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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Nov 03. 2022

암 소식은 어떤 억양과 표정으로 전해야 할까

2022년 10월 2일

딸의 생일이다(10월 2일 현재). 생일인데 엄마의 병을 걱정해야 하는 딸의 기분은 어떨는지. 제법 속 깊은 아이라서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는다. 엄마라는 캐릭터는 좀 희한하게 작동한다. 엄마는 아이가 철없이 자기 속을 드러낼 때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짠해지는 건 아이가 웃자란 모습을 보일 때다. 어릴 때부터 내 앞에서 문 한번 쾅 닫은 적 없는 아이. (그에 비해 난, 엄마한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분노를 과시하기 위해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곤 했다. 예상보다 큰 소리가 나면 진짜 혼날까봐 쫄기도 하면서) 작년에 처음 암의 위험성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불평을 하건 짜증을 내건 아이는 한결 같이 담담하고 의젓하게 군다. 한편으론 고맙고, 또 한편으론 안쓰럽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하다. 기집애 가끔은 엄마한테 어리광 좀 부려도 되련만.


대학 동창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에 결국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렸다.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언제 전해야 하나, 굳이 말해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에 작정하고 소식을 전한 건 아니다. 다 같이 한 번 만나자는 얘기가 나왔고, 난 그러기가 좀 어렵다는 걸 설명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암이 흔해졌다지만 친구들은 놀란 기색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중대질병으로 고생한 케이스가 없으니 더 그랬겠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안타까움을 건네지만 말을 길게 잇지는 못한다.


몇 번 해보니 암 소식은 그런 거 같다. 전해 듣는 순간 할 말이 참 없게 만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반응도 대개 비슷하다. 걱정과 황망함이 뒤범벅 되어 결국 틀에 박힌 말만 하게 되나 보다. 입장을 바꿔봐도 그 '할 말 없음'에 수긍이 간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할 말 없는 순간을 맞는다. 슬픈 소식을 들으면 '에휴~'하며 등을 쓸어주는 게 고작이고, 기쁜 소식을 들으면 '축하해'하며 웃어주는 게 전부다. 진심이지만 그 말 외에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경우 나는 종종 나를 의심한다.

내가 이럴 때 할 말을 못 찾는 게 재치 부족인가? 아니면 관심 부족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내가 이 친구의 기쁜 일을 질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친구의 아픔에 무감 해진 건가?

어떤 소식은 내가 입주해있는 마음의 평수를 가늠하게 하는 거 같다. 나의 경우, 조금은 부끄러워질 때가 제법 있다. 아 난 고작 이 정도였구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보면,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막바지 택시  장면에서 오드리 헵번은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게 된다. 불길함을 감지한 그녀는  편지를 읽기 전에 자신의 핸드백을 건네 받아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그런 편지를 립스틱 없이 읽을  없다면서.

어려서 봐서 그런가 그 장면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어릴 땐 '이쁜 여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느낌이 좀 변했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을 땐 립스틱이라도 발라야 한다는 생각.

겉치레 얘기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나'다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그게 누구는 립스틱일 수 있고, 누구는 단정한 면도일 수도 있고, 누구는 펜과 종이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암 소식을 전하는 나는 어떤 표정과 억양이어야 할까. 어떻게 전해야 '나'다울수 있을까. 굳이 뭐 콧구멍에 힘줘가며 이겨내고 말겠다는 필승 의지를 드러내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덤덤하고 조용히 견디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고, 그러면서 나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고 싶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가 아이를 낳으러 들어가면서, 의료진과 친구에게 눈물이나 환호 요란한 응원 등등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있어달라고 했듯이 나도 이번엔 좀 어른스럽게 이 기간을 통과하고 싶다. 물론! 성격상 차암 어렵겠지만. (역시 암은 힘이 센가 보다. 사람을 변하게 하다니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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