에서는 평가 항목을 두고 비교하며 아이디어를 간추려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워크샵에서의 평가 기준은 우리의 주목적인 ‘회사 강점을 잘 활용하는가 (Make use of the strength)’와 ‘미래 니즈에 부합하는가 (Meet the future needs)’였다. 이를 바탕으로 좌측 열에 아이디어를 늘어놓고, 평가 기준은 각각 우측 열에 배치해 서로 아이디어에 코멘트를 남겼다. 이후 코멘트의 긍정도와 중요도를 바탕으로 노트 색을 다시 바꾼 뒤 정리하여 아이디어를 추려내었다.
이를 통해 우선은 세 가지 아이디어로 간추렸는데, 하나는 이 회사의 또 다른 독자적인 기술인 펀칭 기술을 활용한 ‘철제 비즈니스 명함’, 다른 하나는 구부릴 수 있는 철망을 활용한 ‘여행 가방’, 마지막으로는 ‘개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가면’이었다. 하지만 이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워크샵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번 워크샵에서는 앞서 간추린 세 가지 아이디어를 두고 (4)의 아이디에이션 워크샵을 반복해 제품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였다. 하지만 이내 마땅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번에는 교수님과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의견을 묻기로 하였다. 팀원들끼리만 고민해 점점 생각이 좁아지던 차에 유용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후 팀원들 간의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필터링 마스크로 결정하였다. 필터링이라는 철망의 가장 주된 특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사용자 얼굴형에 맞춰 제품을 구부릴 수 있다는 점, 또 주기적으로 세척한다면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까지 미래 니즈와 회사의 강점에 부합하는 제품이었다. 이에 앞서 진행했던 워크샵에서 나왔던 ‘개인 공간 가면’ 아이디어까지 더하니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는 듯했다.
이어 탄력을 받은 우리 팀은 자율적으로 워크샵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필터링 마스크로 제품 아이디어를 결정한 뒤, 어떤 기능을 더할지, 누가 사용하면 좋을지, 언제, 또 어떤 목적으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용할지 등의 제품의 다양한 조건들을 구체화해본 시간이었다.
비록 공식적으로 프로그램에 포함된 것도 아니고 시간도 부족해 정식적으로 하지는 못 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마스크 착용 시 느껴지는 숨결이 싫다는 점이나, 오랜 시간 착용하고 있으면 귀가 아프다는 점, 보기 흉하다는 점 등의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낼 수 있었다. 교수님 역시 ‘마스크를 꼭 마스크라고 불러야 하는가’, ‘마스크를 꼭 귀에 걸어야 하는가’ 등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셨다.
이들을 바탕으로 팀원들끼리 아이디어를 최종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앞서 나누었던 특징들 이외에도 향, 색, 약 성분 등의 다양한 기능 필터 레이어를 겹쳐 쓸 수 있다는 점과 또 귀 대신 목에 착용한다는 점을 추가하기로 했다.
발표 전 마지막 단계로 팀마다 결정된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이핑하여 실현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토타이핑 전날 밤 팀원들과 모여 잡화 쇼핑몰에서 미리 재료들을 구입했다. 재료 구매 비용으로 3,000엔밖에 주어지지 않아 걱정이 컸지만, 다행히 필요한 재료들은 다 구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실제 제품 프로토타입 이외에도 짧은 스킷 (skit) 영상까지 준비했다. 제품 사용 전과 후의 사용자 모습을 담은 영상을 각각 촬영해, 제품이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시각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사실 아쉬운 점이 전적으로 많은 단계였다. 애초에 프로토타이핑의 주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인 만큼 최소한의 자원으로 빠르지만 정확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구현해내기 어려운 아이디어이면서 또 소재 또한 다루기 까다롭다 보니 준비한 재료로는 결국 허술한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또 제한된 시간 안에 시제품 프로토타입, 스킷 영상, 발표 자료까지 다 준비해야 하다 보니 팀원 두 명씩 나뉘어 일을 맡아 했고, 그 탓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 준비가 진행되었다. (스킷 영상 편집에 급급해 뒤늦게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완성된 프로토타입은 내가 떠올렸던 것과는 전혀 달라 당혹스러웠고, 발표 자료는 최종 발표 때에 처음 볼 수 있었다...)
다른 팀들의 발표 준비 과정을 보니 프로토타입이나 스킷 이외에도 user journey map, persona 등의 다양한 방식들을 사용하는 듯했다. 여러 방식으로 아이디어들이 소통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즐거웠는데, 프로그램 내에서 이렇게 다양한 design methods를 조금 더 심도 있게 설명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섯 개 회사 클라이언트 앞에서 전체 팀이 최종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팀 외에 다른 팀들의 발표도 함께 들을 수 있었는데, 다른 분야의 회사를 맡은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해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팀별 발표 이후에는 클라이언트가 발표자들에게 직접 질문이나 코멘트를 남겼고, 이어서는 교수님도 참가자들에게 피드백을 주셨다.
