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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숭이 Aug 06. 2021

2021080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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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목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일확천금의 꿈은 지나가고 그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잠드는 나날들. 이번 주는 남편이 휴가라 아기랑 놀고 보내는데, 다음 주부터는 실전이겠지. 그의 퇴근시간이 오매불망 기다려지고 반가워지겠지. 치과진료때문에 같이 맛있는 먹고 쉬진 못해도, 소소하고 잔잔하게 꽤 잘 지내고 있다. 근데 벌써 목요일이라니. 벌써 휴가 막바지에 접어든 것 같아 아쉬워지지만 남은 시간도 잘 지내보자 우리. 나무야 8개월 시작을 축복해,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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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일어난 나무는 내 몸에 파고 들었다가, 바닥에 있는 아빠를 구경하기도 했다. 거실에 나가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놀다가, 자연스레 까까의 세계로 진입했다. 처음엔 튀밥, 그 다음엔 기다란 과자, 그리고 티딩러스크(치발기과자). 아기의 소근육이 발달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튀밥을 가지고 놀 때였다. 한 달 전만 해도 못 잡았던 과자를 잡고, 입으로 넣기까지 한다. 그릇에 있는 건 엎어야 재미있지! 와르르르 주르르륵 다 흘려도 오케이. 위험한 것만 아니면 다 오케이야. 기다란 과자를 먹고 고구마 티딩러스크를 꺼냈다. 돌멩이처럼 딱딱해도 맛이 느껴지는지 계속 입으로 넣고 빤다. 이렇게 놀면 시간이 잘 가겠다며 좋아했는데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건 뭐람. 결국 나무랑 방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다시 잠들어 버렸네. 밖에는 남편의 도마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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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를 깨웠다.

그동안 남편은 본인이 먹을 야채죽을 끓이고, 점심을 차렸다. 달달한 애호박전을 생각했는데 꽤 매콤하고 짭짤하다. 방아잎 맛도 느껴졌는데, 깻잎을 넣었단다. 남편 입맛은 퓨전스타일인가?!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나무 맘마를 데워왔다. 닭고기양파시금치죽을 다 먹긴 했지만, 오늘도 눈물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기랑 놀고 남편이랑 놀고 아이스커피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면서 여유롭게 놀아야지 하는 순간, 갑자기 우리의 평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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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심지어 남편은 며칠동안 안경없이 지내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운전을 해야만 했다.. 급히 렌즈를 끼고 셋이서 달려온 곳은 병원 선별진료소. 어찌어찌 내가 밀접접촉자가 되어서 코로나검사를 피해갈 수 없었다. 아니 양성일지도, 자가격리를 해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무섭고 아찔했다. 이 쪼꼬만 아기도 검사를 받게 하니 더 미안해졌다. 잠깐 울고 말았지만, 미안함은 계속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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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대구에 오기 전 날에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마음에 걸렸다. 나 때문에 피해갈까 봐 조마조마, 한 켠에는 불안이 요동을 치지만, 평소처럼 지내려 했다. 외출을 끝내고 와서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아기를 안아주고 놀아준다. 순후추컵라면을 뜯어 같이 나눠먹고 그냥 그냥 그 순간을 즐겁게 보냈다. 아기의 재롱을 보며 웃었고, 여전히 빨대컵은 사용할 줄 모르는 나무는 컵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모든 게 ‘남편 안경이 부러져서.. 안경의 저주’라고 기가 막히는 이유를 삼기도 했다. 내일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테지만, 마음 단단히 먹자. 별 일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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