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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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월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남편의 출근도, 출근 준비를 도우는 것도, 배웅도 오랜만이었다. 따뜻한 물 한 잔과 삶은 달걀 두 개를 껍질까서 통에 넣는다. 딱히 할 건 없지만, 대신 애정을 담고 다정함으로 인사를 건넨다. 힘내라고, 조심히 다녀오라고 파이팅과 빠빠이. 나도 파이팅이야. 아침이 되면 데굴데굴 굴러서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허전한 잠자리에 품이 그리웠는지 내 배에 얼굴을 올리다가, 몸에 쏘옥 붙어 있는다. 아기의 온기가 너무 좋아. 나를 찾는 나무를 보니까 새삼 엄마라는 존재가 따뜻하고 커보였다. 나는야 나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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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데리고 나와서 의자에 앉혔다.
아직 맘마를 주기도 전에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잘 받아먹길래 괜찮을 줄 알았지. 이제는 컸다고 의자에 앉아있기 싫은가 보다. 몸을 아래쪽으로 숙여서 탈출하려고 용을 쓰네.. 결국 이유식을 먹다말고 탈출한 나무를 잡아라! 베개를 짚고 일어서더니 장난감을 꺼낼 거라고 바쁘네 바빠.. 소고기양파미역죽 130ml과 분유 90ml을 먹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자, 마음껏 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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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논 것 같은데 왜 아직 2시일까.
잘 노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어야 했는데.. 2시 반부터 그분이 오셨다. 원인을 모를 눈물요정님.. 보행기에서 나오고 싶다고 엉엉엉. 장난감이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엉엉엉. 안아달라고 엉엉엉. 어디든 가지말라고 엉엉엉. 낮잠요정님이 오면서 아주 잠깐 평화가 찾아왔다가 물건 하나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깨어버렸다. 오메. 그럴 땐 맘마를 주면 된다! 얼른 먹이려고 분유랑 이유식 둘 다 준비했지롱. 하지만 평소랑 다르게 분유부터 먹였는데도 오늘따라 양이 모자라서 서럽게 운다.. 다시 분유를 타러 가는 시간에도 엉엉엉. 100ml에 150ml을 추가로 먹어놓고는 또 엉엉엉. 이렇게 운 적이 없어서 더 당황스럽다. 짠하고 마음아프고 힘들고.. 이유식은 한 숟가락도 떠먹이지도 못 하고 외롭게 바닥에 있었다. 아이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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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고 겨우 재웠다.
바닥에 누워서 너도 자고 나도 자고. 현관문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아빠를 보고는 다시 잠들었다. 에어컨을 켜놓고 이불을 덮고 자는 우리 팔자가 좋아보이나 보다. 그 모습이 웃긴가 보다. 분명 여기가 지상낙원인데.. 아까 낮엔 아찔했네.. 남편이 칼국수면을 삶고 시장에서 사 온 콩물을 콸콸콸 부어줬다. 각자의 취향대로 소금을 치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로 고명을 올린다. 밍밍했던 맛이 소금으로 되살아났다. 후루룩 후루룩. 깍두기랑 먹을 거라던 남편은 쌈장에 고추만 푹푹 찍어먹었다. 깍두기에 별 생각없던 내가 거의 다 먹었을 때, 깍두기를 생각해낸 남편.. 아이참. 면을 더 넣어서 먹고 거북이칩까지 먹는 우리. 돌싱글즈를 보면서 냠냠냠.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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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으러 갔을 때에도 들리는 나무 울음소리.
남편이 안아줘도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다. 보채는 것과 울음엔 원인이 있을 텐데.. 이앓이인가, 원더윅스인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얼마 후 내 품에서 스르륵 잠든 아기를 보며 생각에 빠진다. 오늘 하루 누구보다 힘들었을 우리 아기,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너무 많이 울린 것 같아, 아기의 신호를 못 알아차리는 것 같아 미안하고 미안한 밤이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한 육아 현장. 내일은 우리 다 웃는 날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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