감사하게도 우리 팀 발표 이후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갔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로토타입은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영감을 준 듯했다. 회사에서는 그간 B2B 사업에만 주력해왔는데, 일반 사용자들을 위해서도 철망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어 고맙다며, 마스크 아이디어는 실제 사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교수님 역시 현존하는 마스크의 문제점을 재차 짚으시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격려해주셨다. 지난 며칠 간의 고생했던 게 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최종 발표 이후 클라이언트들의 반응은 미래상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었다.
첫째는 ‘갑자기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가’ 하며 의아해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3D 모델링 회사를 맡은 한 팀은 고령자 및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일본 미래 사회를 반영해 치매 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는 ‘왜 하필 치매 환자를 위한 서비스여야 하는지’ 질문했다. 이에 팀원은 ‘프로그램에서 제공해준 열 가지 미래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 니즈와 회사 강점을 잘 연결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이념이나 운영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이러한 미래 상황에 고민하던 중’이라는 반응이었다. 한 가지 예로,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맡은 팀에서는 위와 같은 미래상을 근거로 고령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는 ‘그렇지 않아도 다가오는 단카이(團塊) 세대의 은퇴 시기를 앞두고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하면서 흡족해했다.
최종 발표까지 모두 마친 후,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 느낀 점을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반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디자인 씽킹 과정 (Empathize-Define-Ideate-Prototype-Test)에서 Define과 Ideate 단계에 특히 집중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아이디에이션을 여러 단계에 거쳐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진행해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어렵지마는 유익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목적이나 방식이 새롭게 느껴져 좋았다. ‘미래’적인 요소와 ‘개별 회사’의 요건을 중심으로 양방향에서 접근해 그 접점을 찾아내는 방식은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방식이라 더더욱 인상 깊었다. 해결하고자 하는 회사의 문제, 즉 회사의 약점에 집중해 새 아이디어를 내고자 하는 게 아닌 회사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 즉 강점을 중심으로 접근했다는 점도 나에게는 새로웠다. 디자인 씽킹에서 중요시하는 '공감' 이외에도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가장 먼저 디자인 씽킹의 근본적인 핵심인 Empathize, 즉 사용자를 공감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두 방향에서 접점을 찾는 방식은 새로웠고 ‘공감’ 이외의 요소들도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오로지 사회 및 비즈니스만을 고려했을 뿐 사용자에 대한 공감은 완전히 배제하였다. 주어진 미래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나 회사의 고객들과 소통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 그나마 즉석에서 진행한 사용자 인터뷰가 전부였을 뿐이다. 다른 한 참가자는 ‘미래는 결코 예측할 수 없고, 가정된 미래가 아닌 현재 사용자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미래상이 그저 주어졌다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TISP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워크샵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데, 아쉽게도 참가자들은 미래상을 도출해내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주어진 미래상이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도출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회사의 강점은 팀별 직접 현장 탐방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는데, 왜 미래상은 직접 알아볼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지? 일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그 시점 그곳에서는 미래상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 걸까? 미래 상황을 도출해내는 아이디에이션 워크샵이 프로그램의 일부였다면, 아니면 적어도 주어진 미래상을 어떻게 구상했는지에 대한 과정이나 배경지식이라도 알려줬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아이디에이션 과정에도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간 내가 해오던 아이디에이션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신속하게 브레인스토밍을 해 허무맹랑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본 뒤 이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간추렸었는데, 이곳에서는 각자 노트북만 들여다보며 묵묵히 생각을 적어내기 바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맞춰가기 어려웠다. 큰 진전 없이 팀원 전체가 축축 처진다는 기분이 강했고, 그렇다 보니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때에는 더더욱 소통이 안 되는 기분이었다. i.school 소속 친구에게서 i.school에서는 천천히 깊게 생각해보기를 추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너무 각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서로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만은 않은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팀원들과 협력했기에 좋은 결과물을 이루어 낼 수 있었고, 혼자서는 결코 하지 못할 일들을 다 함께 해낼 수 있었다 – 이것이 디자인 이노베이션의 매력 아닐까?
도쿄에서의 정신없는 일주일이 이렇게 끝났다! 몰려오는 개운함과 아쉬움을 달랜 채 다음 행선지인 미야자키로 향했다 –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에 부푼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